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22) 금과면 방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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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22) 금과면 방축리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21.02.09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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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축리는 금과면에 속하는 법정리다. 북쪽은 고례리, 서쪽은 전라남도 담양군 금성면 덕성리, 남쪽은 매우리와 내동리, 동쪽은 내동리와 순창읍 백산리가 인접해 있다. 광주-대구 고속도로가 방축리 북동쪽에서 서남쪽으로 관통하고, 국도 24호선 담순로가 방축리를 지나 담양군 금성면 덕성리로 통한다. 2021120일 기준 방축리 인구는 169가구, 295명으로 남자가 145, 여자가 150명이다.

방축마을 전경
방축마을 전경

 

마을 유래

방축리는 삽살개가 지켜주는 마을이다. 삽살개가 쪼그리고 앉아 쥐를 쫓으려고 하는데 그 옆에 호랑이가 엎드려 있어 쫓아가지 못하는 마을 형상이라 삽살개 방()자와 쫓을 축()자를 써 방축(尨逐)’이라 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마을 정기를 막기 위해 마을명을 방축(防築)’으로 바꾼 것으로 보이며, 마을 앞으로 철로를 놓아 호남정맥 정기를 끊고 순창군 인근의 쌀과 물자를 착취해 가려고 했으나 삽살개가 지켜주는 덕에 마을이 무사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철도 부설 흔적
일제강점기 철도 부설 흔적

전국 최초 농촌마을 개선 시범지구

방축리는 지난 20133월 주민과 지자체가 공동으로 마을 주거환경 개선을 추진하는 농촌마을 리모델링 시범사업대상지에 전국 최초로 선정됐다.

마을주민들은 너와 내가 아닌 우리라는 공동체를 형성하고 주민 자립 역량을 바탕으로 마을 주거 환경과 경관을 바꾸는 사업에 마을 전체가 참여했다. 주민들 자부담으로 주택을 개량하고 군(행정)은 빈집 정비, 공공어린이집 신축, 농산물가공판매장 신축, 기초기반시설과 노인 공동생활공간 조성 등을 추진했다. 낡고 빛깔 잃은 공간들이 밝고 조화롭고 활기찬 공간으로 거듭났다. 방축마을 개선사업은 농촌 활성화의 전국적 모델이 되고 있다.

황토담장
황토담장

 

한옥형 금과어린이집

금과어린이집은 전국 최초로 현대식 한옥으로 만든 어린이집이다. 전통 한옥의 미를 계승하고 목구조 방식과 철근콘크리트 방식의 현대적 건축기술을 가미했다. 국토교통부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이 지원하는 도시건축연구사업으로 국비 10억원 포함 133000만원의 예산을 투입해 20166월에 문을 열었다.

5세까지를 대상으로 39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보육실 4유희실식당강당천방지축 실내놀이터 등을 갖추고 있다. 어린이집 아이들은 한옥의 아름다움을 기억하고, 서로 도우며 살던 조상의 삶을 배우게 될 것 같다.

금과 어린이집
금과 어린이집

금과 정류장

금과 정류장은 금과면민의 추억이 깃든 공간이다. 생업을 위해 순창읍과 담양, 광주로 이동하는 고단한 삶의 흔적이 묻어 있는 공간이자, 기다림과 설렘을 간직한 공간이기도 하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버스를 기다리며 수다를 떨고 장난치던 곳, 좋아하는 이성을 기다리던 공간이다. 금과 정류장은 비록 옛 정취는 사라졌지만 쓸쓸한 잿빛 색채가 화사한 연분홍빛 벽돌로 새롭게 단장돼 한층 환해졌다. 정류장에 들르는 버스는 오늘도, 손님과 사연을 함께 태운다.

방축마을 버스정류장
방축마을 버스정류장

방축리 팽나무

마을 동쪽 청룡등에 약 400년 된 팽나무가 있다. 여름엔 녹음이 우거져 쉼터로 이용되고, 매년 정월에 당산신께 제를 지내는 신성한 곳이기도 하다. 높이 17미터, 가슴 높이 지름 1.56미터, 수관(樹冠) 24미터다.

방축마을 팽나무
방축마을 팽나무

김인경 활인적덕불망비

김인경(1534-1589)은 조선 선조 때 사람이다. 기묘(己卯선조 121579)7월에 적성강에서 뱃놀이하던 배가 뜻밖에 폭우를 만나 전복되자 비범한 용력(勇力)으로 위기에 처한 47인을 구출했다고 전한다. 당시 은혜 입은 이들이 불망(不忘)의 뜻으로 풍산면 두지리 어지(魚池) 위 구목(舊木) 사이에 세워 활인적덕불망비(金仁慶活人積德不忘碑)라 하였다.

김인경 11세 손들이 비가 없어진 것을 보고 1958년경 다시 세웠다. 전 금과면 부면장이었던 김수권 씨에 의하면 80여 년 전 방축마을 앞 벽돌공장 터에 세워져 있는 것을 현재 위치에 옮겼다고 한다. 현재 비가 위치한 곳이 사유지이고, 도로변에 있어서 후손들은 비를 군 소유지나 향교 등에 세워줄 것을 순창군에 수차례 요구했으나 묵묵부답이라 한다.

김인경 공덕비
김인경 공덕비

남은 바위전설

금성산성은 전라남도 담양군 금성면 금성산에 있는 산성으로 백제 또는 고려 때 쌓은 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성을 쌓을 당시 많은 사람과 자재가 동원되었을 것이다. 당시 어떤 도인이 회초리를 들고 남원 쪽에서 산성을 쌓는 데 쓸 바위들을 몰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금과면 방축리 앞까지 몰아왔을 때쯤 산성이 완공되어 이 바위들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고, 결국 그 바위를 그곳에 놓아두게 되었다. 산성을 쌓고 남은 바위라 하여 남은 바위라고도 하고, 남원에서 가져온 바위라 하여 남원 바위로 부르기도 한다.

남은 바위
남은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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