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경의 ‘뽕신강림’에는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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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경의 ‘뽕신강림’에는 이유가 있었다
  • 장성일ㆍ최육상 기자
  • 승인 2021.08.11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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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경 부모 강병규(67)ㆍ정옥경(61) 부부
순창읍 중앙로 ‘이대째 짜장’ 운영
강문경 어머니 정옥경 씨와 아버지 강병규 씨.

 

 

강문경, '트롯신이 떴다' 문자투표로 우승

트로트가수 강문경은 1985년 순창에서 태어났다. 올해 36세, 나이부터 밝히는 이유가 있다. 부모가 육성으로 들려준 ‘아들 강문경’의 삶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나이테를 그려왔다.


지난 9일 오후 순창읍 중앙로에서 중화요리집 ‘이대째 짜장’을 운영하는, 강문경의 부모 강병규(67)ㆍ정옥경(61) 부부를 만났다. 


“아따, 정말 심장이 쫄깃쫄깃하다는 표현이 맞을 거예요. 집에서 결승전 생방송을 지켜보는데 어찌나 떨리던지, 진짜 말도 못해요.”


지난해 12월 23일 에스비에스(SBS) ‘트롯신이 떴다 라스트찬스(Last Chance)’는 트로트가수 6명을 놓고 결승전을 벌였다. 강병규 씨는 “아따”, “심장이 쫄깃쫄깃”이라는 말로 당시 결승전 긴장감을 전했다. 결승전 이전까지 강문경은 종합순위 3위에 머물렀다. 우승은 멀어보였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대국민 실시간 문자투표’에서 강문경이 1위를 차지하며 극적으로 우승한 것이다.


생방송에서 소감을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강문경은 전혀 예상치 못한 우승에 “부모님께 정말 감사하다”고 울먹이며 좀처럼 말을 잇지 못했다. 강문경은 방송을 거듭하면서 ‘트롯신(뽕신)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의미의 ‘뽕신강림’이란 별명을 얻었다. 준비되지 않은 우승 소감은, ‘뽕신’을 지켜보는 이들을 오히려 짠하게 만들었다.

초등학생의 집념, 홀로 전주 거쳐 삼례까지

부부에게 ‘강문경은 어떤 아들인지 한 마디로 표현해 달라’고 묻자, 한 치의 머뭇거림 없이 “효자”(정옥경), “진짜 자랑스러운 아들”(강병규)이라고 답했다. 


부부와 대화는 울컥하다가 웃다가 2시간이 훌쩍 넘어갔다. 부부는 “아들에게 잘 해 준 게 없다”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하고, ‘찐팬(진짜 팬)’들의 과분한 사랑에 “정말 감사하다”고 웃기도 했다. 


“문경이가 초등학교 1학년 어느 날 ‘소리공부’를 하고 싶다고 그래요. 학교에서 사물놀이 수업을 했나본데, 선생님께서 문경이가 북 치고 장구 치고 꽹과리 치는 걸 잘한다고 하셨나 봐요. 그 전까지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었는데.”


부부는 강문경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전남 광주에 살고있던 가수 조관우 부친인 조통달 명창에게 보내 소리공부를 시킨다. 조통달 명창은 1년 후 전북 완주 삼례로 이사한다. 매주 광주를 오가던 강문경은 순창읍에서 버스를 타고 전주를 거쳐 조통달 명창을 찾아가 소리공부를 이어간다.


정옥경 씨는 “한 번도 문경이를 학교든 어디든 데려다 준 적이 없다”며 “문경이는 항상 혼자 버스 타고 걸어서 소리공부를 다녔다”고 회상했다.

“사춘기 때 함께 있어주지 못한 아픔"

강문경은 어린 나이에 한 번도 싫다는 내색을 하지 않고 소리공부에 매진한다. 방학에 또래 친구들이 신나게 놀 때에도 산으로 들어가서 소리공부를 했다. 강문경은 열여섯 일곱 무렵에 〈수궁가〉 완창 발표회를 했다.

강병규 씨는 “그 때가 2001년 4월, 문경이 고등학교 1학년 학기 초였을 것”이라고 기억했다. 강병규 씨가 연도와 월을 자세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부부는 경제적인 이유로 이후 순창을 떠나 서울로 일을 하러 떠났다.


강문경은 순창에 있던 일가친척이 부모와의 관계가 좋지 못했던 탓에 순창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광주에서 홀로 하숙하며 순창고등학교를 다녔다. 강병규 씨는 “그 때 짐작컨대 문경이가 한창 사춘기 무렵이었을 것”이라며 “가장 중요한 시기에 문경이와 함께 있어주지 못해 가슴이 정말 아팠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강문경은 혼자 공부하면서도 19세 때인 2003년 전국 판소리 전통고수대회 학생부 대상과 신인부 대상을 함께 수상하며 화려하게 전국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2004년에는 박동진 전국 판소리 고법대회 일반부 대상도 수상했다. 


정옥경 씨는 “부모가 변변하게 지원도 못해 주는데, 문경이는 단 한 번도 불평불만 없이 그 힘든 소리공부를 했다”면서 “그런데, 군대를 제대한 어느 날 문경이가 대학(중앙대 국악학과)을 자퇴하고 소리공부를 그만하겠다고 그랬다”고 가슴 쓰라린 기억을 더듬었다. 


