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날 만난 사람] ‘독수리 오형제’가 쌍치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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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날 만난 사람] ‘독수리 오형제’가 쌍치에 나타났다
  • 최육상 기자
  • 승인 2021.02.09 17:4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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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명절 대목 장을 순창에서 처음 접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기자는 순창으로 이사 온 지 한 달이 안 됐다. 부모님 고향 순창은 어렸을 때부터 익숙한 곳이지만, 명절 연휴 때라야 오곤 했으니, 순창에서 명절 대목 장을 경험하는 건 처음이었다. 신출내기 군민, 기자에게는 모든 게 낯설었다. 주민들에게 혹시 모를 폐가 안 되도록 조심했다. ‘열린순창신문에 기사를 쓴다고 말씀드렸더니, 군민들은 아무도 거부하지 않으셨다. 역시 살기 좋은 순창, 인심 좋은 순창이다.

50년 간 장터 지킨 뻥튀기 가게 서석두(81)

뻥튀기 가게 주인장 서석두(81)씨는 이 자리에서만 50년 동안 뻥튀기를 했다며 뻥튀기 기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무덤덤하게 말했다. 손자인 듯한 청년 역시 묵묵히 일손을 도울 뿐이었다. 아마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뻥이요~” 외침은 장터에 계속 울려 퍼질 것이다.

전주에서 온 서동훈우미선서연서연우 가족

일가족이 모두 두 손으로 귀를 막은 채, 뜨거운 화로 위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며 씩씩거리는 뻥튀기 기계에 호기심 가득한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어디에서 나왔느냐고 아빠에게 묻자, 서연우 학생이 먼저 캠핑 왔어요라고 앳된 목소리로 답을 했다. 서동훈씨는 전주에서 어제 향가캠핑장에 왔다가 먹을거리를 사러 장에 나왔다오늘도 하룻밤 더 향가에서 머물 예정이라고 말했다.

고깃간 아버지 일손 돕는 전철환(27)

정육점 내부는 주문 받은 고기를 손질하느라 손놀림이 바빴다. 칼질을 하는 아버지(사진)를 옆에서 바라보던 전철환(27)씨는 광주에 있다가 내려와 일손을 돕고 있다며 말을 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늘상 하던 일이라 익숙하긴 한데, 코로나가 없던 지난해에 비하면 올해는 사람들이 많이 준 것 같아요. 아쉽지만 그래도 대목 장인 만큼 감사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어요.”

아빠 처음 도와요구나연 고2 학생

즉석 수제 어묵 가게 앞에서 손님들로 늘어선 줄이 빨리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구나연 학생(2)은 낭랑 18세다운 밝은 목소리로 아빠를 도와드린 건 사실, 오늘이 처음이라며 웃었다. 아빠와 딸은 다정스레 어깨동무를 하고 마스크 위로 환한 눈웃음을 드러내며, ‘순창 장날 최고라는 듯 익숙하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떡 쪄서 딸한테 보내야제한기복(67)

풍산 용내에서 온 한기복(67)씨는 떡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20킬로그램 하나 쪄. 인자 아들네 좀 주고, 딸도 주고, 우리도 먹고, 형제간에 나눠먹고 글지. 아들은 여그 살고, 딸은 쩌~그 안산서 살고. 딸은 코로나 땜시 못 내려오니께 설 쇠고 택배로 떡 보내야제. 친정아부지부터 여가 (떡집)단골이니까 몇 십 년 됐제.”

코로나 땜시 아무도 못 온다요채귀임(81)

시장버스정류장 앞, 인계 세룡에서 온 채귀임(81)씨는 버스를 기다리며 앉아 있었다. “꼬막 사고, 시금치 사고 헷헷헷. 왜 그란댜? , 신문에 낸다고? 오징어 사고 뭐 여러 가지 샀어요. 이번 설 상에 놓아야제. 근디, 코로나 땜씨 아무도 못 온다요. 할 수 있깐. 아들하고 둘이 지내야제. 그래서 음식을 작년보다는 쬐깐씩 샀어.”

혼자 묵을랑게 작년보다 안 샀제김성순(76)

정류장 앞, 유등 학촌에서 온 김성순(76)씨는 마을 분들과 버스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과자 사고, 벵어 사고, (, 어떤 거요?) 병치! 병치 사고, 사과 사고, 버섯 사고, 고것밖에 안 샀어. 코로나 땜시 설에 아들딸도 안 온댜. 나 혼자 묵을랑게 작년보다 안 샀제.”

장날에 둘러본 순창의 이모조모

장터를 벗어나 순창의 몇몇 곳을 둘러봤다. 운이 좋았는지, 독수리가 날아드는 광경을 목격했다. 피노길에서 마주친 칠순의 할머니는 열 살 손자와 축구를 하느라 숨을 헐떡였다. 미용실은 머리만 하는 게 아니었다. ’코로나로 힘드시면 잠시 쉬어가도 괜찮다고 군민들에게 속삭였다.

축구하는 칠순 할머니와 열 살 손자

전봉준관에 갔다가, 잔디밭에서 칠순 할머니와 열 살 손자가 즐겁게 축구하는 웃음소리에 홀려서 정작 전봉준 장군은 안 만나고 왔다. 김주완 학생은 묻는 말에 정말 해맑게 대답했다. “부모님은 수원에 계세요. 설날 (순창에) 못 오세요. 쌍둥이 동생이 있는데 6살이에요. 다정이, 다은이가 1분 차이에요. (할머니 성함을 묻자) 앞에가 김 자에요. 그리고 어, , 어 까먹었어요.(웃음)” 그냥 김씨 할머니라고 부르기로 했다. 김씨 할머니는 이번 설은 할아버지하고 손자하고 셋이 지야야제라고 말했다.

안 생길 것 같죠? 생겨요. 좋은 일

- 잘 될 거야.

그래.

잠시 쉬어가도 괜찮아.

안 생길 것 같죠?

생겨요. 좋은 일.

당신의 하루가 별보다 빛나길.

순창 읍내에서 6년째 미용실을 운영하는 김정희 씨는 유리창에 적힌 문구를 바라보며 저 문구는 제가 직접 골랐다고 수줍게 웃었다. “순창에 코로나가 발생한 후, 손님들의 걱정이 많이 느셔서 정말 안타까워요. 그래도 주민들이 건강을 위해 잠시 쉬엄쉬엄 사셔도 괜찮겠죠.”

독수리가 오형제가 쌍치에 나타났다

 

쌍치면 삼장마을의 김호곤 이장이 몇 십 년 동안 안 보이던 독수리가 삼장마을에 나타났다고 전했다. 독수리는 높디높은 창공을 뱅뱅 맴돌 뿐, 좀처럼 거리를 주지 않았다. 결국 기다림 끝에, 삼장마을 앞 수리봉 창공에서 빙빙 돌다가 오봉리 삼장마을과 먹우실마을 사이 논으로 독수리 오형제가 내려앉았다. 이번 설에는 행운이 있으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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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훈 2021-02-10 11:16:56
정말 저희 가족이 나왔네요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이 될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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