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출신 거장, 박남재 화백 ‘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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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출신 거장, 박남재 화백 ‘영면’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20.12.1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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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화단 지킨 후배 본보기, 전북미술 역사
추상ㆍ구상 넘나들며 한국적 인상주의 구축
독창적 색감ㆍ표현력으로 구상화의 길 개척

순창 출신 거장, 박남재 화백이 지난 11일 새벽 노환으로 영면했다. 향년 91세.
한국 대표 구상화가인 박남재 화백은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왕성한 창작열을 보였고, 힘찬 필치와 견고한 구도 등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하며 지역 화단을 이끌어 온 거목이다.

회문산 그리고 오지호 화백을 만나다
1929년 순창읍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중학교 4학년(당시는 6년제)까지 다니다 운동을 잘해서 중학교 5학년때 농구 선수로 서울 아현동에 있는 한성중학교로 전학 갔다. 학생 종별 농구선수권대회를 준비하던 중 호흡곤란과 심한 통증으로 운동을 절대 하지 말라는 의사의 권유로 농구를 포기하고 미술을 선택했다. 서울 남산미술연구소에서 손톱이 닳도록 미친 듯이 미술 공부를 해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에 진학했지만, 한국전쟁으로 그만두었다. 1950년 7월 13일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을 지낸 박춘호(남원 대강 출신) 씨와 한강 나룻배를 타고 걸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후 이현상이 이끄는 남부군에 들어가 1년 동안 회문산과 지리산ㆍ운장산 등에서 활동하다 붙잡혀 광주 포로수용소에서 생활했다. 
박 화백은 생전에 “당시 총격전 때 총알을 맞았지만, 어깨 아래를 관통해 팔이 떨어지지 않은 것도 그렇고, 국군에게 붙잡혀 끌려간 광주포로수용소에서 서양화가 오지호 화백을 만난 인연도 그렇고 그림이 운명이었던 같다”고 회고했다.(세계일보 2017.06.18일치).
박 화백은 광주포로수용소에서 한국 인상주의의 거두인 오지호(1905~1982) 화백을 만나 다시 붓을 잡았다. 1951년 9월 25일 광주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된 후 군산고등학교 농구코치를 했는데 오지호 화백이 불러 조선대학교 미대를 졸업(1960)했고, 평생 스승(오지호 화백)의 뜻을 거르지 않고 지역 화단을 지키며 자연을 그렸다.

대담한 원색, 대한민국 대표 구상화가
조선대 문리대학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순창농림고(현 순창제일고)ㆍ전주여고 등 미술교사를 거쳐 원광대 미술대 교수(1974)와 학장을 지냈다.
박 화백은 ‘독창적인 빨간색과 푸른색을 개발한 작가’로 알려져 있고, <붉은 월출산〉,〈내장산의 추정(秋情)〉,〈무주 적상산〉,〈성산 일출봉〉,〈도약〉 등에서 볼 수 있다. 
박 화백이 지리산, 내장산, 덕유산, 강천산 등에서 화폭에 담은 풍경들은 섬세하고 세련된 창작혼과 계절 정취를 물씬 안겨준다. 또, 〈설경〉,〈운(雲)〉,〈내장산 비경〉, 〈지리산 하경〉,〈제주 비자림〉,〈붉은 산〉,〈도약〉,〈지리산의 조석(早夕)〉 등 작품을 통해 대자연의 기운과 생명, 자유라는 가치를 보여주며, “대담한 원색의 붓질로 자연의 강렬한 현실감을 포착해 독창적인 색감과 표현력으로 일관되게 구상의 길을 걸어온 대표적인 작가”로 평가된다.

전북최초, ‘대한민국예술원상’ 수상
박 화백은 1981년 한국의 자연전(국립현대미술관), 2008년 한중현대미술전(세종문화회관), 2011년 60년 그림 작업(화업)을 조명하는 회고전(서울 예술의전당), 한국의 자연전(국립현대미술관), 대한민국 원로작가전(서울시립미술관), 2014년 박남재전(교동미술관), 2016년 순창옥천미술관 개관기념 초대전, 2018년 두 개의 시간(익산 예술의전당) 등 왕성한 개인전과 초대전에 출품했다.
박 화백은 대한민국예술원상 심사위원, 대한민국 미술대전 운영위원ㆍ심사위원 등 활동하며 지역과 한국 화단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1958년 제7회 국전 입선(국립현대미술관)을 시작으로 1962ㆍ1963ㆍ1968ㆍ1969ㆍ1971ㆍ1973년 입선, 목우회 최고상(1969), 전라북도문화상(1983), 오지호미술상(2011), 목정문화상, 미술세계상 본상 등을 수상했다.
2013년 전북 출신 화가로는 처음으로 예술가로는 최고의 영예라 불리는 제58회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받았다. 박 화백은 평생의 열정을 인정받은 당시에도 “아직도 일생에 남길만한 최고의 작품을 완성하고 싶은 게 목표”라고 이야기한 천상 예술가였다. 

70여년만의 귀향
박 화백은 바른말은 참지 않은 성품으로 유명했다. “하고 싶은 말을 이런저런 이유로 참기보다는 제대로 된 길을 가르쳐 주고자 한결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던 미술계의 어른이었다”고 전한다. 박 화백은 2016년 말, 전주시 금암동 자택 겸 작업실을 정리하고, 70여년 만에 고향 순창으로 귀향해서 적성면 구암마을 ‘섬진강미술관’에서 200~300호 대작 캔버스에 왕성한 창작 작업을 하다 운명했다.
박 화백은 “순창을 문화예술의 고장으로 만들어 가는데 큰 나무가 되어 달라”는 황숙주 군수의 요청을 받아들여 발걸음을 옮기고 구순의 나이에도 오전부터 오후까지 종일 붓과 씨름했다. “내 인생의 마지막 불꽃을 태워 세상 사람들의 심장을 ‘쿵’하게 울리는 걸작을 남기겠다”며 종일 붓과 씨름했으나 노환을 이기지 못했다.
박 화백은 태어나서 청년기를 보낸 고향 순창에 자신의 작품 전시관(기념관)을 꼭 갖고 싶었다. 구순 노 화백은 영면했고 그의 작품이 영원토록 고향 사람들 곁에서 예술적 극치를 보일 날은 언제일까?
유족으로 아들 시완(서양화가), 딸 지연, 며느리 백경희, 사위 조승연 씨가 있다. 고인은 13일 익산시 왕궁면 영모묘원에 묻혔다. 

▲박남재 씨.
▲지난 2017년 7월 17일 박남재 화백 생신을 맞아 제자들이 섬진강 미술관을 찾았다. 뒷줄 왼쪽 제자 김성균 화가, 오른쪽 제자 이재승 화가 앞줄 좌로부터 제자 이덕순 화가, 김계신 화가, 제자 김숙희 화가(이낙연 전 총리 부인), 제자 이영례 화가, 제자 조래장 화가, 제자 김학임 화가, 박남재 화백 - 사진 제공 이덕순 화가 -.
▲박남재 화백이 황숙주 군수에게 대표작 <붉은 월출산>등을 설명하고 있다.

故 박남재 화백 분향소

장소 : 섬진강미술관 전시실(적성면 평남리 소재) 
2021. 1. 29.(금)까지 운영(49재 기간, 매주 월요일 휴관)
유작 및 생전 작업환경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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