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순덕 씨가 날마다 순창농협 오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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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순덕 씨가 날마다 순창농협 오가는 이유
  • 최육상 기자
  • 승인 2021.03.03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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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50리, 15개월 동안 9000킬로미터
2만7000분 발품…‘내 농산물 주(파)는 재미’
왼쪽부터 설순덕ㆍ한경희 씨, 김정숙 회장
왼쪽부터 설순덕ㆍ한경희 씨, 김정숙 회장

 

군내버스를 타고 왕복 약 20킬로미터의 거리를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오간다.

팔덕면 장안리 집에서 정류장까지 걸어 나와 버스를 타고, 순창읍터미널에서 내려 순창농협 하나로마트까지 다시 걷는다. 오가는 데 1시간이 훌쩍 넘는다. 농산물 짐 꾸러미도 손수레 가득 싣고 이고 지는데 평균 보따리 3개 이상이다. 15개월 동안 오간 거리가 대략 9000킬로미터, 27000분 이상을 길에서 보낸 셈이다.

한데서(노지)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매일 순창읍 하나로마트 로컬푸드에 출하하고 있는 설순덕(68팔덕 장안) 씨 이야기다. 설 씨는 그동안 순창농협 하나로마트 로컬푸드매장에서 농산물 판매를 지원해 준 것이 고마워, 최근 어려운 학생에게 전달해달라며 장학금 100만원을 순창농협에 맡겼다. 이 돈이 종자돈이 돼 순창농협노동조합 조합원과 임직원도 뜻을 모아 장학금 규모가 600만원으로 늘었다.

선재식 조합장은 열린순창과 전화 통화에서 설순덕 씨는 정말이지 노지에서 손끝으로 땅을 일구며 온몸으로 농사를 지었다고생스럽고 억척스럽게 모은 귀한 돈을 장학금으로 주셔서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노동조합과 간부들이 동참했다고 말했다.

로컬푸드매장에 감사한 마음, 장학금에 담아

지난 2일 오전 810, 순창농협 하나로마트 로컬푸드 매장에서 농산물을 진열하는 설 씨를 만났다. 매일 버스 타고 나오는 게 힘들지 않으세요?

혹시 자식들하고 뭔 일이 있어서 어딜 가거나, 병원에 일찍 갈 일이 있거나 그러면 못 오지. 그렇지 않으면 비가 오나 눈이 와도 나오제. (로컬푸드출하농가회 김정숙) 회장님을 위해서라도 더 안 빠지고 열심히 댕겨요. 회장님이 원체 성실하시니께. 또 인자, 한 번 로컬푸드에 물건을 담았잖아요? 그믄 손님들이 둘러보고 가실 때 물건이 없으면은 또 찾으시고 그런께. 또 손님들을 위해서 오기도 하고.”

설 씨를 비롯해 순창농협 로컬푸드출하농가의 농산물은 모두 친환경 인증을 받았다. 호박고지(상품) 5000(설순덕), 순송화버섯(중품) 2200(김정숙), 달래(상품) 2000(나운식), 샐러리 (상품) 1900(한경희) 등 회원이 직접 상하로 품질을 구분해 가격을 매겼다. 소비자에게 신뢰감을 주는 실명인증이다. 수입은 어느 정도나 될까?

제가 쓰는 생활비 정도 벌어요. 농사는 노지에서 제가 다 지어요. 농산물이 계절 따라서 대략 스무 가지가 넘어요. 겨울에는 주로 대파하고 냉이하고 달래하고, 이 달래도 노지 꺼에요. 근데 손님들이 뭐가 있냐면요? 노지 꺼라 조금 지저분하잖아요. 노지에서 서리 맞고 햇볕 쬐고 그게 더 좋은데, 그걸 안 알아줘요. 이 시금치는 하도 심난해서 제가 씻었어요.”

 

 

진열대에는 모과, 가지, 죽순, 딸기, 도라지, 시금치 등 다양한 농산물들이 있었다. 이름표를 살펴보니 설 씨의 이름이 가장 많이 눈에 띄었다.

