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판동 어르신, 콩밭 매는 100세 대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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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판동 어르신, 콩밭 매는 100세 대식가
  • 최육상 기자
  • 승인 2021.05.05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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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간 아내 그리워 매일 고향 묘지 오가

집터 뒤 콩밭을 괭이로 힘차게 일구는 모습은 흡사 청년 같았다. “힘드시니까 쉬엄쉬엄하시라고 말려도 귓등으로 들었다. 지난해 100세 생신을 맞은 오판동(100) 어르신은 청년의 기운을 뽐냈다.

지난달 29일 오후 금과면 계전마을 어르신 댁으로 안내해 준 이근태 이장(83)콩 심고 일하시는데 젊은 사람도 기운을 못 따라간다면서 전남에서 태어나 여기 오신지 한 오십년 됐다고 소개했다.

식사도 잘하시고, 상여소리도 잘하시고, 농악 같은 것도 잘하셔요. 지금도 가끔 하시는데 소리가 정말 좋아. 아내 돌아가신지 한 4~5년 됐나. 42, 6남매를 두셨어요. 아버지가 혼자되시니까 코로나 있어도 이번 명절에 다녀갔지.”

금성 봉황금과 계전 마을 오가며 100

오판동 어르신의 1921년 태자리인 전남 담양군 금성면 봉황마을과 지금 사는 전북 순창군 금과면 계전마을은 붙어 있다. 전남과 전북으로 나뉘지만 한 마을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오판동 어르신은 두 마을을 오가며 공평하게 50년씩 산 셈이다.

어르신에게 언제까지 농사를 직접 지으실 건지 여쭸다.

작년까지는 괭이 갖고 꺼먼 콩 숭궜는디(심었는데) 올해는 내 힘으로 숭궈질랑가 모르겠어. 인자는 조금 꼼지락거리면 숨이 가빠서 헐떡헐떡 그래. 다리가 아프고 허리도 아픈 게 천하없어도 손 안 짚고는 앉지도 서도 못혀. 깨도 한 마지기 했는데 이젠 반 마지기나 할까. 올해는 땅 벌(일구는 것)도 안 하고 내버려 두게 생겼어. 원체 힘이 부쳐서 고것도 못 벌겠어.”

이근태 이장은 말씀은 저렇게 하셔도 단지 청각만 조금 안 좋으시지 연세에 비하면 건강하신 편이라고 귀띔했다.

어르신은 순창이 좋으시냐는 질문에 엉뚱한 답변으로 일행을 한바탕 웃게 했다.

여기에는 친구가 집을 판다고 하도 사정사정해 사서 왔지. 농지도 없었는데 친구가 논 네 마지기(800) 주마고 돈 벌라면서 집을 팔았어. 생전(평생) 벌라고 한 놈이 근데 (농사지어) 1년 번 게로 인자, 논을 사라고 안 하요. 거참.”

젊은 사람은 못 따라오게 밥을 묵어

어르신의 건강 비결은 푹 주무시고 잘 드시는 데 있었다.

보통 여덟, 아홉 시에 자. 일어나는 건 대중없어. 일곱 시에도 인나고(일어나고), 여덟 시에도 인나. 새벽에는 잘 안 깨. 늦잠 잘 때는 여덟 시 넘어서 깰 때도 있고. 하하하. 내가 뭣이든 잘 묵어. 젊은 사람은 못 따라오게 묵어. 남들 두 배씩, 밥을 많이씩 묵어.”

이 이장은 어르신이 회관에서 식사하실 땐 남들 눈치 보여서 밥을 많이씩 못 드시겠다고 라신다면서 그래서 더 달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미리 한 그릇 더 챙겨드린다고 웃었다.

생일을 여쭙자 음력으로 99일 날이 생일인디 그전 같으면 명절이여, 99일도. 그때는 명절로 쇠었다면서 딸이 작년에 내 100세 생일날 마을 주민에게 식사 대접하려고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못 했다고 몹시 아쉬워했다.

100년을 이어온 어르신의 삶을 짧은 만남만으로 가늠할 수 없었다. 오판동 어르신은 어떻게 살아오셨느냐는 막연한 질문에 회한이 서리는 표정을 지었다.

아조(아주), 입에 털어 넣을 게 없어서 나 같이 죽을 고생깨나 한 사람은 없을 거요. 나무 껍딱, 풀잎들만 먹고 살았어.”

전혀 감도 잡히지 않는 고생길

<보릿고개> 노래가사 그대로 초근목피로 연명했다는 어르신. ‘억척스런 삶으로는 설명이 모자랐다.

나무장시 이십 년 넘게, 지게 지고 다니면서 팔아 갖고 열 명이 먹고 살았어. 자식들(육남매), 부모하고. 약나무(약초)란 약나무는 다 캐 갖고 지게 져다가 순창장에도 팔고 담양장에도 내다 팔았어. 곶감꽂이까정 팔았으니께. 하이고(한탄), 생각허면 징허제(끔직하지).”

