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골소리/ ‘선생님’ 부끄럽습니다.
상태바
빈골소리/ ‘선생님’ 부끄럽습니다.
  • 림양호 편집인
  • 승인 2021.05.12 16: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월은 여러 생각을 하게 합니다. 이번 주말은 스승의 날 입니다. 전쟁을 치른 1950년대에는 보탤 말이 없고, 1960년대에도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참 많았다고 기억합니다.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형편이어서 강냉이(옥수수)죽을 단체급식하는 상황이었으니 학자금(월사금)을 못 내는 아이, 교복 살 돈이 아예 없는 아이, 수학여행 경비 걱정하는 아이 등 힘들고 어려운 처지를 다 기억하기 쉽지 않습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에게는 요즘 규모에는 한참 못 미치는 장학금을 주기도 했는데 모두 감당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시절 담임선생님들이 부족한 월사금(다달이 내는 수업료) 등을 슬쩍 도와줘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는 이도 여럿 있습니다.

얼마 전, 한 신문 칼럼에서 평생 교직에 몸담다 정년을 앞둔 선생님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그 때 도와준 아이들을) 졸업하고 나면 거의 못 만나게 되더라고요. 졸업생 모임이 있어도 안 나타나고, 다른 친구들이 간혹 찾아오는 모교 방문도 오질 않거든요.” 그 선생님은 졸업한 아이들을 못 만나게 된 이유로 아마도 도움받은 것이 있어서 위축되는 게 싫기 때문일 것이라며 학생들은 선생님의 경제적 지원을 빚진 것으로 생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돈을 돌려받을 생각조차 없는데, 학생은 무언가 부담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아쉬운 것은 정년이 다가올수록 그 아이들이 그립고 한번 보고만 싶은데 그럴 수가 없는 거라고 했습니다. 그 선생님은 지금 생각해보면 제 탓입니다. 제가 잘못한 것이지요. 교회에 다니지는 않지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의 뜻이 이거였구나 하고 생각한다면서 학교 다닐 때는 말썽도 피우고 더러는 맞으며 혼나기도 했던 아이들은 자주 만나게 된다. 그런 아이들이 모임에도 자주 오고 더 당당하게 활기차게 다닌다. 말하자면 빚진 게 없고, 선생님이 오히려 자기에게 빚졌다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며 가끔 수십년 전에 제 인생에 도움을 주신 선생님이 무척이나 그립습니다라는 언론 보도를 보며 그 학생이 자존심과 위축됨을 다 벗어버리기까지 긴 세월이 필요했고, 고마움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때가 늦게라도 찾아온 것이라 그런 기사가 반갑고 고마울 때가 있었다며 말끝이 잠겼다고 합니다.

그 글을 읽고, 잊힌 선생님과 고마운 선생님을 기억해봤습니다. “선생님, 잘 지내시지요” “옛날이 생각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드리면 기뻐해 줄 선생님을 찾아봤습니다.

저는 모범생도 유별난 말썽꾸러기도 아니었지만(문득,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막상, “선생님의 제자입니다라고 선뜻 인사드릴 스승을 찾지 못했습니다. 아니, 인사드리면 저의 옛 모습을 기억하고 구김 없이 응대해줄 선생님을 금방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학창시절 불러 익숙한 노래는 또박또박 기억하는데, 저를 기억할 것이라고 확신할 선생님이 없는 처지가 부끄럽고 창피합니다. 배운 학생이 가르쳐주신 스승을 기억하지 못하면 오로지 학생의 잘못입니다. 가르침을 받고 배웠는데 그 가르침에 따라 신실한 관계를 맺지 못한 불손이 더 부끄럽습니다.

저는 선생은 있어도 스승은 보이지 않고, 학생은 많지만 제자는 없다는 요즘 세태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교육 현장에서 스승이 사랑만 부족하고, 학생의 정성만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르침을 받고 배웠다는 학생이 없으면 선생은 있어도 스승은 없고 학생도 제자 아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의 은혜는 다 같다는 뜻)’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르침을 받은 학생(학습자)이 가르침을 준 선생을 스승이라 부르는 건 당연합니다.

스승의날을 앞두고, 그동안 편하게 인사드리고 찾아뵐 스승을 모시지 못한 무례와 불손을 반성합니다.

오늘, 순창고등학교 국어교사가 전교생에게 선생님에게 손편지를 쓰게 했다는 보도에 절로 기쁩니다. 이 삭막한 세상, 대학입학 성적이 최고(?)인 교육 환경에서 참 좋은 일입니다.

순창의 고등학교와 군청이 지원하는 옥천인재숙이 입시교육에 메몰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스승을 섬기지 못해 부끄럽고 창피한 오늘을 반성하며 제 이름을 기억하는 스승님을 찾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금과초등학교 100주년 기념식 4월 21일 개최
  • [순창 농부]농사짓고 요리하는 이경아 농부
  • 우영자-피터 오-풍산초 학생들 이색 미술 수업
  • “이러다 실내수영장 예약 운영 될라”
  • [열린순창 보도 후]'6시 내고향', '아침마당' 출연
  • 재경순창군향우회 총무단 정기총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