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여성국극을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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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여성국극을 추억하며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20.12.09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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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지난호(12월 3일자)에 실린, 어르신들 아마추어 지역 창극 ‘창극 속 옥천골 이야기’ 기사를 보고 어린 시절 자주 봤던 여성국극에 얽힌 추억들이 생각났다. 
여성국극(女性國劇)은 여성 배우들만 출연하는 창극의 한 갈래다. 여성 소리꾼들이 1948년 ‘여성국악동호회’를 결성해 명동 시공관에서 <옥중화>를 공연한 것이 그 효시라 한다. 다음 해인 1949년 공연한 〈햇님 달님〉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여성국극 시대가 시작된다. 
인기 작품으로는 〈햇님달님〉ㆍ〈무영탑〉ㆍ〈공주궁의 비밀〉ㆍ〈선화공주〉 등이 있다. 작품은 주로 전설이나 설화, 야사를 재구성했다. 삼한시대 마한의 목지국, 삼국시대 등을 시대적 배경으로 사랑과 이별 등을 내용으로 권선징악과 인과응보의 주제를 담았다. 
궁궐을 배경으로 화려한 분장과 의상, 우아하면서도 애절한 소리와 춤, 감칠맛 나는 기악 반주, 남성역 배우의 걸출한 목소리와 칼싸움 연기 등 대중예술로서의 여러 가지 면을 갖추었다. 남장 배우들은 중국 경극을 연상케 하는 새하얀 얼굴에 짙은 눈썹을 하고 여성팬들의 혼을 뺐다. 남장 주인공은 영웅이지만 동시에 춤과 노래로 상대 여성에게 애절한 사랑을 표현한다. 음악은 판소리의 복잡한 시김새 같은 방식을 버리고 단순한 선율 형태로 나아갔고, 반주 악기로 북 대신 장구를 사용하고, 대금ㆍ아쟁을 많이 사용했다. 
여성국극의 최고의 스타는 임춘앵이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3년 동안 제작된 한국영화 편수가 40여 편 정도에 불과했던 당시에 임춘앵의 국극단체 한 군데에서만도 50편이 넘는 작품이 만들어질 정도였다고 한다. 여성국극이 1950년대 공연계를 휩쓸면서 외조카인 김진진ㆍ김진경 자매, 조금앵 등도 크게 인기를 얻었다. 여성국극은 1950년대가 전성기였지만 1960년대 쇠퇴기에도 인기는 당분간 지속되었다. 그래서 동방국악단, 박미숙과 그 일행, 이군자와 그 일행 등 공연단체들이 1960년대 말에도 새로이 생겨나고 사라지곤 했다.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려보면 극장쇼의 전성기였던 1960년대 중후반에도 여성국극의 인기는 대단했던 것 같다. 공연이 있는 날이면 순창극장 앞에는 관중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임춘앵은 이미 은퇴한 이후여서 보진 못했지만 김진진ㆍ김진경ㆍ조금앵ㆍ박미숙ㆍ이군자 공연은 몇 번 감상했었다. 임춘앵이 당대 최고의 남성역 배우였다면 김진진은 최고의 여성역 주인공이었다. 조금앵은 카리스마가 넘치는 악역 남성역 배우였으며 탈렌트 조춘의 누나이기도 하다. 박미숙은 국극 부활을 위해 1977년 말에 현대극장을 찾아 공연한 적도 있다. 이군자는 여성국극 마지막 스타라 할 만하다. 성대결절로 인해 가창력은 떨어졌지만 호리호리한 몸매와 남성 같은 분장술, 그리고 춤 솜씨가 압권이었다. 순창극장을 자주 찾았고, 개인적으로 무대 위에서 환영 꽃다발도 걸어준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1960년대 중후반 국산영화 진흥정책으로 영화가 장려되고 텔레비전이 등장하면서 여성국극은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되고 1970년대 이후 대중의 기억에서 거의 잊혀져갔다. 그러다가 1980년대 중반 이후 여성국극인들이 재결집하면서 여성국극의 부활과 재건을 위한 공연들이 활발하게 시도되었고, 2000년대에도 년 1~2회 정도의 여성국극 공연이 제작되고 있다. 
문화컨텐츠 개발붐이 여성국극을 새롭게 호명하고 있다. 코로나19가 극복될 내년 추석 때쯤, 순창국악원이 어르신들을 위한 효도상품으로 여성국극 공연을 준비해 보는 것은 어떨까? 창극을 해 본 경험이 있으니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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