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연의 그림책(9) 수탉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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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연의 그림책(9) 수탉의 비애
  • 김영연 길거리책방 주인장
  • 승인 2021.06.09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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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연 길거리책방 주인장

 

 

우리 집에는 구순이 가까운 어머니와 중늙은이 부부가 산다. 집안에는 고양이 3마리, 마당에 개 한 마리, 밥 때면 찾아오는 동네 고양이 대여섯 마리가 함께 살고 있다. 귀촌한 첫해, 옆집 찬스로 뚝딱뚝딱 닭장을 만들고 청계 암탉을 몇 마리 얻어왔다. 다음 날 달걀 한 개, 다음날 두 개, 이렇게 차츰 늘어나더니 어느 날, 달걀 일곱 개를 얻었다. 따스한 온기의 알이 신기하고 신기하였다. 어머니는 우리 집에서 생산적인 일 하는 놈은 저 달구 밖에 없네하시며 닭장 앞에 앉아서 닭들과 대화를 하시곤 했다.

다음 달 순창 읍내 장에 나가 수탉 한 마리를 사 왔다. 엄청 멋진 놈으로, 그것도 오천 원 더 비싼 놈으로. ‘이제 유정란을 먹어야지하고 꿈을 야무지게도 꾸었다. 그런데 그게 사단이었다. 젊은 수탉을 닭장에 풀어주었더니, 암탉을 얼마나 못살게 굴었는지, 암탉들의 몰골이 말이 아니고, 기어코 출산거부(?)에까지 이르렀다. 그리하여 혈기 왕성한 수탉은 결국 백숙 신세가 되고 말았다는 웃픈 이야기이다. 그 후 암탉들이 다시 알을 낳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알의 개수도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지금까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과 어머니에게 기쁨을 제공하고 있다. 알을 못 낳는(또는 못 낳게 하는) 수탉은 한마디로 무용지물인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이호백 글/이억배 그림/재미마주)20여 년 전에 나온 우리나라 1세대 그림책 중의 하나이다. 멋진 수탉의 모습이 한 폭의 동양화에서 튀어나온 듯하다. 집에 있는 그림책을 들춰보니 무려 1998년 작가 사인본이다.

어느 날 아주 튼튼한 수평아리 한 마리가 가족들의 관심과 환호 속에서 태어난다. 수평아리는 늠름한 수탉으로 성장해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이 되었다. 이때 힘겨루기를 팔씨름으로 하는 장면이 유머러스하다. (닭들이 깨금발로 닭싸움을 했으면 더 재밌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젊은 암탉들이 그 수탉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러나 세월의 힘은 막을 수가 없다. 어느 날 더 힘이 센 수탉이 나타나, 그 수탉은 동네에서 술을 제일 잘 마시는 수탉이 된다. 한 마디로 ”~ 라떼는 말이야를 외치는 꼰대 수탉으로 전락한 것이다. 정식 술자리에는 끼지도 못하고 한쪽 구석에서 항아리채로 술을 들이키는 그 모습이 측은하다.

이때 수탉의 아내가 조용히 다가와 건강하게 자라나는 손자, 손녀들, 그 누구보다 힘이 센 아들들, 그리고 알을 많이 낳는 딸들을 보여주면서 여전히 그가 제일 힘세고 행복한 수탉이라고 위로한다. 지혜롭고 현명한 암탉의 대처이다.

그림책에서는 아들, , 손자, 손녀들이 모여 할아버지 수탉의 회갑연을 여는 것으로 행복하게 끝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녹치만은 않다. 현대 사회에서 나이 육십이면 아직도 자식들을 위해, 또는 자신을 위해 경제활동(노동)을 계속해야 하는 시기이다. 그리고 남자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평균수명이 늘어남과 동시에 한국사회에서는 노부모 봉양(또는 돌봄)이라는 책무가 막대하고, 한편으로는 황혼 육아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는 현실이다. 그것뿐이랴, 건강에 자만했던 몸뚱아리에 하나둘 적신호가 오는 시기이기도 하다. 지난달만 해도 통증을 호소하는 남편을 위해 새벽 두시에 응급실에 다녀온 일이 있다. 그나마 가족이 있으니 다행이었다.

순창에 내려와 보니 이런저런 이유로 홀로 계신 어르신들이 많다. 자식들은 다들 타지로 나가고, 혹은 배우자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몸이 힘들고 외로워도 정든 생활의 터전을 버리고 자식 따라가긴 싫고, 언젠간 돌아올 자식들을 바라고 산다.

다행히 필자는, 아직 결혼에 뜻이 없거나 결혼했지만 아이 생각이 없는 자식 덕분(?)에 인생에서 오랜만에 홀가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물론 시댁과 친정 두 어머니의 건강이 바람 앞의 등불이긴 하지만 그나마 잘 버텨주고 계셔서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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