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골소리/ 4월, 또 아프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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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골소리/ 4월, 또 아프지 않기를 바랍니다.
  • 림양호 편집인
  • 승인 2021.04.14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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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왔습니다. 마음이 먹먹해지고 아파집니다. 그날의 숨죽인 혈루, 억눌린 함성, 피맺힌 절규를 차마 떠올릴 수도 없는데 또, 4월을 보냅니다. 남도 거친 파도에 둘러싸인 섬에서 자행된 만행과 부정선거와 독재에 항거한 희생, 못다 핀 청년들의 넋이 아직 황천을 떠도는데, 시국은 여전히 어둠 속에서 헤매는데 다시 봄을 마주합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운다 /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었다 /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 / 가냘픈 목숨 마른 구근으로 먹여 살려주었다(토마스 스턴스 엘리엇의 시 황무지1922)

시인 엘리엇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으로 검은 상흔 가득한 유럽 문명을 황무지로 빗대며 새순 틔우는 봄보다 땅속에 누워 있는 겨울이 따뜻했다는 역설로, 절망과 파멸을 기억해내야 하는 현실을 환기(喚起)합니다.

참혹한 역사는 왜 반복되는 것일까요. 우리는 역사의 아픔을 넘어서기 위해 망각과 싸우고 진실을 물어야 합니다. 4월을 보내며 빨갱이로 몰려 학살당한 제주 43 양민과 억지 개헌으로 유지되던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419 시민혁명, 수학여행 길 바다 한가운데에서 원인 모를 침몰로 300명 넘게 희생된 416 세월호 참사를 다시 기억합니다. “기억하지 않으면, 혹은 기록하지 않으면 인생의 모든 일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김연수 소설 원더보이) 이 잔인한 역사를 기억하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또 암흑 속에 묻히고 흔들릴 것입니다.

제주 43은 해방 이후 가장 오랫동안 자행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큰 비극적 역사입니다. 국가 폭력에 의한 희생자가 3만명에 달한다는 데 진실규명도 책임자처벌도 아직 요원합니다. 제주 사람들은 43을 잊지 않기 위해 빨간 동백꽃 배지를 꽂고 다닙니다. 국가(국방부)201943, 71년 만에 제주 43 특별법의 정신을 존중하며 진압 과정에서 제주도민들이 희생된 것에 대해 깊은 유감과 애도를 표한다라고 사과했습니다. 이날 경찰청장도 제주 43, 71주년 추념식에 참석해 방명록에 사과하는 글귀를 남겼답니다.

419 혁명은 1948년 정부 수립부터 1960년까지 12년 동안 발췌개헌, 사사오입개헌 등 불법으로 장기집권한 이승만을 내려 앉혔습니다. 이승만과 자유당은 1960315일 정부통령 선거에서 야당 참관인 축출, 투표함 바꿔치기, 득표수 조작 등 부정을 자행해 시민들의 시위를 촉발했습니다. 마산 시위 때 실종됐던 당시 고등학생 남원 출신 김주열의 시신이 411일 눈에 최루탄에 박힌 채로 발견되어 시위는 들불처럼 번졌습니다. 이승만 정권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무력을 사용했습니다. 사망자 185, 부상자 1500여명에 달했습니다. 결국, 이승만은 하와이로 망명해야 했습니다.

416 세월호 참사는 20144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면서 승객 299명이 사망하고 5명이 실종된 대형 참사입니다. 성역없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는 416 연대는 위험한 사회를 벗어나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길, 왜곡되고 초라해진 민주주의를 되살리는 길, 버려진 인간의 존엄성을 되살리는 길, 우리의 모든 권리를 되찾는 길,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길을 부단히 걷고 있습니다.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향해.

419 이후 43 규명을 시작하려 했는데 516 쿠데타로 20년 넘는 군사정권 때는 금기였습니다. 1987년 시민항쟁 이후 재론되었고 김재중노무현 정부에서 특별법을 제정하고 정부가 사과했습니다. 416 세월호 진상규명도 같습니다. 침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픔을 기억하고 진실을 알리려는 사람들이 있기에 알려지고 밝혀집니다. 역사를 제대로 마주하고 반성하는 것, 끊임없이 평화의 가치를 알리는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겨울을 이겨낸 동백꽃, 세월호 노란 리본을 닮은 유채꽃을 기억하고,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고 또 아프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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