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안제미/ 밥상을 높이 받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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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안제미/ 밥상을 높이 받들어
  • 정문섭 독자
  • 승인 2021.04.28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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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안제미(擧案齊眉 jǔ àn qí méi)

들 거, 책상/밥상 안, 가지런히 할 제, 눈썹 미

후한서(後漢書)양홍전(梁鴻傳)에 나온다. 아내가 밥상을 들어 눈썹과 나란히 하다.

지방 도청에서 근무하던 한 후배가 우리 부처로 전입하여 왔다. 환영하는 자리에서 그가 약간 뻐기는 모습으로 집안 얘기를 하였다. “제가 봉급을 받아 집에 가면 아내가 한쪽 무릎을 꿇고 봉투를 받습니다.”

우리는 웬 조선시대 이야긴가 싶어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급기야 한 선배가 어이없어 하며 약간 책망하는 어투로 물었다. “제수씨가 지리산 ㅊㅎ동 서당 출신인가?” “? 서울에 있는 S대 나왔는데요. 그게 무슨 학력과 관계가 있나요? 집안 가풍이 그렇고 또 남편이 하라면 해야지 지가 뭐 어쩌겠어요? 하하!”

집에 와서 당신도 한번 그래 보지, 어때?’하고 웃으며 물으니 나를 쳐다보는 아내가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그 남편 집안이 어떤 가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요새 세상에 그런 독재 집안이 어디 있단 말이오? 그런 집에 시집 온 그 여자도 문제가 크네. 남편이 시킨다고 그대로 따라 해? 완전히 부창부수네요.” “친정집에서 양홍의 아내처럼 남편 밥상을 눈높이까지 올리라고 가르쳤나 보네.”

중국 후한(後漢 25-220)초기, 양홍(梁鴻)은 몹시 가난하였으나 절조를 숭상하고 널리 책을 두루 읽어 학문이 높아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았다. 벼슬에 뜻이 없어 손수 일하며 검소한 생활을 마다하지 않았다.

당시 권세를 가진 사람들이 양홍의 높은 절조를 흠모하여 자기 딸을 시집보내려고 했으나 양홍은 모두 거절하며 결혼을 미루고 있었다. 같은 마을의 맹씨 집에 딸이 있었는데 뚱뚱한데다가 얼굴은 시커멓고 몹시 추했다. 나이 30이 되도록 시집 갈 생각을 하지 않으므로 그녀의 부모가 조바심이 나 그 이유를 물었다.

양홍처럼 덕 있는 사람이라면 시집을 가겠습니다.”

양홍이 이 소문을 듣고 예를 갖추어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여자가 베옷, 짚신, 방직용 광주리, 새끼 꼬는 기구 등을 구해 놓고는 시집가는 날에 화장을 하고 잘 차려입었다. 그런데 혼인 후 며칠이 지나도 양홍이 색시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색시가 궁금한 나머지 그 까닭을 물었다.

내가 원했던 부인은 비단옷을 걸치고 짙은 화장을 하는 여자가 아니라 누더기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깊은 산속에서라도 살 수 있는 여자였소.”

제가 이제 당신의 마음을 알았으니 당신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아내가 머리 모양도 옛날처럼 하고 베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양홍은 기뻐하며 그녀에게 맹광(孟光)이란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 후부터 아내는 화장도 않고 산골 농부 차림으로 생활하다가 남편의 뜻에 따라 산속으로 들어가 농사짓고 베를 짜면서 살았다.

양홍은 농사짓는 틈틈이 시를 지어 친구들에게 보냈는데, 그 시 속에 왕실을 비방하는 내용이 발각되어 나라에서 잡으려 하였다. 이에 양홍 부부가 옛 오() 땅으로 건너가 명문집안인 고백통(皐伯通)의 방앗간 지기가 되어 지냈다. 그러한 양홍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그 아내는 밥상을 차리고 기다렸다가 눈을 아래로 깔고 밥상을 눈썹 위까지 들어 올려 남편에게 공손하게 바쳤다(妻爲具食, 不敢於鴻前仰視, 擧案齊眉). 이를 본 고백통이 양홍 내외를 예사롭게 보지 않고 도와주었다. 양홍은 고백통의 배려와 아내 맹광의 내조를 받아 수십 편의 훌륭한 책을 저술할 수가 있었다.

원래 이 성어는 부녀가 남편을 존경하는 부도(婦道)를 각별히 지키는 것만을 의미했지만, 나중에 부부가 서로 존경하고 금실이 좋은 것 즉, 아내가 남편을 깍듯이 존경하거나 부부가 서로 존경하고 화목하게 사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도 사용되었다.

요새는 주례가 없는 결혼식이 대세를 이루면서 남편을 공경하고, 일심동체가 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식 많이 낳아라.’하는 옛 주례사는 이젠 구닥다리가 되었다. 이제는 신랑신부 아버지가 나와 젊은 사람들의 구미에 맞게 둘이 잘 맞춰 살아라.’고 하는 짤막한 덕담으로 대체되고 있는 것이다.

요사이 아들 장가보낸 어머니들이 아들놈이 며느리한테 꼼짝도 못하고 산다.’고 하소연 하는 모습이 눈에 자주 보인다. 좀 잘 나가는 자식은 장모 자식이고 아파트 대출 빚 갚느라 바쁜 자식은 바로 내 자식이라는 말이 돌아다닌다. 여자들한테 다 휘어 잡히고, 남자들이 대범한 척 하지만 결국 끌려 다니고 있는 모습이 대세다.

아들놈이 어머니와 아내가 다투면 난 아내 편 들어줄 거니까 그리 아세요.’라고 공개적으로 밝히니 아내가 그저 그래, 알았다.’하고 대답했다. 아내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받아들이는 것을 보노라니, 아들을 둘이나 낳았다며 의기양양하였던 아내의 옛 모습이 오버랩 된다. 게다가 삼식이소리가 들리면 좀 뜨악해지는 내 모습도 보인다. 어디서, 거안제미를 들먹이며 며느리한테 아들에게 잘해라.’라고 말할 여지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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