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농부(14) 바람의 강아지. 미르와 냇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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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농부(14) 바람의 강아지. 미르와 냇물이
  • 차은숙 글짓는농부
  • 승인 2021.07.2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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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농장은 농한기다. 하우스는 가을 농사를 위해 밭을 갈아 놓고, 쉬고 있다. 그래도 매일 농장으로 출근을 한다. 좋은 흙을 만들기 위해 토마토 줄기도 파쇄 했고, 두둑도 만들었다. 가끔 흙에 좋은 미생물을 주는 일도 있지만 개밥을 주고, 강아지를 보는 게 주된 일이다.
우리 집 개 벼리가 새끼를 낳았기 때문이다. 복더위 속에 낳은 강아지다. 벼리의 출산 조짐이 보이자 개집을 다시 지었다. 겨울에 출산을 했으니 1년도 안 되어 연거푸 강아지를 낳은 것이다. 그 덕에 개집 다시 짓기도 두 번째다.


지난번 출산은 한참 추운 12월이었다. 마당에 있는 개집을 보온하느라 야단법석을 떨었다. 스티로폼으로 개집 밖을 두른 다음 두툼한 솜이불 한 겹을 더해 씌웠다. 그 위에 눈이 와서 젖으면 안 되니까 포장까지 두르고, 개집 안에 두둑하니 짚단을 펼쳐두었다. 기다렸다는 듯 벼리는 몸을 풀었다. 눈처럼 하얀 강아지 다섯 마리를 순풍순풍 낳았다.
강아지들은 추운 날씨에 실뭉치처럼 꽁꽁 뭉쳐서 한 달을 꼼지락거렸다. 엄마가 된 벼리도 강아지들을 품고 있다가 밥 먹고 용변 볼 때만 일어나는 듯했다. 한 보름 지났을까 낑낑대는 소리도 커지고 눈을 반쯤은 뜬 것 같았다. 추위 속에서도 꼬물꼬물 기어 다녔다. 새로 지은 제법 널찍한(?) 개집이 자못 소란스러웠다.


또 보름이 지나고 집안으로 강아지들을 데려오자는 아이들 성화로 소풍 오듯이 오갔다. 작고 따듯한 배를 발딱거리며 살짝 귀를 접고 있는 작은 생명이 건네는 온기는 보기만 해도 마음을 데워줬다. 아이들은 강아지 발바닥에서 ‘꼬순내’가 난다며 분홍색 발바닥에 코를 갖다 댔다.
거실 바닥에 커다란 수건을 깔고 보니, 다섯 쌍둥이처럼 닮았다. 강아지들은 우선은 이름이 있어야 했다. 가족 단톡방의 공모전을 가졌다.


순이 1,2,3 돌이 1, 2라는 공산품보다 못한 이상한 이름부터 엄지, 검지, 중지, 약지, 소지 손가락이 다섯이라 다행인 이름까지 나왔다. 와 진짜 별로라는 카톡이 날아다닌 끝에 초승이, 상현이, 보름이, 하현이, 그믐이까지 달 이름을 총동원했고, 또 하늘, 햇살, 바람, 서리, 안개… 그러더니 하늬, 높새, 강쇠, 갈마, 된마 사전을 찾았다. 그러다가 보리, 현미, 수수, 흑미, 완두. 별게 다 나온다. 이렇게 가다가는 날 새겠지만 그래도 재밌다. 가족 투표에서 결정된 이름은 오곡, 곡식 이름 다섯이었다. 새 생명이 안겨주는 기쁨은 그토록 새록새록 했다. 


그러나 강아지가 커가는 속도처럼 기쁨이 자라지는 않는다. 입양을 시켜야 하므로. 우리 강아지들의 엄마가 집도 잘 보고, 말도 잘 듣고, 족보 있는 진돗개 후손임을 널리 알렸고, 다만 아빠는 바람이라서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도 강아지들은 모두 엄마를 닮았다고. 이름을 제대로 불러줄 새도 없이 입양을 보냈다. 강아지들을 분양 보내고 아이들은 무척 서운해 했다.
그리고 또 한 여름의 출산이라니! 이번에도 바람이 데려다 준 강아지다. 그리고 또 눈처럼 하얀 강아지 둘, 이름은 미르와 냇물이로 지었다. 이곳이 용내리이므로. 여름 출산은 엄마도 덥고 강아지도 덥다. 어미는 젖을 물리는 것도 마다한다. 그 꼴을 보기가 안타까워 젖병을 사다가 우유를 먹였다. 아직 눈도 못 뜬 아기들은 분홍색 혀를 할짝거렸다. 이 또한 생명의 약동이어서 내 마음도 떨렸다.


아기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날마다 달라진다. 반쯤 눈을 뜨더니, 비칠비칠 일어나 몇 발짝을 띄고, 더 크게 끙끙대고….  드디어 걷는다. 오늘은 미르야! 냇물아! 이름을 불렀더니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었다. 
하우스 안에도 깃든 또 다른 생명도 경이롭다. 벌써 4년째 토마토를 기르는 밭이라 연작이 걱정되어 한 동만이라도 가을 작기를 쉬고 녹비작물을 심기로 했다. 녹비작물은 땅에 유기물과 영양분을 공급해 준단다. 수단그라스 씨앗을 구해, 파종 했다. 그리고 점적호스로 물을 주고 하루가 지나자마자 싹이 나왔다! 세상에나 이렇게 빨리? 여기저기 찾아보니, 3일 이내에 싹이 난다고 한다. 요즘은 기온이 높고 다습하기에 일찍 나온 것 같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더 놀라운 일이 생겼다. 벌써 잎이 나온 것이다. 옥수수를 닮았는데 정말 솟아오르듯 나타났다. 이제 손톱만큼 자랐지만 바로 새끼손가락만큼 자라고, 점점 무릎까지, 허리까지 그리고 내 키보다 클 것이다.
농한기 농장에는 물결이와 미르와 수단이가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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