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채계산 아래 보리밭, 그리고 매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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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채계산 아래 보리밭, 그리고 매미터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21.05.26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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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느끼는 바이지만 들판에 나가보면 계절의 변화를 더욱 실감한다. 채계산 출렁다리 주차장 주변 보리밭도 초록빛 바다에서 황금물결로 거의 옷을 바꿔 입었다. 그래서 보리밭은 초여름으로 내닫는 길목의 척후병이라고 했던가?

쌀이 넘쳐나 굳이 보리를 재배하지 않아도 되는 요즘이지만 그래도 종달새가 보리밭 위에서 지저귀고, 보리밭 사잇길을 걷는 풍경은 모두가 공감하는 농촌의 정겨운 모습 중 하나다. 채계산 아래 들판에 유채꽃 뿐만 아니라 보리밭도 펼쳐져 있어 자연스럽게 보리밭이라는 노래를 흥얼거려 본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아동문학가 박화목이 작사하고 윤용하가 곡을 붙인 이 가곡은 두 사람이 한국전쟁 당시인 1952년 부산에서 피난민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1971년 가수 문정선이 대중가요로 취입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평일인데도 수십 대 차량이 채계산 출렁다리 아래 주차돼 있다. 강천산에서 채계산, 그리고 용궐산과 장군목으로 이어지는 순창 관광의 기반이 이제 어느 정도 구축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순창읍으로 돌아오면서 관광객들이 명승지만 구경하고 가버리지 않고 돈을 풀게끔 하는 맛집이 명승지 주변에 들어서야 지역경제에 도움이 될텐데하는 생각 끝에 적성면과 관련된 한 여인이 떠올랐다. 바로 적성 임동마을 매미터에서 소리 공부를 시작해 '하늘 아래 제일 서러웠던 소리를 하다가 간 명창', ‘판소리계의 이미자(李美子)’라고 칭송 받았던 이화중선(李花中仙18991943)이다.

이화중선은 1923년 경복궁에서 열린 전국판소리대회에서 <심청가> 중 황후가 된 심청이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탄식하는 대목인 추월만정을 부르며 20년 동안 최고 여성 소리꾼으로 군림하게 된다. 그녀 등장 이후 제2의 이화중선을 꿈꾸는 여류 명창들이 나왔고 그 숫자나 인기 면에서 남자 명창들을 압도하기 시작한다. 그녀가 온다는 소문이 나면 구름떼 같은 인파가 모였단다. 인당수로 끌려가는 심청, 옥에 갇힌 춘향, 쫓겨나는 흥부의 서러운 처지를 담은 이화중선의 소리는 일제강점기 기댈 곳 없고 서럽던 민중의 위안과 희망이 되었다.

이화중선은 목포에서 태어나 전남 보성으로 이사해 살다가 17세 때 남원 수지면 박씨 가문으로 출가했다. 평범한 아낙네였던 이화중선은 어느 날 송만갑이 이끄는 협률사 공연을 구경하게 된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판소리에 넋을 잃고 소리를 배우고자 봇짐을 싼다. 그리고 장재백 명창의 조카로 소리꾼이자 무당이었던 장득진에게 판소리를 배운다. 적성면사무소에 보관된 장득진 호적에는 1917년에 장득진(당시 33)이 남원에서 순창 적성면으로 이사했고, 이화중선이 첩으로 올라가 있다. 이화중선은 동생 이중선과 함께 적성 운림리 매미터에 기거하면서 장득진에게 <춘향가>, <흥보가> 등을 배웠다. 이후 장득진을 떠나 서울로 올라가 송만갑, 이동백 등에게 판소리를 배웠다.

매미터는 소리꾼들의 득음을 향한 소리가 하루 종일 끊이지 않고 들리는 매미 우는 소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화중선, 박복남 명창을 비롯해 수많은 당골네와 소리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적성면 어르신들은 자신들이 어렸을 적에 이화중선이 이곳에서 살면서 다른 무리들과 앞산을 돌며 북과 장구에 맞춰 소리를 하는가 하면, 마을 입구 꾸지나무에다 줄을 매고 그 패거리들이 줄타기를 하는 등 야단법석을 떨었다고 한다.

이화중선은 남원에서는 평범한 가정주부로 3년 살았을 뿐이고, 적성 매미터에서 5년 동안 소리 공부를 했다. 그래서 그녀는 남원 출신 명창이 아니라 순창 출신 명창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매미터에 이화중선 소리 공부터라는 안내판이라도 설치하고 정비하자. 관광객들이 강천산에서 채계산 출렁다리 가는 길에 매미터에 잠시 들러 순창 판소리와 이화중선의 득음 장면을 상상하는 스토리텔링을, 왜 이런 엄청난 자원을 활용하지 못하는가? <목포의 눈물>을 부른 이난영이나 <동백아가씨>를 노래한 이미자가 순창에서 노래 공부해 대성했어도 그녀들을 이렇게 대우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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