소리공부를 포기했을 때 강문경의 나이 25세 즈음이었다. 공교롭게도 부부는 그 무렵 서울에서 순창으로 돌아와 ‘이대째 짜장’을 열었다. 부부는 삶이 괴로워서 어쩔 수 없이 어린 강문경을 홀로 남겨두고 순창을 떠났는데, 더 안 좋은 상황에서 순창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부부가 증언하는 강문경의 소리공부 스승은 조통달 명창을 포함해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 인사가 여럿이다. 좋은 의미로 기억되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소리공부를 포기하게끔 원인을 제공한 이도 있다. 


부부는 “문경이가 살면서 한 번도 싫다 좋다 속내를 내비치지는 않았지만 부모의 든든한 지원을 못 받으면서 오직 실력으로 성장하는 데 한계를 느꼈던 것 같다”고 짐작하면서 “아마도 부모가 힘들게 살아가니까 대학 학자금 부담도 있고 자퇴를 하면서 소리공부를 포기한 것 같다”고 가슴 아팠던 기억을 전했다.

임종수 작곡가ㆍ서주경 대표… 인생 전환

강문경은 소리공부를 그만둘 때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다. 부모는 그저, 군대를 제대하고 성인이 된 강문경을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부는 순창이 고향인 임종수 작곡가에게 강문경을 보내게 된다. 강문경은 순창에서 서울로 버스를 타고 오가며 임종수 작곡가에게 트로트 가르침을 받는다. 강병규 씨는 이때의 기억을 담담하게 돌이켰다. 


“고향 선배님이신 임종수 작곡가께서 (국악을 공부한) 문경이의 ‘소리목’을 빼려면 최소 5년은 공부해야 된다고 그러셨어요. 문경이는 트로트를 배우느라 또 오랜 시간 공부했어요. 그 때도 간신히 차비만 쥐어줬는데.”


강문경은 2014년 임종수 작곡가에게 〈아버지의 강〉이라는 노래를 받는다. 트로트를 공부한 지 근 5년 만의 일이었다. 강문경의 데뷔곡 〈아버지의 강〉은 6년여가 흐른 지난해 ‘트롯신이 떴다’ 결승전에서 선보이며 강문경에게 역전 우승을 안겨줬다.

우승과 함께 히트한 〈아버지의 강〉에 얽힌 사연도 극적이다. 나훈아가 작사하고 임종수가 작곡한 〈아버지의 강〉은 원래 1989년 이태호의 앨범에 수록된 곡이었으나 히트하지 못했다. 2014년 강문경이 취입한 데뷔앨범에서도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 노래가 ‘트롯신이 떴다’에서 극적인 뒤집기를 해 낸 것이다. 


강문경의 현재까지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또 있다. 〈당돌한 여자〉로 유명한 트로트가수 서주경이다. 현재 강문경 소속사 대표인 서주경은 강문경이 임종수 작곡가에게 〈아버지의 강〉을 받아 불렀을 때 강문경의 잠재력을 한 눈에 알아봤다. 강문경의 긴 무명시간을 물심양면 아끼지 않고 지원했다.

강문경이 ‘트롯신이 떴다’ 우승 상금으로 받은 1억원을 서주경 대표에게 선뜻 드린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삶의 설움’을 노래로 이겨낸 강문경

부부와 대화를 나누는 도중, 닫힌 현관 유리문 밖으로 중년여성으로 보이는 팬이 기웃기웃 내부를 살피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부부는 인기척을 하지 않고 못 본 척 했다. 이유를 물었다. 정경옥 씨가 다소 곤혹스런 표정으로 무겁게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찾아주신 팬들이 반갑고 고마워서 함께 사진 찍자면 찍어드리고 했어요. 또 가게 문이 닫혔을 때 옆 가게에 선물을 맡겨놓으시면 어쩔 수 없이 받기는 하는데, 안 그러셨으면 좋겠어요. 팬클럽 분들이 문경이를 사랑해주시고 아껴주시는 것은 정말 고맙죠. 저희 본업은 장사니까 맛있게 음식 드시고 마음만 나누고 가셨으면 합니다.”


강병규 씨는 “살면서 한 번도 속을 썩인 적이 없는 문경이가 잘되는 것을 보니까 지인들이 제 얼굴도 활짝 폈다고 말들을 하신다”면서 “매주 금요일 저녁 8시30분에 문경이가 팬들과 소통하기 위해 유투브를 진행하니까 많이 사랑해 달라”고 웃었다.


3개월 전 시작한 강문경의 유투브채널은 ‘뽕신 강문경 티브이’를 검색하면 볼 수 있다. 현재 5만 2300명 정도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강문경의 노래에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한’이 진하게 배어 있다. 초등학생 때와 사춘기, 20대 청춘을 ‘소리공부’와 ‘트로트’에 온전히 바치며 ‘삶의 설움’을 스스로 이겨낸 덕분일 것이다. 


부부는 “문경이가 가정환경 탓으로 방황을 많이 했어도 ‘소리공부’ 딱, 그 안에서만 맴돌았다”면서 “문경이를 생각하면 잘해 주지 못해 가슴 아픈 기억이 많지만, 밝은 모습으로 팬들을 만나며 진심으로 노래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울먹이며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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