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ㆍ4호선이 개통돼 본격적인 지하철 시대가 열리기 전인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서울 청소년들에겐 “당구장에서 삼각함수를 배우고, 시내버스에서 체력장 연습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했었다.
당시 서울 시내버스는 출퇴근 시간이면 지옥이 따로 없었다. 수십 미터를 달려가 버스를 타야하는 경우도 많았고, 승차 후 버스 안은 콩나물시루 자체였고 아수라장이었다. 에어컨도 나오지 않던 여름철의 쏟아지는 땀과 악취, 본의 아니게 낯선 남녀가 부둥켜안게 돼 지르는 여자들의 비명소리, 압사 직전에 생존을 위해 몸부림을 쳐야 했던 버스 안은 체력장 연습장으로 그보다 더 나은 훈련장이 또 있었을까?
그래서 정원 초과, 기사들의 난폭 운전과 불친절, 노선 중복 등 시내버스 문제는 언론 사회면의 단골 메뉴였다. 그러다가 지하철 체계가 완성되고 자가용 시대가 열리면서 더 이상 언론에서 버스 문제를 다룬 기사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버스는 지금도 사회적 약자를 위한 교통수단이다. 모든 사람이 승용차를 이용할 수는 없다. 특히 농촌지역 면 단위 청소년이나 자가운전을 할 수 없는 고령층은 대중교통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인구가 급감한 농촌지역에서 버스회사는 수익이 생기지 않는 노선과 지역의 운행을 기피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어서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해마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적자노선을 지원해주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임시방편일 뿐이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하고 있다.
버스 운영체계는 크게 민영제ㆍ준공영제ㆍ공영제로 나뉜다. 순창군의 경우 군내 노선에 대해 민간 버스운송사업자인 임순여객에 차량구입ㆍ손실보상 등 재정적인 지원과 함께 운영을 위탁하는 버스 준공영제 방식이다.
준공영제는 민간업체가 운영하는 데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를 줄여보려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주민의 이동권을 만족스럽게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는데도 지자체가 공공성 보장이라는 명분으로 표준운송원가를 바탕으로 버스업체들의 적자를 매년 수십억에서 수천억 원을 보전(순창군의 경우 16억여 원)해 주고 있다. 결국 현재의 지원방식은 버스회사는 절대로 망하지 않고, 세금으로 '영생 기업'을 키워주는 꼴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여러 지자체가 시행하고 있거나 검토 중인 제도가 공영제다. 버스공영제는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버스업체를 인수하거나 설립해 버스회사 운영 주체로 나서는 방식이다. 주민 요구에 맞춰 노선도 자체적으로 결정하고 증차할 수 있고, 버스 운전자의 근무환경 개선으로 서비스 질도 높일 수 있다. 물론 지방정부의 재정적자 초래와 예산 부족 등이 단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버스공영제는 2007년 전남 신안군을 시작으로, 작년 6월 강원도 정선군도 시행하고 있다. 수도권에서는 화성시가 작년 11월부터 18세 이하 청소년 14만여 명이 무상으로 버스를 탈 수 있는 무상교통정책 시행에 들어갔다. 신안군의 경우 버스 공영화를 위해 2008년~2012년까지 76억 원을 투자했고, 한 해 20억 원의 인건비ㆍ유류비ㆍ차량유지비 등을 공영버스운영협의회에 지원한다. 현재 117개 노선에 공영버스 65대를 운영하고 있으며, 65세 이상 고령자ㆍ학생ㆍ국가유공자 등에게 무상 교통을 제공하고 있다. 1일 대당 운송원가도 17만9330원으로 민간 버스업체의 54% 수준이라고 한다. 신안군 주민의견을 반영, 노선을 결정하는 주민버스인 신안군 버스공영제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전화 문의ㆍ방문이 쇄도하고 있다.
이제 순창군도 버스공영제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 불합리한 노선과 불친절로 군민이 불편을 느끼고 있는데 언제까지 임순여객에 적자를 보전해줄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버스회사의 반발, 전문 인력 확보, 예산 확보 등 여러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군의 주인인 군민의 이동권과 행복추구권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순창읍을 제외한 10개 면민의 이동권 보장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참 좋은 순창’을 위해 내년 6월 실시될 단체장 선거에서는 버스공영제 시행 의지가 확고한 후보가 출현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