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작복작 재미 지게 산당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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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작복작 재미 지게 산당게’
  • 김수현 기자
  • 승인 2020.11.25 18:0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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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지마을 주민들이 서로 묻고 기록한 ‘마을책’
▲지난 14일 출판기념회 마을회관(두레방)에서 참석자들이 자세를 취했다. 

마을은 사람이 태어나기도 전에 그 자리에 있었다. 옆집 숟가락 숫자까지 속속들이 알게 되는 농촌 마을 살이. 두지마을 마을책 《복작복작 재미지게 산당께》를 읽으면, 마을에 대해 아는 것이 ‘1’도 없었다는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그리고 지금 사는 마을이 궁금해서 몸살이 날 지경이 된다. 내가 세 들어 사는 집 어르신은 어떤 분이었을까, 아랫집 젊은이는 차 먼지만 날리며 도대체 어딜 그렇게 다니는지… 정말 궁금해진다. 왜 우리는 마을을 다 안다고 생각했을까? 왜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2012년 마을 모임에서 코로나까지, 마을 10년사 

두지마을 책의 시작은 2012년 2월 15일이다. 그해 정월대보름, 두지마을 마지막 당산제를 거행한 날이다. 책에서 김효진 이장은 “‘동네 고샅에 먼지만 일으키고 다닌다는 지청구도 면역이 된’ 마을의 청년들이 충격을 받았다. 청년들이 마을공동체에 온전히 녹아들지 못한 채 부유하던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어느새 술자리마다 마을 일이 새로운 메뉴로 등장한 것도 이때부터다”라고 말했다. 모임 이름은 ‘파킹스톤’. 굴러온 돌이지만 종국에는 박힌 돌로 살자는 청년회 모임이다. 마을책 출간도 파킹스톤이 제안했다. 이 책은 마을 당산제의 유산이기도 한 셈이다. 그렇게 시작된 마을책에는 마을 10년사가 고스란히 담겼다. 

주민인 한빛고 교사의 제안으로 시작된 한빛고 두지마을 농촌활동, 파킹스톤이 주관한 정월 대보름 달집태우기, 농협창고를 개조한 두레방, 주민들이 손수 개최한 연꽃 작은 음악회, 겨울 문화사랑방, 마을 기반시설 정비, 마을 소식지 ‘뒤주골’ 발간, 행복마을 경연대회 수상, 마을 영상 제작, 마을 활동 속에서 마을의 소통력과 민주주의 근육은 더 단단해졌다. 이 힘은 마을 주민들에게 서로를, 마을을 궁금해하게 했고, 마을 젊은이들이 스스로 카메라와 녹음기를 켜 들고 어르신들을 찾아 나섰다. 구술 생애 작업과 자서전 쓰기 모임, 인터뷰로 이어졌다. 덕분에 외부의 시선으로는 볼 수 없었던 깊은 이야기들이 책장마다 ‘북적북적’거린다. 

동네 명인ㆍ작가ㆍ음악인ㆍ이야기꾼···한 자리씩 차지

마을책의 중요한 특징은 마을 주민들 모두가 등장한다는 것. 으레 사진은 행사와 펼침막이 중심인데, 마을책 사진에는 마을 아이들부터 어르신들 얼굴이 모두 담겨있다. 심지어 마을 강아지와 고양이도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김형갑 씨의 빗자루 만드는 법이 담겨있고, 전정순 씨의 80년대 가계부, 서질례 씨의 30년도 더 간직한 남편에게 만들어준 삼베옷, 이달 음반을 내는 이덕현 씨의 작곡 원본, 마을 꽹과리 명인 이하늘 학생, 김충권 씨의 서예작품, 기타 치는 엔지니어 ‘나의 수리사’ 김병학 씨, 김승하 학생의 ‘뒷집 고양이 푸름이’ 등 다채롭기 그지없다.

“두지마을에 시집온 게 자랑스러워”구술하며 자신의 삶 속, 가치 발견

생애 구술한 김순례(71) 씨에게 마을책 작업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아무에게도 이렇게까지 이야기하지 못했어. 딸이 가끔 ‘엄마는 어떻게 살았어?’ 물어볼 때가 있는데, 말하자면 너무 길어 못했지.”

