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군 향토문화유산 ‘삼외당’ 등 3건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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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군 향토문화유산 ‘삼외당’ 등 3건 지정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21.05.12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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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은 지난 7일 군청 영상회의실에서 순창군 향토문화유산 심의위원회를 열어 삼외당3건을 군지정문화재인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순창군향토문화유산심의위원회는 군내 소재 문화유산 중 보존가치가 있으나 기존에 국가 또는 도지정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비지정문화재를 보호 관리하기 위해 2019년에는 한응성 의병장 충의비김극뉴 묘역을 순창군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바 있다.

(이남섭 부군수)은 이날 새 위원 12명을 위촉하고, 위원장에 강병문 전 순창향교 전교를, 부위원장에 설인환 금과면민회장을 선출했다. 위원들은 상정된 비지정문화재 3건에 대해 심의하고 삼외당’, ‘여암 신경준 묘역’, ‘정부인 진주강씨 묘역 및 석물을 순창군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 가결했다.

군은 지정 행정예고 30일 동안 이해관계인과 주민 등의 의견 수렴을 거친 후 오는 6월 중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 고시할 예정이다.

 

2021년 지정 순창군 향토문화유산

 

삼외당

삼외당(三畏堂)은 현존하는 도내 누정 건축물 중 처음 건립된 연대가 가장 오래된 건축물 중 하나로, 건립자 홍함(洪涵)이 여러 명사들과 주고받은 시문(詩文)이 적힌 현판 등의 역사적 가치가 인정돼 순창군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삼외당은 금과면 소재지인 매우마을 입구 지방도 730호선이 지나가는 높은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마을 출신 홍함(1543~1593)이 자신의 아호(雅號)를 따서 지었다. 홍함은 사헌부 감찰 등을 지내고 임진왜란 때 김천일 막하에 들어가 여러 차례 공을 세웠다.

삼외당은 홍함이 당대 명사들과 교유하면서 시문과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누정 현판에 홍함과 교류한 호방한 선비 백호(白湖) 임제(林悌), 순창군수와 전라도도사를 지내고 임진왜란 때 장성에서 창의한 오봉(鰲峰) 김제민(金齊閔), 담양에서 의병에 참가한 충장공 양대박(梁大檏) 세 사람의 시가 걸려 있다.

현 건물은 철종7(1856) 남양홍씨 후손들이 다시 지은 것이다. 구조는 자연석 화강암 덤벙 주초 위에 원형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었다. 지붕은 홑처마의 팔작지붕 양식이다. 마루는 우물형 마루로 되어 있으며, 가운데 칸은 다른 부분보다 약 5높여져 있으며, 방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지형이 변했지만 옛날에는 누정 앞으로 시냇물이 흘러 전국에서 온 수많은 풍류객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누정 주변에는 수백 년 된 상수리나무와 느티나무들이 멋진 풍광을 유지하고 있어 지금도 마을 주민의 휴식처 역할을 하고 있다.

다만 2019년에 현지조사를 진행했던 전북대 송만오 교수는 다음과 같은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첫째, 누정 지붕 기와가 전통적이지 않고 많이 내려와 있는 상태임. 둘째, 계단을 내려가는데 착시현상이 있을 수 있으므로 계단 끝부분에 밝은 색 테이프를 붙이는 등의 조치 필요. 셋째, 삼외당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담은 안내판 설치. 넷째, 도난에 대비해 현판은 별도 장소에 보관하고, 복제본 현판을 제작해 걸어 둘 것.

 

여암 신경준 묘역

여암 신경준 묘역은 조선 후기 대표 실학자 여암 신경준의 인물 중요성과 업적이 인정돼 순창군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순창읍에서 국도 24호선을 따라 남원 방향으로 가다 보면 태자 삼거리가 나온다. 이 곳에서 우측으로 섬진강을 따라 형성된 산자락 중턱 너머 화탄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야산에 신경준 묘와 묘비가 있다. 묘는 신경준 사후 12번의 이장을 거쳐 현재 위치에 자리 잡았다. 묘비 건립 연도가 무진년(戊辰年) 4월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1808(순조 8) 또는 1868(고종 5)인 것으로 추정된다. 묘 앞에 구비와 신비가 세워져 있다.

다만 여암 신경준의 실학사적 위치를 감안할 때 보완사항이 매우 많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2019년에 현지조사를 진행했던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첫째, 묘 앞 구비와 신비의 위치를 재조정해야 한다. 둘째, 네 명의 합장묘라는 점을 감안해 상석을 재조정하고 이런 사실을 알리는 안내표지판 제작이 필요하다. 셋째,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묘 진입로 정비가 매우 시급해 보인다.

 

정부인 진주강씨 묘역석물

정부인 진주강씨 묘역 및 석물은 묘비와 무인석 등 석물의 가치를 높이 인정받아 순창군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동계면 현포리 산35에 자리 잡고 있다.

정부인 진주 강씨는 조선 세종 때의 명재상 황희의 할머니이다. 묘소 봉분은 타원형으로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묘제다. 묘역에는 석인상 2, 묘비 2, 상석 1, 산신석 1기 등 석물 6기가 배치되었다.

진주강씨 묘역 및 석물의 가치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가장 특징적인 것 중 하나는 석인상(石人像)이다. 1442년 손자 황희 정승에 의해 세워진 이 석인상은 소모자(작은 모자), 즉 감투를 쓴 무인석(武人石)이다. 감투 높이가 아주 낮은데, 이는 원나라 영향으로 개체변발을 하던 고려 말에 상투가 없이 유행한 낮은 형태의 감투 형태가 조선 초까지 남아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까지 소모자 감투형 무인석은 전국적으로 18곳에서 확인되었다. 경기지역 16, 대전광역시 1, 순창 1곳이다. 진주강씨 묘역 석인상은 그중 4번째로 건립되었고, 전라도에서는 유일하다.

둘째, 소모자 감투형 무인석이 4(황희 본인, 할머니, 모친, 셋째아들)에 걸쳐 묘역에 조성된 것은 전국에서 유일무이하다는 점이다. 이는 조선 초기 복식 및 묘제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갖는다.

셋째, 조선 전후기 양식을 보여주는 묘비이다. 묘비는 상석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1기씩 세워져 있다. 좌측 구비(舊碑)는 묘표(무덤 앞에 세우는 푯돌)1564(명종 19)에 세운 조선 전기 양식으로 연꽃잎 모양의 하엽방부형이다. 우측 신비(新碑)는 묘갈(무덤 앞에 세우는 둥그스름한 작은 비석)1890(고종 27)에 세워진 조선 후기 양식으로 지붕 형태의 옥개방부형이다. 조선 전후기 양식을 한 번에 볼 수 있어 자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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