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님(4) 김기호 금과 대성마을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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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님(4) 김기호 금과 대성마을 이장
  • 최육상 기자
  • 승인 2021.04.28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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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체 재난지원금 배분

 

대성마을 막내, 예순 아홉 살 이장

마을회관 안으로 들어서자 한쪽 벽에 커다랗게 붙어있는 긴급 연락처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금과면 대성마을 김기호(69) 이장과 대화는 연락처를 붙이게 된 사연으로 시작했다.

이 분들이 우리 마을 85세 이상 되신 어르신이에요. 혹시라도 급한 일이 생기면 자녀분에게 전화를 드리라고 연락처를 붙여 놓았어요. 마음이 급하면 전화번호도 못 찾아요. 주민들에게 무조건 마을회관에 오시라고 말씀드렸죠. 한 사람이 전화를 안 받을 수도 있으니까 자녀 두 분 연락처를 적었어요.”

지난 달 19일 회관에서 마주한 김기호 이장은 마을에서 내가 가장 젊고 어린 막내라며 밝게 웃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김 이장에게 딱 들어맞았다. 안경 너머 그의 눈가엔 장난기와 웃음기가 함께 서려 막내다움이 느껴졌다. 마을의 막내, 예순 아홉 살 이장은 대화 내내 유쾌했다.

김 이장은 아이 엄마랑 여기가 고향인데, 광주에서 아이들 가르치고 결혼시키고 다시 마을로 돌아온 지 이제 5년 됐다마을 나갔을 때가 서른다섯인가 여섯이었고, 예순 네 살에 마을로 돌아와 작년부터 이장을 했다고 막내 겸 초짜 이장의 정체를 밝혔다.

여기가 태자리예요. 제가 원체 어렵게 살았어요. 그 때 당시는 논도 적고 해서 담배 농사도 짓고 누에도 치고 그랬어요. 내가 아들 하나, 딸 둘이에요. 막둥이 딸이 초등학교 1학년일 땐데 저는 당시 없이 살아도 얘들은 가르쳐야 하지 않느냐 해서 큰 아들을 5학년부터 어머니랑 형님이 계신 광주로 보냈어요.”

소 여덟 마리 팔고 광주 전세방으로

아들을 먼저 보내놓은 다음 딸 둘을 데리고 광주로 나가게 된 계기는 농촌 시골의 척박함 때문이었다. 김 이장은 딸 이야기에 눈가가 촉촉해졌다.

“1990년인가, 그 땐 우리 마을 들어오는 길이 포장이 안 됐어. 자갈도 없고 순 황토 땅이야. 비가 오면 장화를 안 신고는 못 가. 어느 날 우리 딸이 신발을 들고 비를 쫄쫄 맞으면서 울고 와. 내가 너희들을 가르쳐 놓고 다시 와야겠다, 이튼 날 소 여덟 마리 있는 걸 싹 팔았어요. 내가 후계자 자금을 그 때 700만원을 받아서 한 2년 있으면 갚아 나가, 2년 거치 5년 상환인가 그랬을 거예요. 그걸 정리하니까 1300만원 인가 남더라고. 어떻게 2000만원을 만들어서 광주에 전세방을 얻었어요.”

김 이장 부부는 살던 집을 그대로 두고 떠났다. 아내가 광주에서 오가며 농사를 지었다. 김 이장은 광주에서 일을 하다 주말이면 틈틈이 순창에 와서 농사일을 도왔다. 부부는 억척스럽게 벌어서 자녀 뒷바라지를 했다. 자녀들 대학교까지 가르치고 모두 결혼시키고 나서야 마을로 돌아왔다.

그전 이장이 나보다 한 살 더 먹었어요. 이제 칠십이에요. 20년 이장을 하셨어. 한 살 차이니까 친구여 말하자면. 내가 마을에 오니까 , 기호야. 너도 이제 마을 일 좀 봐라고 그래요. 내가 아직은 자네가 이장을 좀 더 하소그랬는데, 작년에 또 이장을 하라고 말하더라고요. 주민들도 말씀을 하셔서 별 수 없이 이장을 맡게 됐죠.”