한글을 모르는 걸 철저히 숨겨온 장순금(69) 씨에게 생애구술은 ‘커밍아웃’이기도 했다. 마을책을 계기로 김선영(47) 씨와 한글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자 딸이 김 씨에게 미안하다며 한글 선생님을 붙여줬다. “내가 다 해주는데, 뭐하러 하냐"고 핀잔하던 남편도 이제는 모르는 걸 물어보면 알려준다. 장 씨는 지난 14일, 출판기념회때 마이크를 잡고 큰 소리로 “내가 두지마을에 시집온 걸 후회했는데 지금은 자랑스럽습니다!” 소리쳐 박수를 받았다. 

전정순(69세) 씨는 “동생이 책을 읽고 전화했어. ‘큰 누나 어떻게 살았는지 몰랐는데, 이렇게 사셨어요. 고생 많으셨어요’ 하더라고, 꿈만 같은 일이 내 생애에 일어났어.”라고 말했다.

생애구술작업은 어르신들에게 자신의 삶 속에서 새롭게 가치를 발견하고 해석하는 기회이자 계기였고 현재를 긍정하고 바꿔내는 힘이 되고 있었다.

이물없이 살아온 20년, 생애구술작업의 원동력

생애구술작업을 위해 두지마을 청년들은 2019년부터 생애구술을 배우기 시작했고, 올해 남원 미디어공방 대표를 모시고 공부했다. 이 책에는 세 분 생애구술이 있는데, 공부의 결과라기보다는 20년간 허물없이 주민들과 함께 살아온 마을 살이 덕이 더 크다. 

구술 작업한 김선영 씨는 “보통은 자신을 드러내는 걸 힘들어하시죠. 라포 형성하려면 오래 걸리고요. 마을 이웃이니까 그런 과정이 필요없지요. 책 내고 나니까 어르신들이 ‘왜 나한테는 하자고 안했어’ 하시네요”라고 말했다. (라포 : 상담이나 교육을 위한 전제로 신뢰와 친근감으로 이루어진 인간관계)

김 씨는 구술과 기록 과정에서 어르신들과 깊은 교감을 느낄 수 있었다. 연이은 밤샘 작업을 이겨냈던 이유다. 

“어르신들과 깊게 소통하는 시간이었어요. 이야기를 들을 때도, 녹음한 걸 기록해 다시 읽어드릴 때도 같이 울었죠. 아쉬운 게 있다면, 80대 어르신부터 하고 싶었지만 못했다는 거예요. 귀도 어두우시고, 연세 때문에 구술할 만큼 체력이 안 되셨어요.”

귀농 귀촌 꿈꾸면 이 책부터 읽기를

파킹스톤 회원인 구준회(44) 씨는 “책 작업을 하면서 마을 주민으로 소속감이 깊어졌지요. 할머니 만나도 인사만 하고 지나곤 했는데, 이야기 나누면서 마음의 끈이 생긴 것 같아요. 아쉬운 게 있다면 10년사만 정리했다는 거지요. 그 이전의 마을 기록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라고 아쉬워 한다.

역시 파킹스톤 회원인 이종철(51) 씨는 출판기념회에서 생애구술 하신 장순금 씨 딸 김수영 씨가 편지를 낭송할 때, 눈물을 감추지 못한 사람 중 하나다. 

“집에서 다 읽었어요. 최근 들어 이만큼 재밌는 책이 없었어요. 제가 마을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귀농귀촌의 좋은 교본이겠더라고요. 귀농귀촌하는 사람, 마을 속에서 잘살아보려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꼭 읽고 오면 좋겠어요.” 

순창 첫 마을책, 마을 주민들이 서로 묻고 기록해낸 첫 작업

이 책은 두지마을의 과거와 현재를 잇고, 사람과 사람을 잇는 명실상부한 순창의 첫 마을책이자, 마을 주민들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마이크를 잡고, 서로의 이야기를 써낸 책으로는 전국에서도 첫 책일 것이다. 

책을 모두 읽고 나면 ‘첫 작업’이라는 것이 정말 이상하게 느껴진다. 농촌소멸의 붉은 경고등이 들어온 지 오래. 마을 군데군데 휑 뎅그레한 빈집이 점점 늘고, 장터는 점점 줄어간다. 요양원 갈 날만 기다리는 동네 어르신도 떠오른다. 왜 이제야 첫 작업을 시작했을까. 전에는 왜 마을을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이제라도 마을을 궁금해하기 시작한다면, 너무 늦은 건 아니길 바래본다.     

▲마을 어린이들도 한 컷!. 
▲박순천 명창이 축하공연을 하고 있다. 
▲장순금 어르신, 김순례 어르신. 
▲ 출판 기념회 끝나고 음식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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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미 2020-12-24 17:31:46
마을책은 어떻게 구해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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