어르신은 먹고 살기 위해서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다면서 짐작조차 되지 않는 이야기를 계속 꺼냈다.

봇짐도 큰 건 내가 다 지고. 남들이 안 지는 건 또 내가 다 지고. 없이 산 게, 한 닢이라도 더 벌라고 큰 거라도, 무거운 걸 져야 돈이 된 게 별짓 다 했어. 산 타러 다니면서 장작도 내 손으로 겁나게 패 갖고 장에 내다 팔고. 아무것도 먹일 게 없는데 자식들 육남매를 키웠어. 나는 학교 문 앞에도 못 가봐서 내 이름도 잘 못 써.”

버스도 없던 시절, 어르신은 태어난 담양이며 순창읍 장터까지 어떤 길로 다녔을까. 지게 가득 나무를 지고 걸어서 오갔을 길, 전혀 감도 잡히지 않는 고생길이다.

지금도 날마다 부인 만나

화제를 바꿔 몇 살 때 결혼하셨느냐고 여쭸다. 어르신은 결혼 이야기에 모처럼 큰 웃음을 터뜨렸다.

아내가 열여섯 살 묵어서 스물한 살 나하고 만났어. 하하하. 지금 같으면 학생밖에 안 됐어. 얼굴도 안 보고 결혼한, 첫날밤 (아내한테) ‘키가 왜 이렇게 작냐고 했더니, ‘키 작아서 못 살게메(살까봐) 그러냐?’고 토라지데. 그 말을 안 즉 안 잊어 불고 살아. 하하하. 열여섯 살 묵었응 게 쬐깐했지. 결혼하고 큰 게 안 작은 디, 그 때는 쬐깐하더라고. 하하하.”

다섯 살 어린 아내는 4~5년 전 90 아님 91세로 세상을 떠났다. 어르신에게 할머니 안 보고 싶으세요? 할머니?”라고 여쭸다. 어르신은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보고 싶어봤자 볼 수가 없응게. 하기사 지금도 날마다 가서 보기는 보요. 여기서 솔찬히(상당히) 멀어요. 요거(전동기) 타고 10분 넘게 고향에 가야 돼. 안 가는 날 별반(거의) 없죠. 심심하고 그러니까 요넘 타고 매일 갔다 와.”

아내를 보러 봉황마을 고향 땅 묘지를 매일 오간다는 어르신 이야기에 콧등이 시큰해졌다. 아내 덕분에 100년 삶이 녹아 있는 두 마을을 오가는 어르신의 아내가 궁금해 사진이라도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방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담뱃갑이 눈에 띄었다. “지금도 담배를 피우시냐고 놀랬듯 여쭈니, 또 우스운 답변이 나왔다.

하루에 여나무개(열개 가량) 피워” (몇 살 때부터 피우셨어요?) “스무 살 때, 아버지 담배 몰래 돌라서(훔쳐서) 폈지. 허허허. 아버지 모르게 연초 쬐끔씩 종이에 몰아서(말아서) 폈어.”

휴대전화 없는 어르신의 집 전화기 옆에는 삐뚤빼뚤 누군가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쓰인 종이가 군데군데 붙어 있었다. 어르신은 빙긋이 웃었다.

내가 보면서 따라 썼는데 내가 해 놓고도 몰라요. 허허. 평생 글을 못 배워 갖고.”

어떻게 혀야 죽는 것이고, 요게 걱정

벽면 위에는 어르신 잔치인지 아내 생일인지 알 수 없는 칠순 잔치 때 찍은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다. 어르신은 “(그사이) 첫째 아들과 셋째 딸이 세상을 먼저 떠났다면서 내가 팔자 좋다고 그랬는데, 시방은 (자식을 먼저 보내서) 팔자가 제일 나쁜 사람 돼 버렸다고 한탄했다.

어르신에게 아프신 곳은 없으시냐고 여쭸다.

현재도 변비약, 소변약, 눈에 넣는 약 하여간 몇 가지 먹고 있어. 코로나 땜시 놀 사람도 없고, 뭔 일을 해야 시간이 잘 가는데 시간도 안 가고. 인자는 살 것이 걱정이 아니라 죽을 것이 걱정이야. 어떻게 혀야 죽는 것이고, 요게 제일 걱정이여.”

어르신에게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라고 인사드렸다.

이근태 이장은 마을회관 문을 닫은 게 어르신에게는 가장 아쉬운 일이라고 말했다.

코로나가 없었으면 마을회관에서 맛있는 음식 드시면서 수다 떨고, 아내에게 갔다 오고, 순창에서 콩 심고, 담양에서 깨 털며 즐겁게 보내셨을 오판동 어르신. 오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보니 어르신은 집 밖에서 뭔가를 정리하고 계셨다. 갑자기 먹먹해지는 바람에 애꿎은 푸른 하늘만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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