김용규 전 이장은 김기호 이장을 데리고 면사무소를 방문해 면장과 부면장, 직원에게 일일이 인사를 시켰다. 김 이장은 이 대목에서 은근슬쩍 마을 자랑을 늘어놓았다.

면장님이 지금까지 전 이장님이 이렇게 신임 이장님을 모시고 와서 인사시킨 부락은 없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이장이 되자마자 면장님한테 대성리 부락 같이 협조적이고 단합 잘되고 분위기 좋은 마을은 참 없다고 칭찬부터 받았어요.”

생신제사 때 마을주민 아침 대접

대성마을은 옛날부터 부모님 생신이나 할아버지 제사 등이 있으면 꼭 아침에 주민들에게 식사를 대접했다고 한다. 김 이장은 아주 의무적으로 돌아가면서 마을 전체 주민들이 와서 아침밥을 드시게 한 그런 부락은 대성부락 말고는 없었다면서 키우는 닭도 잡고, 잘 살든 못 살든 있는 대로 대접을 했다고 푸근했던 과거를 회상했다.

그러나 본인 역시 농촌의 빈곤함 탓에 도시로 떠나있었듯, 세상이 변하고 자식들 가르쳐야 하면서 먹고살기 힘들던 시골 마을을 하나둘 떠났다.

나 어렸을 때만 해도 쉰다섯 가구가 있었어. 우리 마을이. 지금은 이십오 호, 마을 주민은 총 30명 정도 돼요. 여자 분이 열여섯, 남자 분이 열 넷. 여든 살 넘으신 분이 여덟, 아흔 살 자신 분이 한 분이야. 제가 부락에서 제일 어려요. 막내야 막내.”

김 이장은 고향을 등지고 객지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아쉬움은 잊은 채, 막내라는 말을 하며 정말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그는 인자, 한 사람이 두릅나무 심고 마을로 들어올 가능성이 많다그 사람은 예순 두 살, 이번에 대기업을 퇴직했는데 내가 막내 벗어나려고 살살 꼬시는 중이라고 귀띔했다.

그 동안 방문해 본 군내 마을회관과 경로당은 몇 곳 되지 않는다. 대성마을 회관 앞에는 가장 넓은 공터가 있어 마을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길도 깨끗했다. 김 이장은 면사무소 직원들이 “‘대성마을은 항상 분위기가 좋다, 마을길을 보면 청소가 깔끔하니 돼 있다고 말씀 하신다보시다시피 우리 마을 앞은 깨끗합니다라고 자부했다. 김 이장은 이어 분리수거에 대한 애로사항을 말했다.

나이를 많이 자신 분들이라 예를 들어서 분리수거가 뭔지도 모르시고 금방 듣고도 잊어 불어요. 쓰레기를 가져다 놓으면 그래서 하나하나 손을 봐야 해. 그래야 가져가지 지금은 안 가져가요. 아무리 방송을 해도 잘 모르세요. 제가 그런 점도 개선을 하고 있죠.”

코로나19로 마을회관과 경로당은 모두 문을 닫았다. 이전에 만나서 대화를 나눴던 몇몇 이장들은 모두 어르신을 한 명 한 명 찾아다니며 마스크 등을 나눠드렸다고 했다. 김 이장은 과감하게 발상을 바꿨다.

저는 될 수 있는 한 뭐든지 회관에 와서 가져가시라고 해요. ? 내가 갖다 주면 계속 앉아서만 계시는 거야. 하루 종일. 당신 것만이라도 가지러 나오면 그만큼 운동이 된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노인들을 생각하면 갖다 드리는 것이 예의이지만 나는 운동을 좀 하쇼, 한 발이라도 떼는 것이 더 오래 사니까’, 우스운 소리로 그러면 다들 웃고 나오셔. 하하하.”

마을 자금으로 자체 재난지원금 배분

김 이장은 이장을 맡은 지 1년 여 만에 큰 사고를 쳤다. 마을에 모아 놓은 자금을 털어낸 것이다.

