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의성 전 이장님 ‘순창에 이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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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성 전 이장님 ‘순창에 이런 일이’
  • 장성일ㆍ최육상 기자
  • 승인 2021.08.25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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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간 ‘캔 꼭지’ 65만개를 모은 이유

이 기사를 쓰게 된 건 순전히 이종현 순창읍장 때문이다. 이종현 읍장은 지난 18일 오전 사회관계망서비스(페이스북)에 기이한(?) 사진과 함께 글을 올렸다. 

“오늘 아침에 시내를 돌다가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오실 만 한 분을 만났습니다. 캔 꼭지(손잡이)를 모으시는 분인데요. 혹시! 그 분이 누군지 궁금해 하지는 마세요. 비밀입니다(외부로 알려지는 걸 싫어하십니다).”

이종협 읍장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군민끼리 비밀이 어디 있으랴. 주인공의 정체를 알아내고 무작정 만나러갔다. 지난 20일 오전 9시 30분 주인공을 찾아가는 길, 옥천1리 당산나무 앞에서 빗자루 질을 하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왜였을까. 느낌으로 황의성 씨(74)임을 직감했다. 황의성 씨는 순창읍 옥천1리 이장을 지난해까지 30년 간 맡았다. 

하루 평균 캔 꼭지 294개 수집

이종현 읍장이 소개한 ‘캔 꼭지’ 이야기를 건네며 〈열린순창〉 기자임을 밝히자 황 전 이장은 진심으로 기겁했다. 그는 “캔 꼭지는 그냥 취미 삼아 모으고 있다”며 “할 이야기도 없고, 취재에는 응하지 않겠다”고 한사코 대화를 거부했다. 어렵사리 황 전 이장을 설득했다. 

당산나무 앞에 자리한 그의 일터인 ‘당산상회’ 옆쪽으로 난 대문 안쪽 공간, 철제 선반에는 가지런히 열과 행을 맞춘 페트병이 촘촘히 진열돼 있었다. 페트병 안에는 캔 꼭지가 빼곡했다. 페트병에 붙은 일련번호는 2리터짜리가 269번까지, 0.5리터짜리가 218번까지였다. 

황 전 이장은 “관심 있게 지켜보시던 분이 어느 날 숫자를 세 보라고 해서 계산했더니 2리터 페트병 1개에 캔 꼭지 2000개가 들어가 있더라”고 설명했다. 2리터짜리 269개에 담긴 캔 꼭지 숫자는 53만8000개다(269개x2000개). 0.5리터짜리는 2리터의 1/4로 환산하면 500개가 들어간다. 0.5리터짜리 218개에는 캔 꼭지 10만9000개가 있다. 지금껏 모두 64만7000개가량의 캔 꼭지를 모았다. 

도대체 왜, 이 일을 시작했을까. 황 전 이장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제가 몸이 좋았는데, 7년 전에 식도 수술하고 몸이 안 좋아져서 일을 못했어요. 어느 날 산림조합 일을 나갔어요. 쉬는데 빵하고 음료수 캔을 주더라고. 근데 한 아주머니가 캔 꼭지를 따기에 ‘뭐 하려고 그러느냐’고 물어보니까 ‘그냥 모은다’고 해요. 자려고 누워서 ‘내가 취미를 가져야 하는데’라고 가만 생각하다가, ‘아, 이걸 한 번 모아봐야겠다’고 그 때부터 시작했죠.”

취미로 캔 꼭지 수집를 시작한 게 어느덧 6년이 넘었다. 1년 365일, 6년으로 단순 계산하면 황 전 이장은 2200여 일 동안 캔 꼭지를 찾아 군내 장례식장과 아파트단지 분리수거장, 도로변 분리수거함 등 곳곳을 돌아다녔다. 64만7000개를 2200일로 나누면 하루 평균 294개 정도 캔 꼭지를 모은 셈이다.

“몸이 안 좋다더니 이런 일까지”

황 전 이장은 “캔 꼭지를 모으면서 작은 오해 아닌 오해도 받았다”고 웃었다.

“캔 꼭지 모으는 건 그냥 취미 삼아 하는 건데 어느 날 도로변 분리수거함을 뒤지면서 캔 꼭지를 따는 걸 지나가시는 분이 알아보셨어요. ‘쯧쯧, 몸이 안 좋다더니 이런 일까지 하시느냐’고 혀를 차시더라고요. 그런데 나이 자신 분들은 제 어깨를 툭 치면서 ‘직업에 귀천이 없으니까 열심히 먹고 살라’고 말씀하세요. 저는 ‘아이고, 고맙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같은 분 아니면 누가 그런 말씀을 해 주십니까’라고 답했죠. 하하하.”

