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2021년 신축년 ‘흰 소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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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2021년 신축년 ‘흰 소의 해’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20.12.30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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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토종 소인 황소를 흰색 소로 표현해 백의민족인 한민족의 모습을 반영했다.

2021년 신축년(辛丑年) '흰 소의 해'를 맞아 기대감과 희망이 크다. 
흰색은 신화적으로 새로움과 상서로움의 징후다. 흰 동물을 신성시하고 상서로운 조짐으로 여기는 풍속은 많으며, 행운을 가져다주는 동물로 인식했다. 특히 소띠 해는 여유와 평화의 해다. 소띠 해는 을축(乙丑), 정축(丁丑), 신축(辛丑), 계축(癸丑)의 순으로 육십갑자에서 순환한다. 간지(干支)를 구성하는 열두 동물 중에 소만큼 친근하고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동물이 있을까. 
십이지의 소(丑)는 방향으로는 북북동, 시간상으로는 새벽 1시에서 3시, 달로는 음력 12월을 지키는 방향신(方向神)이자 시간신(時間神)이다. 여기에 소를 배정한 것은 소의 발톱이 두 개로 갈라져서 음(陰)을 상징한다는 점과 그 성질이 유순하고 참을성이 많아서, 씨앗이 땅속에서 싹터 봄을 기다리는 모양과 닮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소는 참고 복종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니 찬 기운이 스스로 굴복하기 시작한 것을 상징한다. 

●소와 관련한 순창군내 지명
우리나라에는 소와 관련한 지명이 많다. 국토지리정보원이 전국의 고시지명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소와 관련된 지명은 전국적으로 총 731개다. 용(1261개), 말(744개)과 관련된 지명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종류별로는 소 이름이 들어간 마을이 566개(77.4%)로 대다수였으며, 섬 55개(7.5%), 산 53개( 7.2%)의 순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전남이 204개로 가장 많았고, 경남 96개, 경북 94개, 충남 85개, 전북 78개 순이었다.
소와 관련된 순창군내 지명으로는 풍산면 우곡리(牛谷里)와 인계면 쌍암마을 황독이 등이 있다. 우곡리(牛谷里)는 소가 사는 곳이라 소실ㆍ쇠실ㆍ우실(牛室)이라 불렀으며, 풍수지리적으로 와우(臥牛) 형국이다. 와우형은 소가 엎드려 앉아 있는 마을이라는 이름이다. 실제 우곡리에는 동쪽에 소뿔 형상의 산세가 있으며, 그 골짜기를 가리굴이라 부른다. 또 소가 일어서서 도망가지 못하도록 소고삐를 매어 놓는 선돌(와우탑)이 마을 앞에 세워져 있다. 
인계면 쌍암리 황독(黃犢)이라는 곳이 있다. 건강장수연구소와 서울대학교노화고령사회연구소 등이 자리 잡고 있다. 황독(黃犢)이란 ‘누런 송아지가 외양으로 들어가는 어미 소를 돌아본다’는 황독고모(黃犢顧母)에서 온 말이다. 

●한국 고대사에 기록된 소
부여에서는 소를 잡아 발굽 모양을 보고 길흉 또는 싸움의 승패를 점치기도 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소는 달구지를 끌거나 한가로이 여물을 먹는 모습으로, 또 은하(銀河)와 견우직녀 이야기를 그린 그림에서 견우가 끄는 동물로 등장한다. 소를 끈다는 견우(牽牛)와 베를 짜는 직녀(織女)의 이름은 농사 설화의 한 상징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파사왕 5년(서기 84년)에 ‘고타군수가 푸른 소(靑牛)를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푸른 소는 중국 문헌에 노자(老子)가 타고 다니는 동물로 묘사되는데, 소가 신선과 함께 선계(仙界)를 노니는 동물이라는 상징이다.
경북 상주에서 호랑이가 농부를 해치려고 하자 소가 주인을 구하기 위해 호랑이와 싸우다 죽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 이야기를 그린 의우도(義牛圖)가 《삼강행실도》에 기록되었고, 1703년 선산 부사 조구명이 백성의 교화를 위해 펴낸 의열도(義烈圖)에서 다시 제작되어 널리 배포되었다. 

