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명칭, 탄생배경에 이런 이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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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명칭, 탄생배경에 이런 이유가
  • 림재호 기자
  • 승인 2021.08.11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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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흥청소년문화의집 학생들과 주민들이 광복절을 앞두고 지난 11일 만든 태극기 바람개비.
복흥청소년문화의집 학생들과 주민들이 광복절을 앞두고 지난 11일 만든 태극기 바람개비.

 

194586, 미국은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다. 이틀 뒤인 88일에는 소련마저 대일 선전 포고를 하며 전쟁에 참여하고, 다음 날에는 나가사키에도 원자폭탄이 투하된다.

6일 뒤인 1945815일 정오, 히로히토 일본국왕의 항복 방송이 라디오로 중계되었다. 중대 발표가 있으니 조선인들은 경청하라는 벽보가 나붙었으나 당시 라디오를 가진 조선인들은 많지 않았고, 일왕의 항복 발표 방송은 잡음이 심했다. 게다가 당시 사용하던 일본어도 아니고 일본 황족어로 나왔기 때문에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들은 소수였다. 그러나 라디오로 방송된 문장과 개요가 당일 신문에 기재되고 있었으므로, 일본 국민 거의 대부분은 패전을 이해했다.

해방이 되었다는 사실이 조선 민중에게 알려진 것은 8.15 다음날인 16일이었다. 이날 오전 10시 총독부가 서대문형무소 등 전국에 있는 형무소에서 1만여 명의 정치범과 사상범을 석방하자 이들을 중심으로 만세 소리가 전국을 뒤흔들었다.

해방은 일본제국주의가 미소 등 연합국에게 패배한 산물이기도 했지만 국권 회복을 위해 35년 동안 치열하게 항쟁한 선조들이 흘린 피의 결과물이기도 했다. 우리는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 국권을 회복한 815일을 국경일로 지정하고 광복절이라 부르고 있다. 그런데 왜 해방절이나 독립기념일이 아니라 광복절이라 했을까?

광복절이라는 이름이 태어난 배경에는 다소 엉뚱한 사연이 있다. 1949년 이승만 대통령은 독립기념일을 국경일로 제정해 줄 것을 국회에 요청했다. 원래 정부 원안에는 삼일절 31, 헌법공포기념일 717, 독립기념일 815, 개천절 103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19499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국경일에 관한 법률 정부 원안 가운데 헌법공포기념일을 제헌절’, 독립기념일을 광복절로 변경한 수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했다. 결국 수정안과 정부원안을 놓고 표결에 부쳐 수정안이 가결되었다. 그러니까 광복절은 국경일 명칭의 3음절 자구 통일 때문에 탄생한 셈이다. ‘해방절은 북한이 사용해서 제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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