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님(7) 안광일 복흥 덕흥마을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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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님(7) 안광일 복흥 덕흥마을 이장
  • 장성일ㆍ최육상 기자
  • 승인 2021.09.01 1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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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6년 차인 제게 이장을 맡기셨어요”
안광일 이장이 주민들과 마을공동체활동을 하고 있다.

한글이 반짝거렸다. 복흥 덕흥마을 집집마다 담장에는 그림과 함께 한글이 그려져 있다. 지난 22일 오후, 덕흥마을로 들어서자 알록달록 색동옷을 입은 것처럼 담장의 벽화가 기자 일행을 제일 먼저 맞이했다. 멋진 그림과 함께 더욱 눈여겨보게 된 건 한글로 된 문구였다.

네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건 오직 너뿐이야.”

꿈꾸는 걸 포기하지 마.”

그래, 넌 웃는 게 예뻐.”

행복 넘치는 덕흥 벽화마을

마을 입구에는 행복이 넘치는 봉덕리 덕흥 벽화마을입니다라는 선전판이 세워져 있다. 선전판을 확인하고 다시 벽화를 바라봤다. 사람친화적인 그림과 한글은 보는 이의 마음을 헤아려 그렸다(쓴 게 아니고, 그림과 어울리게 분명히 그린 글자).

오전부터 백중행사가 열리던 날, 안광일(50) 덕흥마을 이장을 행사장 한편에서 만났다. 안 이장은 마을이 모처럼 들썩거린다면서 조금은 상기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오늘 백중행사는, 코로나 때문에 작년에도 못하고 해서 직불금 수령자 공동체활동으로 기획서를 내고 코로나 사적모임 금지조항적용을 받지 않게 됐어요. 2년 만에 주민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 같네요.”

안광일 이장은 마을 어르신들과 친구들이 이장을 하라고 하도 권하는 탓에 올해 처음 이장을 맡았다, 경기도에서 살다가 20148월 즈음 아내와 함께 자녀 둘을 데리고 귀농했다. 현재 아들은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군 입대를 했고, 딸은 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다.

아무래도 귀농할 때 자녀들 교육문제를 많이 알아봤죠. 일단 여기 동산초등학교는 알아보고 왔어요. 그 당시 중학교도 대도시보다 순창이 지원도 괜찮았고. 작은 아이는 혜택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안 이장은 귀농을 하려고 여러 지역을 봤는데, 다행히 이곳에 집이 나와서 덕흥마을로 귀농했는데 정말 만족한다고 웃었다.

인구 적지만, 젊은 사람 많아

귀농 생활은 어떻게 하는지 물었다.

농사를 전업하고 있는데 소규모이니까, 아내가 방과 후 강사로 부업을 하고 있죠. 저도 상수도 검침같은 일을 하고요. 검침원은 특별한 기술은 필요 없고 군에 신청하면 되거든요. 그럭저럭 네 가족이 먹고사는 데는 큰 문제는 없어요.”

덕흥마을 집집 담장마다 벽화가 그려져 있다.

덕흥마을이 벽화마을로 바뀌게 된 건 언제였을까.

벽화는 제가 귀농한 다음에 그린 거예요. 지금도 마무리가 완전히 된 건 아닌데, 전전 청년회장님이 복흥면귀농귀촌인 지회장이셨을 때, 그 당시 군에서 몇 백만 원 정도 받아서 벽화를 시작했어요. 근데 그 걸로는 많이 부족하니까 한 2년 가까이 조금씩 조금씩 계속 해 왔죠. 지원금은 딱 1회성으로 그치는 거니까, 그 이후로 마을 비용, 자부담이 들어갔죠. 청년회에서 모금도 하고, 외부에서 재능기부도 받고 그렇게 진행하고 있어요.”

안 이장은 마을자랑을 해 달라는 요청에 수줍게 웃으며 답했다.

우리 마을이 인구도 작고 그런데, 큰 마을에 비해서 젊은 사람들이 많은 편이에요. 청년회나 부녀회나 활동을 많이 하고 싶은데 자금이 부족하니까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마을에 필요한 걸 하나씩 하나씩 갖췄어요. 이것도(나무 의자) 조금씩 자금을 만들었죠.”

마을회관 옆 대형 분리수거함

마을회관 옆에는 커다란 재활용 수집 포대가 있다.