●농사와 소 
농사가 중요한 생업이었던 시절, 소는 농사일에 없어서는 안 될 조력자였다. 오래된 농기구들을 보면 우리 민족이 소를 어떻게 이용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소가 이끄는 힘을 이용해 땅을 파고 뒤집어 비옥하게 만드는 데 쓰이는 쟁기, 씨 뿌릴 골을 파거나 흙을 일어 논밭을 고르는데 쓰는 꺼래, 소등에 얹는 기구인 빌마 위에 걸쳐 거름 등을 싣는 옹구 등은 모두 소를 이용한 농기구로서 조상의 지혜와 농사에 참여한 소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 밖에 벼ㆍ보리ㆍ조ㆍ수수 등의 곡식을 찧기 위해 소에 매어 울판을 돌리는 연자방아와 짐을 실어 나르는 수레에도 소는 중요하게 이용되었다. 

▲김홍도 <논갈이>.

●소에 대한 배려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를 한 가족처럼 여겼기 때문에 배려도 각별했다. 날씨가 추워지면 짚으로 짠 덕석을 입혀 주고, 봄이 오면 외양간을 먼저 깨끗이 치웠으며, 겨울이 올 때까지 보름마다 청소해 주었다. 이슬 묻은 풀은 먹이지 않고, 늘 솔로 빗겨 신진대사를 도왔으며, 멀리 있는 길을 갈 때는 짚으로 짠 소신을 신겨 발굽이 닳는 것을 방지했다. 우직하고 순박해 성급하지 않은 소의 천성은 은근과 끈기, 여유로움을 지닌 우리 민족의 기질과 잘 융화되어 선조들은 특히 소의 성품을 아끼고 사랑해 왔다. 
예전에 대학을 우골탑(牛骨塔)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때 소는 한 재산 했는데 대학을 버내려면 ‘소까지 팔아야’ 했다. 큰 아들 ‘대학 합격’ 소식에 농부 아버지는 외양간 문 걸어 잠그고 한참 있다가 눈이 퉁퉁 부어 나왔다. ‘머슴’ 역할을 하며 식구나 다름없던 소와의 이별이 쉬웠을까? 팔려가는 소도 울었단다. 우리와 소의 관계는 이렇듯 살뜰했다.

●심우도(십우도)
불가에서 소는 '인간 심성의 본래 자리'를 의미한다. 대부분 사찰에서 만날 수 있는 법당 벽화 '심우도(尋牛圖)'에서 소는 어김없이 등장한다. 심우도(尋牛圖)는 인간 본성 회복을 목동이 소를 찾아 길들이는 것에 비유해 그린 선화(禪畵)의 일종으로, 흔히 법당 외벽 장식 벽화로 그려진다. 10단계에 걸쳐 그려지기 때문에 십우도(十牛圖)라고도 한다. 만해 한용운이 만년에 그의 자택을 심우장(尋牛莊)라고 한 것도 이런 뜻이었을 것이다. 고려 때 보조 지눌 국사의 호(號)는 번뇌, 망상을 다스린다는 뜻에서 '소를 기르는 사람' 즉 참다운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목우자(牧牛者)였다. 

●우생마사…우보천리
잔잔한 강이나 저수지에 소와 말을 풀어놓으면 둘 다 헤엄쳐 살아 나온다. 그런데, 장마기에 큰물이 지면 달라진다. 갑자기 불어난 물에 소와 말을 동시에 던져 보면, 소는 살아나오는데, 말은 익사한다. 
말은 헤엄은 잘 치지만 강한 물살이 떠미니깐 그 물살을 이겨 내려고 물을 거슬러 헤엄쳐 올라가려고 한다. 1미터 전진하다 물살에 밀려서 1미터 후퇴를 반복한다. 한 20분 정도 헤엄치면서 제자리에서 맴돌다가 지쳐서 물을 마시고 익사해 버린다.
그런데 소는 절대로 물살을 위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그냥 물살을 등에 지고 같이 떠내려 간다. 저러다 죽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10미터 떠내려가는 와중에 1미터 강가로, 10미터 더 떠내려가다가 또 1미터 강가로 그렇게 한 2~3 킬로미터 내려가다 어느새 강가의 얕은 모래밭에 발이 닿고 나서야 엉금엉금 걸어 나온다고 한다.
헤엄을 두 배나 잘 치는 말은,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다 힘이 빠져 익사하고 헤엄이 둔한 소는 물살에 편승해서 조금씩 강가로 나와 목숨을 건지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그 유명한 '우생마사(牛生馬死)'다. 어렵고 힘든 상황일 때 흐름을 거스르지 말고 순리대로 사는 소와 같은 지혜를 가지고 살아갈 필요가 있다. 우직한 느린 소의 걸음이지만 천리를 간다는 우보천리(牛步千里) 마음으로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면 속도보다는 역시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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