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28) 적성 석산리, 섬진강 관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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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28) 적성 석산리, 섬진강 관광지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21.05.19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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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산리는 적성면에 속하는 법정리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강경마을과 입석도왕산내 마을을 병합해 석산리라 개칭했다. 행정리에 강경도왕입석 마을이 있다. 북쪽으로 임실군 덕치면과 접하고, 남쪽은 적성면 내월리, 동쪽으로는 적성강을 경계로 동계면 어치리, 서쪽은 인계면 세룡리와 접한다. 2021513일 기준 인구는 58(강경 25, 입석 25, 도왕 8)가구, 89(강경 37, 입석 39, 도왕 13)명이다.

 

마을 명칭 유래

 

강경마을은 마을 앞으로 흐르는 섬진강(적성강) 경관이 무척 아름다워 강경(江景)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입석마을은 원래 선돌이라고 했는데, 마을 입구에 세워진 돌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도왕마을은 두류봉(頭流峰546) 아래 군신봉조(君臣奉朝) 형상이 있어 임금과 신하가 아침 조회를 하는 대혈처가 있다고 한다. 도왕은 임금이 도착했다는 뜻이라는 설도 있고, 임금과 신하가 도읍을 잘 지킨다는 의미로 도읍 도’()를 쓰고, 읍이 왕성하다는 의미로 왕성할 왕’()을 쓴다는 설도 있다.

강경마을 전경
강경마을 전경
도왕마을 전경
도왕마을 전경
입석마을 전경
입석마을 전경
입석마을 선돌
입석마을 선돌

 

섬진강마실휴양숙박단지

 

섬진강마실휴양숙박단지는 섬진강 시골길 생태관광지 조성사업 일환으로 조성되어 2011년 개장했고, 올해 2월에는 숲속 야영장까지 확장했다. 휴양단지 바로 앞으로 섬진강이 흐르고, 장군목과 용궐산, 순창예향천리마실길과 연계돼 있어 사계절 내내 관광객이 즐겨 찾고 있다. 여름이면 섬진강 슬로슬로 발효마을축제도 열려 도시민들도 많이 찾는다.

섬진강마실휴양숙박단지
섬진강마실휴양숙박단지

 

석산리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

불암사 터(적성면 석산리 산130-2번지) 중앙부 석축 서북 편 암반에 11~12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마애불이 조성되어 있다. 서남향 암면에 좌불상으로 조각되어 있는데, 주민들은 암불바우라고 부른다. 2003년 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184호로 지정되었다.

석산리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은 높이 3미터 정도 되는 바위에 새겨져 있다. 불상 총 높이는 2.6미터이고, 1.3미터 정도의 크기다. 얼굴선이 전형적인 둥근 얼굴이 아닌 네모 형태라는 점, 상반신에 비해 하반신이 왜소하며, 어깨가 왜소한 점 등이 고려시대 불상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이 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나 일각에서는 백제시대 불상이라는 의견도 있다. 불상 앞에는 작은 공터가 있는데 이곳에 옛날 불암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석산리 마애여래좌상
석산리 마애여래좌상

 

불암사 터

불암사 터에 대해 여지도서(輿地圖書1765)에서는 불암사는 군 동쪽 30리에 있는 취암산에 있다라고 하였고, 옥천군지(1760)에는 불암사 창건 연대에 대해 불암사 창립은 취암사가 창립되기 이전이다라 하였다. 이로 보아 취암산에 취암사가 있었고, 불암사는 취암사 창립 전부터 있었던 것 같다.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불암사는 서룡산(瑞龍山)에 있다. 서룡산은 군 동쪽 25리에 있다고 했다. 그러나 호남읍지(1895)순창군지(1985)에는 우두산(牛頭山)에 있다고 했다.

입석마을 앞 기념비에 의하면 불암사에는 주지 도주스님이 마지막까지 주석(駐錫)했으며 1869년경 폐사되었다고 되어 있으나 1779년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 ‘순창조에는 이미 폐사된 사찰로 나타나 있다. 불암사 터 옆쪽 동굴에서 금동불상 한 구가 출토되었다고 전한다. 금동불은 창건설화에도 등장한다.

 

불암사 건립폐사 설화

백제 의자왕 때 한 도승(궁선대사라고도 함)이 가람을 세우고 명당자리를 찾아 전국을 다녔다. 순창 적성에 들러 섬진강과 용궐산, 무량산을 바라보면서 부근에 길지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소머리 형상의 우두산에 올라보니 과연 큰 가람터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대웅전 자리를 찾지 못하고 날이 저물어 민가에 돌아와 잠을 청했다.

꿈속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금동불과 처녀를 주면서 말했다. “불상은 절의 대들보가 될 것이요, 처녀 보살은 중생 중에 아이가 없는 사람에게는 아이를 가져다 줄 것이다. 그러니 칠성당에 봉안하라. 내가 선 자리에 대웅전을 세우면 대성왕의 불전이 될 것이다.” 도승이 잠에서 깨어 꿈속의 장소를 찾아가보니 과연 처녀보살이 금부처를 업고 뜰에 서 있었다. 도승은 그 자리에 대웅전을 짓고 불암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한때 흥했던 불암사가 쇠락하게 된 연유에 대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불암사에는 매달 보름날 저녁이면 처녀 보살들이 만수탄에서 목욕을 하는 날이었다. 어느 보름날 한 젊은 스님이 목욕하는 여승들을 훔쳐보다가 막 옷을 입는 처녀보살을 안아버렸다. 보살이 놓아 달라고 간청했으나 젊은 스님은 더욱 굳세게 안아 버렸고, 그러자 처녀 보살이 돌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그 뒤 주지스님이 불심이 지극했던 처녀 보살을 위해 암벽 바위에 마애불을 새겼다.

며칠 후 주지스님은 송아지 바위 밑에서 이빨 빠진 늙은 암소가 슬피 울고 있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깨어 황급히 대웅전에 가보니 황금부처가 땀을 흘리고 있었는데 이런 괴이한 현상이 일주일 동안 계속되었다고 한다. 그 뒤 불암사는 신도수가 점차 줄어들어 결국 폐사가 되고 마지막 주지인 도민 스님은 금부처를 땅에 묻고 회문산으로 떠나며 언젠가는 금부처를 다시 찾는 날이 꼭 올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석산리 야생차

불암사 터 아래 계곡 주변에 야생 차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이곳을 비롯해 순창군 내에서 자라는 야생 차나무는 고려 때부터 지금까지도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다. 바윗돌이 많아서 차나무가 크게 자라지는 못하고 키 작은 나무로 숲을 이루고 있다. 토질이 좋은 곳의 차나무는 밑동이 상당히 큰 나무도 관찰된다.

석산리 야생차
석산리 야생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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