마을에 자금이 좀 있었어요. 그 돈이 어떤 돈이냐, 아들딸들이 왔다 가면서 회관에다 봉투 하나씩 주고 가고, 우리 면 행사 때마다 우리 부락에서 나가신 분들이 주신 돈들을 모아놓은 게 있어요. 제가 올해 그랬어요. 코로나 때문에 너무 힘드니까 돈을 호당 칠십칠만 원씩 풀어서 드린다고 했더니 모두 좋아라고 하시제. 칠만 원씩은 우리 군에서 잘 된 사람이 있어야 발전이 되니까 장학재단에다가 성금을 했고, 호당 칠십만 원씩 현금으로 드렸어요.”

마을 자금으로 일종의 자체 재난지원금을 요긴하게 사용한 셈이다. 설을 앞두고 지원한 자금은 마을 어르신의 병원 약값, 명절 차림 준비, 손자손녀 세뱃돈 등으로 쓰였다.

현재 김 이장은 금과면에서 친환경우렁이농법으로 60마지기, 12000평 정도 농사를 짓는다. 친환경농법은 관행(농약 치는 논)’에 비해서 나락이 적게 나온다. 200평 기준으로 관행은 40킬로그램 13개 포대 정도가 나오는데, 친환경은 잘 돼야 10개 정도 나온다. 또 관행은 정부에서 수매하지만, 친환경 쌀은 태이친환경영농조합법인에서 일괄 수매해 유기농퇴비, 우렁이 등 각종 비용을 제하고 나중에 수익금만 통장에 넣어준다. 김 이장은 우리는 열심히 농사만 지으면 된다고 웃었다.

우렁이는 모내기하고 논에 물을 잡았을(채웠을) 때 풀어요. 보통 525일 경 우렁이를 푸는데 이 녀석들이 신기하게 풀만 먹어치워요. 우렁이 수명은 논에 물을 잡아 놓는 기간인 25일 정도에요. 25일이 지나면 모가 쓰러지지 말라고 논의 물을 빼거든요. 그러면 우렁이가 스스로 폐사해요. 물을 찾아 도랑으로 간 우렁이는 살아남기도 하고. 우렁이는 300평에 1킬로그램 정도를 풀어요. 저는 약 55킬로그램을 풀고 있어요.”

설동승, 서화종, 김만숙면사무소 직원 자랑

김 이장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설동승 면장과 서화종 부면장, 김만숙 산업계장 자랑을 수차례 반복했다.

지난해 여름에 엄청난 수해가 발생했어요. 저기 산 밑에 포클레인 보이잖아요. 제가 작업 지시를 해 놓았는데. 계속 복구하고 있어요. 면 직원들이 엄청 고생을 하고 계세요. 설동승 면장님하고 서화종 부면장님, 김만숙 산업계장님이 지금도 장화를 신고 들로 산으로 다 다니세요. 특히 부면장님은 이번 5월말 퇴직이 몇 개월 안 남았는데도, 일을 제대로 하고 있나 아침에 한 번씩 와서 꼭 확인해요.”

김 이장이 발상을 바꾼 건 또 있다. 면사무소에 문의해 경로당 보조금 사용을 코로나 맞춤형으로 바꿨다.

제가 민원계장한테 이야기를 했어요. ‘경로당 간식비를 꼭 회관에서만 먹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 제과점에서 1인분에 얼마씩 빵을 사다가 나눠드리면 되지 않느냐, ‘이장님 그렇게 하시라고 그래서 음료수랑 사서 전부 다 돌리려고 해요. 회관에서 받아 가쇼, 그래야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보고 더 웃고 받아 가시지. 사람을 만나야 웃어. 하하하.”

겨울에 길이 얼었을 때는 일일이 댁에 가져다 드리고, 날이 풀렸을 때는 회관으로 오셔서 받아 가시라고 한다는 김 이장. 그와 나눈 대화는 화창한 봄날만큼이나 따뜻했다. 김 이장은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말을 맺었다.

지금 날씨 좋잖아요. 여기는 주차장도 넓고 공기도 좋고 서로 접촉이 안 되게 한 분씩 회관에 나오셔서 받아 가시면 좋죠. 이럴 때 바람 한 번씩 쐬시고.”

열린순창안녕하세요? 이장님!’ 기획을 연속 보도합니다. ‘열린순창에 우리 마을 이장을 추천해 주세요. 만나 뵈러 달려가겠습니다. 이장 추천 전화 652-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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