[기고] 올해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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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올해 농사
  • 강성일 독자
  • 승인 2020.11.11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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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강성일(금과 아미) 전 순창읍장

11월 이다. 한해 농사가 대부분 끝났다. 들판의 오곡은 인간에게 돌아가고 땅은 쉬고 있다.
올해는 장마와 태풍이 심했고 코로나까지 겹쳐 생명은 모두 힘들었다. 자연은 정확하다. 인간이 한만큼 보답도 응징도 있다. 지금의 기상 이변과 재난은 자연의 순리를 역행한 인간의 자업자득일 거다.
집 뒤 산속에 수십년 묵혀있던 300여평의 다랑이논을 작년에 구입했다. 지목만 논이지 산이었다. 굴착기로 5일간 작업해서 경지 형태를 갖췄다. 땅은 척박했고 돌은 많았다. 우선 겨울에 퇴비 2 파렛트를 넣어 줬다. 경사가 상당하고 운반 거리도 100m 정도 되어 손수레로 한 포씩 옮겼다. 체력에 맞게 쉬엄쉬엄하니 두 달 정도 걸렸다. 봄에는 땅에 퇴비를 뿌리고 삽으로 파서 섞어 줬다. 이 일도 개미 역사하듯 두 달쯤 했다. 다 끝나자 집사람이 수고했다고 칭찬했다. 까만 비닐에 덮인 퇴비 더미를 보는 게 심란했는데 치워지니 후련했던 모양이다. 함께 산지 40여 년 됐지만 칭찬받을 일을 거의 하지 않았던 터라 듣는 게 조금은 어색했다.
경지는 아홉 두렁으로 되어 있는데 제일 위쪽에는 과일나무를 심었다. 금년 봄에 산림조합 나무시장에 가서 감, 대추, 무화과 묘목을 6주 샀다. 알려 준 대로 심었더니 다 살았다. 잎에 병 무늬가 있지만 이겨 내라고 농약은 않고 있다. 그 아래 두렁에는 늦 옥수수를 40주 정도 심었다. 당초에는 10주만 심으려 했는데 어린 모를 한판씩 판매해서 많이 심게 되었다. 땅심도 약하고 비료도 하지 않아서인지 토지 주인같이 비실비실하게 컸다. 태풍이 몇 차례 와서 쓰러진 걸 세우고 흙을 더 돋아 주었다. 긴 장마가 계속되어 방에만 있다가 어느 날 가보니 옥수수밭이 쑥대밭이 되었다. 옥수숫대는 쓰러지고 알맹이는 입질을 당했다. 정황상 고라니 소행이었다. 허탈했지만 보시한 셈 쳤다. 
한 두렁에는 단 호박을 심었는데 씩씩하게 자랐다. 인터넷을 보니 넝쿨이 올라갈 수 있는 망을 설치했던데 나는 하지 않았다. 사람도, 동물도, 식물도 가급적 간섭을 줄여야 자생력이 생길 것이며 나도 편하기 때문이다. 
수확해서 아는 사람들에게도 주고 여름내 심심치 않게 쪄먹었다. 작년 가을에 처남이 와서 양파와 마늘을 심어 줬는데 이 애들은 고라니가 입을 대지 않아서 그런대로 얻었다. 알맹이가 부실해서 남주기는 부끄럽다. 
고추도 반 두렁 심었는데 처음에는 제법 푸릇하게 열리더니 장마 후에는 마르고 비틀어지며 흰색으로 변하면서 붉어 보지도 못하고 처량하게 전사했다. 돌보지 않은 주인을 많이 원망했을 거다. 농작물도 주인을 잘 만나야 제 수명을 살고 동물이나 사람은 탯줄을 잘 타고 태어나야 생고생을 안한다. 
우리 집에 길고양이가 여러 마리 온다. 고양이 울음소리와 배설물 때문에 사람들이 싫어한다. 냉대를 받으며 산다. 새끼들은 더 애처롭다. 들짐승도 집짐승도 아닌 어중간한 처지가 가여워서 먹이를 챙겨주고 있다. 먹이 주는 걸 반대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애들도 생명이다. 그리고 줄 수 있다는 건 기쁜일이다. 여러 색깔의 고양이들이 오는데 비바람 맞으며 구석진 생활을 해도 털빛이 비교적 깨끗하다. 사람으로 치면 노숙 생활인데 비교가 되지 않는다. 자연의 정화 능력에 탄복할 정도다. 
올해 몇 가지 작물을 심으면서 느낀 게 있다. 나 같은 농사는 하늘과 땅이 주역(主役)이고 사람은 보조(補助)다. 내가 하는 건 겨울에 퇴비 넣고 때 되면 씨뿌리고 풀 뽑는 게 전부다. 그다음은 땅심과 하늘에 맡긴다. 설령 소출이 적거나 없을 수 있지만 그건 신경 쓰지 않는다. 농사를 지으면서 얻는 게 많기 때문이다. 밭은 내 일터이자 운동장이다. 그리고 마음 수련장이다. 일하다 보면 허리를 굽히고 머리는 숙이게 된다. 절하는 것과 같다 잘못했던 삶도 반성한다. 그래서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맑아진다. 이것 만도 감사한 일이다. 앞으로도 땅과 나에게 거름을 꾸준히 넣고 자연을 존중하는 농사를 지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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