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속시한줄(69) 새봄의 기도-박희진
상태바
햇살속시한줄(69) 새봄의 기도-박희진
  • 조경훈 시인
  • 승인 2021.03.24 16: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그림 조경훈(시인.한국화가)

 

새봄의 기도

박희진

 

이 봄엔 풀리게

내 뼛속에 얼었던 어둠까지

풀리게 하옵소서

온 겨우내 검은 침묵으로

추위를 견디었던 나무엔 가지마다

초록의 눈을, 그리고 땅 속의

벌레들마저 눈 뜨게 하옵소서

이제사 풀리는 하늘의 아지랑이,

골짜기마다 트이는 목청,

내 혈관을 꿰뚫고 흐르는

새소리, 물소리에

귀는 열리게 나팔꽃인 양,

그리고 죽음의 못 물이던

이 눈엔 생기를, 가슴엔 사랑을

불붙게 하옵소서.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왠지 기쁘다. 발걸음도 가볍다.

만물이 창생하는 아름다움도 있겠지만 다시 한 번 꿈을 심고 씨앗부터 챙겼다. 그리고 그 씨앗을 땅속에 심어 풍수해 없이 풍년이 들기를 기도했다. 그런데 위에 시를 쓰신 박희진 시인의 봄맞이 기도는 좀 다른 것 같다. ‘뼛속에 얼었던 어둠까지 풀리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다. 이 기도의 정점은 죽은 생명까지 모두 다 다시 살아나게 해달라는 기도다. 그토록 만물을 창생하게 하는 봄의 힘은 위대했기 때문이다. 겨우네 검은 침묵이었던 나무들에게 초록의 눈을 뜨게 하고, 골짜기마다 트이는 목청이 내 혈관을 꿰뚫고 흐르는 물소리에 귀가 열리면서 죽음의 못물같은 내 목숨의 눈에도 생기를 넣어주고 가슴에 사랑을 불붙게 해 달라는 기도는 위대한 봄의 사랑을 알기 때문이다.

이처럼 봄은 자연 속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고 마음속에서도 온다, 쪼들린 생활도 잘 풀릴 것같고, 아픈 사람도 이러나 돋아난 새싹들을 보면 힘이 생겨 아픈 병도 물리친다. 이렇게 봄이 오면 마음도, 몸도, 자연도 넉넉해지고 풍요로와진다. 거지도 나그네도 행복해지는 보믈 올해도 또 맞이했으니, 오는 봄만 맞으려 하지 말고 내 손으로 만들고 기도하면서 맞이해 보자.

박희진(朴喜璡 1931-2015). 경기도 연천 출생. 1955 문학예술 추천으로 등단. 시집 실내약》 《청동시대등이 있음

조경훈 시인
조경훈 시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금과초등학교 100주년 기념식 4월 21일 개최
  • [순창 농부]농사짓고 요리하는 이경아 농부
  • 우영자-피터 오-풍산초 학생들 이색 미술 수업
  • “이러다 실내수영장 예약 운영 될라”
  • [열린순창 보도 후]'6시 내고향', '아침마당' 출연
  • 재경순창군향우회 총무단 정기총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