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구절국/ 나라를 훔친 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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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구절국/ 나라를 훔친 도둑
  • 정문섭 박사
  • 승인 2021.07.07 15: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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竊鉤竊國
훔칠 절, 갈고리 구, 나라 국

쇠갈고리 훔친 좀도둑과 나라 훔친 큰 도둑.

초등학교 4학년 때, 주번을 맡은 나는 책상과 걸상을 정리하다가 책상 밑에 떨어져 있던 얼마 쓰지 않은 새 지우개를 발견하였다. 나는 웬 횡재냐 싶어 주머니에 넣었다. 호롱불 밑에서 숙제를 하던 나를 보던 어머니가 물었다.

웬 지우개냐? 새 거네. 언제 샀니?”

사긴요. 제가 돈이 어디 있어요? 교실에서 주운 건데요.”

얘야.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단다. 누구 건지 모르지만 도로 갖다 놔라.”

이튿날, 아니나 다를까 한 친구가 새 지우개 없어졌다며 주번인 나에게 물어왔다. 난 호주머니의 지우개를 만지작거리며 우물거리고 있었다. 그냥 내놓기가 아까웠다. 나는 오전 내내 마음의 갈등을 겪다가 결국 애들이 도시락을 먹는 어수선한 틈을 타 지우개를 몰래 꺼내어 바닥에 떨어뜨렸다. 어떤 아이가 지우개를 주워서 이거 누구 거냐 하고 물었다. 지우개를 잃어버렸다 다시 찾은 그 친구가 기뻐하며 웃던 모습, 나에게 도불습유(道不拾遺)의 습관이 배게 한 함박웃음이었다.

중국 전국시대 장자가 장자(莊子)10 거협편(胠篋篇)에서 이런 말(요약)을 남겼다. 상자를 열고 궤짝을 뜯는 도둑에 대비하려면 줄로 꽁꽁 묶어야 하는데 큰 도둑이 오면 상자 째로 훔쳐 간다. 그러니 지혜로 상자를 잘 간수한다는 것은 큰 도둑을 위해 물건을 모아주는 것이 된다. 아무리 성인이 잇달아 나와 세상이 잘 다스려진다 해도 그것은 盜跖(도척, 중국춘추전국시대에 살았다는 전설상의 도적)과 같은 큰 도둑만 이롭게 해 줄 뿐이다. 곡식을 계량하는 말과 섬으로 정확히 잰다고 해도 말과 섬을 훔치고, 저울로 계량하려 하면 저울을 훔치며, 부신(符信)과 옥새(玉璽)를 만들어 신표로 쓰면 그 부신과 옥새마저 도둑질할 것이다. 인의(仁義)의 도를 내세워 사람을 바로잡으려 한다면 그 인의마저 도둑질할 것이다. ‘조그만 쇠갈고리를 훔친 사람은 목을 베이지만, 나라를 훔친 자는 제후가 된다(彼竊鉤者誅 竊國者爲諸侯).

장자는 도덕이나 지식, 문명 등의 부정적 측면을 꼬집으며 성인이나 지식인은 위정자라는 큰 도둑을 돕는 파수꾼에 불과하여, 결국 좀도둑은 큰 벌을 받고 큰 도둑은 부귀를 누린다고 비판하였다. 훗날 이 성어는 시비나 상벌이 공평하지 못하고 지위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 되었다.

기원전 365년경 태어났다는 장자가 나라를 송두리째 들어먹어도 성공하면 제후가 되었으니 공정을 말할 수가 없다고 한 이 큰 도둑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나타내져 왔다. 권세나 돈이 많은 자가 저지르는 부정이나 부패를 법대로 처벌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옛 군주 시절이 민주화되어 세상이 뒤바뀌었다 해도 그 무리는 여전히 권세와 돈의 힘으로 서로 밀고 당겨 주어 법의 틈을 잘도 빠져 나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장자의 이 큰 도둑이야기는 이젠 좀 달리 보아야 할 것 같다.

총리와 장관 후보자들, 능력이 있다 하여 발탁했지만, 뜻밖에도 청문회 문턱에서 좌절되고 수모를 받아 아니 나옴만 못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 일부 무분별한 언론이 부풀린 것도 있긴 하지만, 이른바 네티즌 수사대가 경찰과 검찰 못지않게 후보자의 온갖 부도덕한 일들을 들추어내어 그 신빙성을 높이기도 한다. 온갖 인맥과 아빠 엄마 찬스를 써온 일과 불법과 편법으로 부를 축적하고 탈세한 일들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다. 자칫하다간 그간 쌓아놓은 명예도 추락하고, 재산이 털리거나 감옥에 갈 수도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니까 옛날 왕이나 제후처럼 권세와 돈으로 나라를 송두리째 가져가는 일이 어렵게 되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들키지 않아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고, 관계(官界)가 아닌 다른 분야에도 많은 비리와 비상식이 숨겨져 있을 것은 자명하다. 그러므로 수사대의 활약과 검증에 대해 사람들이 기대하고 반응하며 열광까지 보내니 이제는 필수적인 것이 되고 있다. 그간 관행이라며 덮었던 비리들이 드러나 세상에 알려지면서 경각심이 커지고 학습효과와 더불어 예방도 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의 선거에서 올바르고 유능하며 국민을 위하는 후보자들이 공천되고 우리들의 투표로 심판하여 권세와 돈이 많은 큰 도둑들이 걸러 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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