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연의 그림책(5) 작은 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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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연의 그림책(5) 작은 집 이야기
  • 김영연 길거리책방 주인장
  • 승인 2021.02.09 16:4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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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태어난 곳은 온통 시꺼먼 시냇물이 흐르는 강원도 탄광촌이었습니다. 어릴 때 살던 사택은 어렴풋이 햇살이 비치던 마룻바닥, 다다미방, 앞마당에 배추밭, 뒷마당에 나팔꽃과 채송화, 산에 피어있던 도라지꽃 등 단편적인 기억들로 남아있습니다. 탄광도 문을 닫아버린 지금 그 집이 어찌 변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아파트 단지로 바뀌지 않았을까요?

서울로 올라와 한때 한옥을 전전하며 살았습니다. 그 한옥들을 이제 다시는 볼 수 없습니다. 대신 그 동네에 거대한 빌딩이 들어섰습니다. 결혼 후 들어간 시댁은 뜰에 과일나무들이 있는 단독주택이었습니다. 얼마 후 그 집은 연립주택으로 변했고, 우리는 아파트살이를 시작했더랍니다.

이제 나이 들어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순창에 작은 집을 짓고 사계절을 보냈습니다. 봄에는 나무에 새순이 오르고, 새들이 찾아오고, 여름에는 텃밭에 오이, 가지, 옥수수가 주렁주렁 달리고, 가을에는 콩이며 팥이며, 녹두를 수확하는 즐거움, 또 주홍 감이 익어가는 풍경을 눈에 담고, 겨울 장독대에 쌓인 눈을 치우며 사계절 자연의 변화에 익숙해져 갑니다. 아마도 이 집이 인생의 마지막 집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도시로 갔다가 다시 시골로 돌아온 인생살이입니다. 이러한 인생을 닮은 책 작은 집 이야기(버지니아 리 버튼 글/그림)를 소개합니다. 이 책은 1940년대 초에 만들어진 그림책으로 우리에게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하는 책입니다.

'작은 집 이야기' 버지니아 리 버튼 글/그림
'작은 집 이야기' 버지니아 리 버튼 글/그림

 

옛날옛날 조용한 시골에 작고 아름다운 집이 한 채 있었습니다. 작은 집은 오랫동안 데이지꽃과 사과나무에 둘러싸여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집을 지은 사람이 말했습니다.

금과 은을 다 주어도 이 작은 집은 절대로 팔지 않겠어, 이 작은 집은 우리 손자의 손자, 그 손자의 손자가 여기서 사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오래도록 남아있을 거야

그러던 어느 날, 데이지꽃 언덕을 깎아 길을 만들고, 많은 자동차와 트럭이 왔다갔다하고, 밭 가운데로 새로운 도로가 생기고 학교며 상점이며 주차장이 생겨 작은 집을 에워싸고 말았습니다. 오래지 않아 작은 집 앞으로 전차가, 고가전철, 땅속으로는 지하철이 다니게 되었습니다. 주위는 먼지와 연기로 가득 찼고. 고층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전보다 더 바쁘게 뛰어다니고, 작은 집에는 아무도 살지 않고,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창문이 깨지고, 칠이 벗겨지고, 초라한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도심 속 작은 집은 타인과 단절된 현대사회 개인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작은 집은 데이지꽃 언덕과 사과나무가 그리워졌습니다.

어느 봄날, 작은 집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 집을 지은 사람의 손자의 손자의 손녀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작은 집은 우리 할머니가 어렸을 때에 살았던 작은 집이랑 정말 똑같이 생겼군요. 이 집이 시골의 언덕 위에 있기만 하다면요, 온통 데이지 꽃으로 뒤덮이고 주위에 사과나무가 자라는 언덕 말이에요.”

손녀는 작은 집을 시골로 옮겼습니다. 창문도 고치고 벽도 새로 칠했습니다. 그제야 작은 집은 방긋 웃었습니다. 시골에서는 온 세상이 조용하고 평화로웠습니다. 작은 집은 행복했습니다.

 

이 책은 오래된 작은 집이 살고 있던 시골 언덕이 어떻게 복잡한 도시로 변해가는지 교통수단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책 표지를 보면 마치 작은 집이 사람의 얼굴처럼 보입니다. 편안하고 행복한 미소를 띄고 있습니다. 태양처럼 둥근 원 안에 데이지꽃으로 둘러싸인 집이 평화로워 보입니다. 마치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엄마의 자궁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본문의 문장도 그림과 어울리게 나선형으로 구성되어 독자에게 편안함과 리듬감을 줍니다. 작은 집은 자신을 둘러싼 사계절의 변화와 낮과 밤, 달의 순환, 아이들의 성장을 행복하게 지켜봅니다. 마치 독자가 작은 집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즉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작은 집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집니다. 작은 집은 그대로인데 세상은 변해갑니다. 넓은 도로, 고층 건물과 빠른 교통기관으로 사람들은 점점 더 바빠지고, 맑은 공기, 따스한 햇빛, 밤하늘의 별빛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하지만 다시 시골에 새 거처를 마련하는 것으로 작은 집은 다시 미소를 찾게 됩니다.

작가는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이고,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그림책 속의 작은 집은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던 시절에서 도시화로 인한 자연환경 파괴, 자연과의 단절로 인한 그리움의 시기를 거쳐, 다시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새로운 보금자리로 순환됩니다. 앞으로 어떻게 인간과 자연이 관계를 맺고 살아갈 것인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집은 사람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휴식의 공간이자 삶의 처소입니다. 생명이 자라고 영혼이 성장하는 곳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집은 우리들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여러분의 집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나요?

 

길거리 책방 김영연
길거리 책방 김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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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연 2021-02-10 20:46:17
이 글을 읽고 표지를 다시 보니 작은 집의 행복한 미소가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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