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닥 교육(6) ‘철수’와 ‘영희’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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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바닥 교육(6) ‘철수’와 ‘영희’가 먼저다.
  • 최순삼 교장
  • 승인 2021.08.11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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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똑같은 나뭇잎 두 장은 없다. 순창과 임실의 경계인 갈재에서 인계 도룡까지 매혹적인 백일홍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여름꽃이기도 하고, 나무이기도 한 백일홍도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한 어미의 자식이고, 같은 집에서 자란 형제자매도 아롱이 다롱이다. 왜 그럴까? 씨뿐만이 아니라 토양ㆍ습도ㆍ온도ㆍ바람 등의 환경요인을 나무와 꽃이 받아들이는 방식과 드러내는 방식이 다르지 않을까?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아이들은 왜 모두 다른가? 그리고 왜 다르게 성장해야 할까?”라는 질문은 교육현장에서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화두이다. 


작년 3월에 순창여중에 와서 학교 현황과 교육목표를 적어놓은 교장실 현황판을 걷어냈다. 그 자리에 아이들이 찍은 10개 반의 개인별 사진을 걸었다. 한명 한명의 이름과 얼굴을 알고, 이름을 불러주는 과정이 교육의 첫걸음이기에. 250명의 얼굴과 이름을 보고 또 보지만 쉽게 익혀지지 않는다. 관심 부족이다. 


1학년 2반 000는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데 체육 시간에 어떻게 수업을 받고 있는가? 2학년 1반 000는 책을 참 좋아하고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글로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더 많은 동기부여를 어떻게 할까? 3학년 1반 000는 음악 시간에 배운 진도아리랑을 수시로 친구들과 신나게 부르고 다닌다. 그 많은 흥은 어디에서 올까? 3학년 3반 000는 가정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 몸과 마음이 자주 아프고, 결석도 가끔 한다. 담임교사와 어떻게 도와줄까? 250명은 250개의 세계를 갖고 산다. 250명이 살아온 환경과 사는 방식이 다르다. 다름을 얼마만큼 깊이 아는가에 따라 교육의 성패가 갈린다. 


250명은 오늘도 자기 세계를 만들어가기 위하여 분투하고 있다. 둘러싼 환경, 연결된 사람들과 날마다 상호작용 하면서 자기 세계를 재구성하고 있다. 마치 눈 덮인 순창여중 잔디 운동장에서 주먹만 한 눈덩이가 각양각색의 어엿한 눈사람이 되듯이. 눈사람은 평평한 운동장, 찬 공기, 적당한 수분을 머금은 눈, 적절한 속도로 굴려주는 상호작용의 결정체다. 좋은 교육은 상호작용을 기본으로 삼는다. 그래서 학생 중심의 맞춤형 교육과 개별학습을 강조한다. 개별학습은 “아이들이 처한 가정환경과 학습환경을 얼마나 명확하게 알고 있는가? 교과의 범위를 넘어서 아이들의 잠재력에 얼마나 깊은 확신을 갖고 있는가?”가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하다. 


학교에 오는 아이들의 개별적인 특수성과 발전 가능성을 뒤로 하고, 교육부와 학교가 정해놓은 교육목표-내용-방법으로만 교육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짜인 학교 교육과정보다 학생 각자가 겪어가는 하루하루 일상이 더 중요하다. 순창에 살고, 순창여중에 다니는 아이들의 구체적인 생활상을 모르는 교육은 공염불이다. 


16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는 노래를 참 좋아하셨다. 남인수의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오만’으로 시작하는 〈애수의 소야곡〉과 이미자의 노래,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가 지친’ 〈동백 아가씨〉를 자주 부르셨다. 그런데 언제 어디서 부르는가에 따라 같은 노래가 다르게 들렸다. 일하면서 부를 때와 잔치 집에서 부를 때에 너무 달랐다. 똑같은 노래를 똑같은 사람이 불러도 다른데, 같은 교육을 했다고 아이들이 같아져야 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인간은 술어가 열려있는 존재다. ‘철수’와 ‘영희’를 주어로 하는 술어는 때와 장소에 따라 무한히 열려있다. 어떤 환경과 조건에 처해 있어도 모든 아이들은 ‘능동적이고 발전적이며 자아실현이 가능한 존재’이다. “철수와 영희는 00이다”라고 단정 짓는 교육은 안 된다. 학교는 ‘철수’와 ‘영희’가 친구와 놀고 배우면서, 선생님과 상호작용하면서 각각의 색깔로 커가는 곳이다. 정해진 교육목표보다 ‘철수’와 ‘영희’가 재구성하는 일상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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