황 전 이장은 “지금은 오히려 아파트 단지에서 환영을 받는다”며 말을 이었다. 

“또 한 번은 아파트 소장님이 그러더라고요. 분리수거까지 해 주시니까 저희 아파트가 너무 좋다고요. 제 성격이 그래요. 지저분한 걸 못 보니까 캔 꼭지 따면서 분리수거 싹 다 해 놓고, 깨끗하게 정리하고 오거든요. 하하하.”

당산상회 앞 당산나무는 마을의 명물이다. 황 전 이장은 당산나무를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이 떠오르는지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꺼냈다.

“이 당산나무가 한 오백 살은 됐을 거예요. 군청에다가 숱하게 이야기해야 포도시(겨우) 와서 링겔(링거) 주고 그래요. 제가 당산나무 죽지 말라고 매일 물주고, 시기 맞춰서 링겔 주고 하죠. 나이가 많이 드니까 벌써 누런 낙엽이 떨어져서 아까도 쓸었죠.”

새벽에 일어나 동네 한 바퀴 청소

황 전 이장에게 하루의 일과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그는 활력 넘치는 목소리로 답했다.

“새벽에 4시, 4시 반이면 일어나요. 내가 성격이 담배꽁초 하나 버려져 있는 걸 못 봐요. 아침에 싹~ 동네 청소하고. 내 생활이 그것이여. 인력 나가서 돈 버는 것보다 힘들어도 그냥 하는 거여. 내가 좋으니께. 하하하.” 

황 전 이장 집 안에 들어서면 각종 표창장과 공포패가 진열대에 놓여 있다. 황 전 이장은 지난 1990년 44세부터 지난해 73세까지 30년 동안 이장으로 일했다. 강산이 3번 바뀌었다. 그는 “참, 보람되고 재미있었다”고 지난 30년을 돌이켰다.

“‘구곡순담(구례ㆍ곡성ㆍ순창ㆍ담양) 백세인 축제’를 4개 군이 돌아가면서 하는데, 이 표창장을 (2016년에) 제가 받았어요. 100세 넘으신 분도 계시고, 순창에 어르신들이 얼마나 많아요. 그런데 이 상을 저한테 주셨어요. 30년 동안 이장하면서 표창장, 공로패를 잘하라고 많이 받았어요. 저로서는 참 보람되고 흐뭇하더라고요.”

황 전 이장 침대 머리맡에는 경로당 회원 연락처가 붙어 있다. 자다 말고 급한 일이라도 생기면 연락을 하려고 붙여 놓았단다. 30년 간 이장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 듯싶다. 천생 이장이었다. 

이장을 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을까. 황 전 이장은 젊어서 순창을 떠나 서울에서 자동차 타이어 정비하는 일을 했다. 15~16년 간 일을 하다 1982년도 무렵 “고향에서 살아야겠다”고 순창으로 돌아왔다. 

황 전 이장은 아내 문옥남(70) 씨와 서울에서 만나 결혼했다. 결혼한 지는 50년 정도 됐고, 순창에 와서 낳은 큰 딸은 48살이다. 추정해 보면 결혼 당시에 황 전 이장이 스물 넷, 아내가 스무 살 무렵이었다. 부부에게 “서로 첫사랑이냐”고 따지자, 부부는 정말이지 사람 좋은 웃음으로 대답을 얼버무렸다. 

“군(청)에서 상금이라도 줘야 혀”

황 전 이장과 당산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갓난아기를 가슴에 안고 당산상회를 찾아온 젊은 새댁이 귤 한 상자를 문옥남 씨에게 안겼다. 호기심이 일어 새댁에게 다가가 평소에 먹을거리를 자주 가져다 드리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이웃끼리 정을 나누는 거죠. 이장님께서 마을을 위해서 정말 많은 일을 하세요. 청소도 잘하시고,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주민 분들 일이라면 항상 발 벗고 나서세요.”

팔덕이 고향인 한 주민(84)은 ‘어떤 이장이냐’는 질문에 딱 두 마디로 답했다. “좋제.” 이 주민은 황 전 이장을 바라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우리 이장님을 30년 넘게 봐 왔는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안 빠지고 청소하고, 마을을 위해서 일을 참 잘 해요. 군(청)에서 상금이라도 줘야 혀. 그래야 회관에서 고기라도 구워먹제. 하하하.”

옥천1리 마을에는 270여 명의 주민이 산단다. 순창군에서는 가장 큰 마을에 속하지 않을까. 황 전 이장은 나이가 무색한 해맑은 웃음으로 마을 자랑을 했다. 

“순창 하면 옥천골이제. 우리 마을 참 좋아요. 내 기력이 다하는 날까지 마을 일 하면서 캔 꼭지 수집하고 살랍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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