덕흥마을 회관 옆에는 다른 마을에서는 보지 못했던 대형 분리수거장이 갖춰져 있다. 안 이장의 설명을 들으니 그제야 이해가 됐다.

마을회관 옆에 분리수거함을 보면 큰 포대자루 같은 게 있잖아요. 거기에 비료포대, 폐비닐 같은 걸 모아서 쌓이면 한 번씩 고물상에 가서 팔아요. 큰돈은 아니더라도 자잘한 돈들을 꾸준히 모아서 마을살림을 하나씩 늘리는 데 보태고 있어요. 마을자금이 없으니까 몇 년 치 모아서 그렇게 준비하는 거죠. 어쩔 땐 1년 정도 쉬었다가 다시 자금 마련하고. 조금씩 마련하는 거죠. 살림살이 하는 게 그냥 마을공동체예요.”

취재 차 몇몇 마을을 찾았을 때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문제점이 있었다. 귀농인과 현지인 간의 크고 작은 마찰이었다. 덕흥마을은 어떤지 귀농한 안 이장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안 이장의 답변은 명쾌했다.

저 말고 선배 이장님도 귀농하셨고, 청년회장님도 그 전에 귀농하신 분이시고. 선배 귀농인들이 잘 해 놓으셔서 저처럼 나중에 귀농하는 후배들한테 참 좋았죠. 저는 비교적 편안하게 귀농을 할 수 있었죠. 군에서 귀농귀촌 우수사례 그 걸로도 뽑혔고. 저희 마을에는 귀농인과 현지인 간의 불협화음이 전혀 없어요.”

안 이장의 고민은 오히려 귀농귀촌인 유치에 있었다. 안 이장은 저희 마을에 귀농귀촌을 많이 유치하고 싶은데, 빈 집 주인, 돌아가신 어르신들 자녀분들이 매매를 하지 않는다면서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귀농귀촌에 가장 큰 게 거주지 마련인데. 우리 마을에 부지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자금이 많은 것도 아니고. 마을회관에도 개인부지가 일부 편입이 되어서 외부에 있는 푸세식 화장실 공사를 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못해요. 그리고 군청에서든 도청에서든 무슨 일을 하면 꼭 큰 마을부터 지원을 해 주니까 우리처럼 작은 마을은 우선순위에서 계속 밀려요. 그 점이 안타깝죠.”

귀농 6년차 이장, 첫 단체모임

안 이장은 대화를 하는 동안 쉬지 않고 행사장 구석구석에 시선을 던졌다. 모처럼만에 모인 마을주민들의 행동을 하나하나 보살피는 듯 했다. 이날 백중행사는 귀농 6년차 이장의 첫 단체주민모임이었다. 어떻게 모이게 된 건지 물었다.

직불금 수령자 공동체활동은 8시간을 맞춰야 해요. 그 전에 생생마을 행사를 했었는데, 그 때 순창군농촌종합지원센터가 도와줘서 알고 있었어요. 센터에 여쭤보니 찾아가는 문화배달행사를 한다고 해서 공동체활동으로 함께 하자고 요청을 드렸죠. 어르신들 모이시는 김에 영정사진도 찍어드리고, 퓨전 국악 공연하고, 영화 상영하고 그렇게 된 겁니다.”

덕흥마을은 논 사이로 난 둑방길 같은 도로를 수백 미터 가로질러야 닿을 수 있다. 안 이장은 마을이 처한 환경을 빗대 마을자랑을 하며 말을 맺었다.

어르신들이 대개 그렇지만, 적극적이지는 않으세요. 과묵하게 지켜보시는 편이죠. 그러면 청년들이 막 일 저질러 놓고. 그러면 어르신들이 또 못 이기시는 척 하고 봐 주시죠. 덕흥마을은 보시다시피 논으로 둘러쌓여 있어요. 아담하니 정겨운 마을입니다.”

마을을 빠져나오는 길, 또 한 번 벽화에 시선을 빼앗겼다. 덕흥마을 벽화에 그려진 글귀는 보고 또 봐도 정겹다. 마을주민들 모두 같은 생각이지 싶다.

당신과 함께라면 따뜻합니다.”

열린순창안녕하세요? 이장님!’ 기획을 연속 보도합니다. 우리 마을 이장을 추천해 주세요. 만나 뵈러 달려가겠습니다. 이장 추천 전화 652-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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