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의 기도
박희진
이 봄엔 풀리게
내 뼛속에 얼었던 어둠까지
풀리게 하옵소서
온 겨우내 검은 침묵으로
추위를 견디었던 나무엔 가지마다
초록의 눈을, 그리고 땅 속의
벌레들마저 눈 뜨게 하옵소서
이제사 풀리는 하늘의 아지랑이,
골짜기마다 트이는 목청,
내 혈관을 꿰뚫고 흐르는
새소리, 물소리에
귀는 열리게 나팔꽃인 양,
그리고 죽음의 못 물이던
이 눈엔 생기를, 가슴엔 사랑을
불붙게 하옵소서.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왠지 기쁘다. 발걸음도 가볍다.
만물이 창생하는 아름다움도 있겠지만 다시 한 번 꿈을 심고 씨앗부터 챙겼다. 그리고 그 씨앗을 땅속에 심어 풍수해 없이 풍년이 들기를 기도했다. 그런데 위에 시를 쓰신 박희진 시인의 봄맞이 기도는 좀 다른 것 같다. ‘뼛속에 얼었던 어둠까지 풀리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다. 이 기도의 정점은 죽은 생명까지 모두 다 다시 살아나게 해달라는 기도다. 그토록 만물을 창생하게 하는 봄의 힘은 위대했기 때문이다. 겨우네 검은 침묵이었던 나무들에게 초록의 눈을 뜨게 하고, 골짜기마다 트이는 목청이 내 혈관을 꿰뚫고 흐르는 물소리에 귀가 열리면서 죽음의 못물같은 내 목숨의 눈에도 생기를 넣어주고 가슴에 사랑을 불붙게 해 달라는 기도는 위대한 봄의 사랑을 알기 때문이다.
이처럼 봄은 자연 속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고 마음속에서도 온다, 쪼들린 생활도 잘 풀릴 것같고, 아픈 사람도 이러나 돋아난 새싹들을 보면 힘이 생겨 아픈 병도 물리친다. 이렇게 봄이 오면 마음도, 몸도, 자연도 넉넉해지고 풍요로와진다. 거지도 나그네도 행복해지는 보믈 올해도 또 맞이했으니, 오는 봄만 맞으려 하지 말고 내 손으로 만들고 기도하면서 맞이해 보자.
박희진(朴喜璡 1931-2015). 경기도 연천 출생. 1955 문학예술 추천으로 등단. 시집 《실내약》 《청동시대》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