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창읍 남계리 임준식(91) 전 제일고 교장 자택 화단에 모란꽃이 활짝 피었다. 빨강ㆍ보라ㆍ하얀 모란 수십 그루가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임 교장은 대문을 열고 이웃들에게 정원을 개방했다.
모란은 우리 조상들이 꽃 중의 꽃, 화왕(花王)이라고 하여 각별히 사랑했던 꽃이다. 목단ㆍ부귀화 등으로도 불린다. 남부지역은 4월말, 중부지역은 5월초에 핀다.
모란은 정말 향기가 없는 꽃일까?
모란을 보면 김영랑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떠오르고, 신라 선덕여왕 이야기도 생각난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선덕왕 편을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진평왕 때 당나라 태종이 모란꽃 그림과 꽃씨를 보내 왔는데 어린 덕만공주(후일의 선덕여왕)가 꽃 그림을 보더니 ‘이 꽃은 아름답기는 하나 향기가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왕이 이유를 물으니 공주는 ‘꽃그림에 봉접(벌과 나비)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이 꽃은 향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 씨앗을 심어 보니 과연 그 말과 같았다. 이에 왕과 모든 신하들이 어린 공주의 총명함에 크게 탄복했다.” 용비어천가식 모란꽃 이야기의 줄거리다.
《삼국유사》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삼국사기》(김부식)는 선덕여왕이 어릴 때 있었던 일이라고 하고, 《삼국유사》(일연 스님)에는 선덕여왕 재위 중 일로 기록하고 있다.
모란은 당나라에서 신라 왕실에 선물로 보낼 만큼 향기 그윽한 귀한 꽃이었다. 그런데 왜 모란꽃에는 향이 없어 나비가 오지 않는다는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오랜 세월 전해온 것일까?
조용헌 교수의 <동양화 읽는 법>을 보면 중국 그림에서 모란과 나비만 그리는 법은 없고 나비를 그리려면 반드시 고양이와 나비를 함께 그린다. 고양이(70세 모)와 나비(80세 질)를 모란과 함께 그려야 70~80세가 되도록 장수하며 부귀를 누린다(부귀모질)는 뜻이 된다고 한다. 선덕여왕이나 일연 스님, 김부식은 중국 그림 읽는 법을 몰랐던 것이다.
모란은 해마다 봄이 되면 아름답게 피어나 그윽한 향기를 내뿜으며 벌ㆍ나비를 유혹한다. 김부식과 일연 스님이 모란꽃에 코만 한번 대봤어도 이런 기사를 쓰지 않았을 텐데! 의심해보지 않은 집단지성은 때로 어리석은 믿음을 전파해 특정인을 영웅으로 만들기 위한 정치적 배경으로 악용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