집에서 일일이 다듬고 종류별로 포장해서 가져와요. 하나로마트에 와서 가격표 출력해서 붙이고 진열하죠. 사실은 제가요, 낫 놓고 기역 자도 몰랐어요. 컴퓨터, 컴 자도 몰랐어요. 회장님과 팀장님한테 배웠어요. 로컬푸드 농산물들은 정성 들여서 갖고 오니 회원들 상품이 될 수 있으면 그날그날 다 팔리면 좋죠.”

어떤 질문에도 설 씨의 표정은 밝았다. 매일 아침 일찍 서둘러 나오는 일이 쉽지 않을 터인데 힘든 기색이 별로 없다. 더구나 어렵게 발품, 손품을 팔아 번 돈을 장학금으로 기부하기는 더 쉽지 않았을 터. 설 씨는 장학금 이야기에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제가 못 배웠거든요. 저희 때 없는 사람은 정말 없었(가난했)거든요. 못 먹고 못 배우고, 많이 굶주리고 했어요. 제가 뭘 할까, 고민 끝에 회장님께 말씀드렸죠. 적은 금액이지만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싶은데 어쩌겠냐고. 다행히 회장님도 농협도 흔쾌히 동의해 주시더라고요.”

 

아부지 생전에 봉사하자팔덕면 마을 돌며 냉면 대접

설 씨는 31, 4남매를 두었다. 큰딸은 공무원이고, 작은딸(주부)셋째딸(식자재 도매)막내(은행원)는 수원부천전주에서 살고 있다. 설 씨는 자식 이야기를 꺼내며 자연스레 서로 돕고 부대끼는 마을 살이를 들려줬다.

아들이 팔덕면 전체 25개 마을인가, 작년 재작년에 주민들에게 냉면 봉사를 했어요. 왜냐면, 제가 원했어요. 아부지(남편)가 마음이 너무 좋다 본께, 보증 잘못 서고 이십 년 넘게 고통을 받았어요. 이런 거 저런 거 다 청산하고 나니까 몸이 아파요. 그래서 아들한테 아버지 살아계실 때 봉사를 좀 하자 그랬어요.”

팔덕면 25개 마을 인구는 1400명이 넘는다. 1000명 이상의 주민들이 여름날 냉면으로 더위를 식혔을 것이다. 설 씨는 팔덕면 농협 직원들하고, 농가주부모임 회원들이 많이 협조해 주셨다아들이 냉면을 택배로 부친다고 하길래, 농협 차량으로 싣고 오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농협에서 협조해 주시고, 동네마다 다니며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께 냉면을 대접해 주셨다고 그때 상황을 설명했다.

매일 아침 손수레를 끌고 이고 지고 가져온 노지 농산물
매일 아침 손수레를 끌고 이고 지고 가져온 노지 농산물

 

로컬푸드농협에서 더 애정과 관심 가져 주세요

설 씨가 출하하는 농산물은 언뜻 보기에 조금 지저분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설 씨는 이 대목에서 다소 섭섭한 속내를 털어놨다.

시골에서 노지 농사져 갖고 뭐가 남는 게 있겠어요. 그나마 농협에서 이렇게 판매할 수 있게 해준께 감사하기는 한데. 담양농협, 남원농협 하나로마트 같은 다른 로컬푸드에 가보니까 전부 입구부터 로컬(푸드) 위주로 해 놓았더라고요. 냉장시설도 다 돼 있고, 포장실도 있고, 또 물건이 남았을 때 보관하는 냉장고도 따로 있었어요. 우리 로컬푸드도 그렇게 좀 바꿔주셨으면 좋겠어요.”

대화하다 보니 개장시간인 0830분이 넘었다. 하나로마트 직원들이 분주해진 가운데, 이른 손님도 하나둘 눈에 띄었다. 설 씨는 상품 진열을 마치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다른 로컬푸드는 정말 잘 갖춰졌어요. 냉장시설, 진공포장 그런 게 참 좋았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거기는 제가 갈 데가 아니었어요. 농협 조합장, 과장님, 계장님 그런 분들이 직접 가서 보고 느꼈어야 해요. 진열대 문제도 회장님이 엄청 건의했어요. 그런데도 안 바뀌잖아요. 농사 안 지어본 사람은 이런 맘 절대 몰라요. 농협에서 조금만 더 애정과 관심을 가져 주시면 좋겠어요.”

김정숙 회장과 설순덕 씨가 상품을 진열하고 있다.
김정숙 회장과 설순덕 씨가 상품을 진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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