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용궐산’ 바위엔 고사성어 한자 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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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용궐산’ 바위엔 고사성어 한자 파고
  • 김민성 이사
  • 승인 2021.09.01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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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 김민성(가인김병로연구회 사무이사)

섬진강에서 쓰레기 줍고용궐산바위엔 고사성어 한자 파고

 

의견수렴 절차 없이 진행최소한 동계면민 공청회라도 거쳤어야

 

용이 거처한 성스러운 산이라는 용궐산(龍闕山)의 바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고사성어 한자 새기기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

문제의 장소는 데크 작업을 마친 하늘길 잔도(棧道)부터 시작된다. 谿山無盡(계산무진), 龍飛鳳舞(용비봉무), 知者樂水 仁者樂山(지자요수 인자요산), 第一江山(제일강산), 내려오는 길에 死生人鬼 一而二 二而一者也(사생인귀 일이이, 이이일자야).

그리고 그 전에 새긴 여치계곡의 水昇火降(수승화강)과 앞으로 공사예정이라는 浩然之氣(호연지기), 飛龍在天(비룡재천), 용궐산 하늘길. 결론부터 말하면 시각적으로도 보기에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오한 의미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이치(理致)를 무시한 겁 없는 사람이 초라한 지식을 뽐 낸 것에 불과하다. 백번 양보해 멋진 한글 구절은 차라리 이해하겠다.

참으로 가관인 것은 한자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면 고사성어의 뜻을 파악하는데 난해하거니와 흘림체 초서로 새겨, 한자 자체를 식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측부터 시작된 谿山無盡은 아무리 추사 작품이라 해도 谿, 다음 을 위 아래로 겹체 네 글자가 아닌 세 글자로 인식하고 읽느라 애를 먹는다. 역시 초서인 龍飛鳳舞는 훈()대로 글자가 날라 다니고 춤을 춰, 무슨 자인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知者樂水 仁者樂山은 해서체인데 유신시대 표어를 보는 듯 전혀 어울리지 않아 흉물스럽다.

우중(雨中)에 만난 몇몇 탐방객들 반응도 모두 부정적이었다. 부산에서 온 부부, 서울과 고창에서 거주하는 친구사이라는 분들은 김일성인가. 이렇게 글을 새긴 이유를 모르겠다. 데크도 반대한다고 말할 정도로 자연훼손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더 큰 문제는 순창군민, 동계주민들도 거의 모른 채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보 접근성이 유리한 공무원들도 신문 기사를 접하고 나서 제대로 인지했다. 최소한 간부회의나 동계면민 공청회를 거쳐 의견을 들었어야 했다. 현 방식이 최선의 선택인지 반대 측 의견을 듣지 않으니 일방행정이 비판받는 것이다.

군에서는 주말 대신 주중에 방문하라고 홍보한다. 선후가 바뀌었으니 당연하다. 도로나 주차 등 기반시설을 갖춘 후 개장을 해야지 반대로 진행되니 이런 문제가 발생하고 등반에 왕복 세 시간 정도 소요되는데도 물 한 병 구입할 시설은 아예 없다.

지역경제를 위해 군의 다양한 자산을 확보하고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다. 문제는 계속해서 뒤탈이 생긴다는 것이다. 뉴스에 나올 정도의 큰 탈이다. 채계산도 부군수 특혜의혹이 불거져 오명을 남겼고, 용궐산은 암벽에 논어나 역경이 출처인 고사성어를 새기면서 전근대적인 발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어느 누가 어떤 권한으로 대자연에 허락 없이 손상을 가한단 말인가. 최소한 동계 면민 공청회라도 해야 했다. 이에 대해 담당 계장은 그럴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런 식이면 연초 연례로 하는 군정설명회도 필요 없다. 군에서 결정하고 집행할 일이지 군수를 포함해 실과장들이 11개 읍면을 다닐 이유가 없다. 이런 철학 부재의 사고로 밀실에서 진행했으니 책임을 묻고 따지는 것이다.

개발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정도가 있는 법이다. 굳이 중국 사서삼경에 나와 있는 고사성어나 문장을 바위에 새기는 것은 선을 넘었다. 저렇게 차용한 고사성어가 어떤 스토리가 있는가. 스토리가 없으니 감동도 없다. 차라리 고은 시인의 그 꽃이 백번 낫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 갈 때 못 본 그 꽃.”

우리가 바위에 새길 것은 글자가 아니라 한번쯤 깊이 생각할 의미. 그래서 고은 시인은 또 말한다. “산에서는 일기를 쓰고 바다에서는 편지를 쓰라. 산에서 일기는 내면적 수행의 장소를 의미한다. 인자요산(仁者樂山)은 바위에 새긴 글을 읽는다고 쌓아지는 것이 아니고, 산의 숭고함과 장엄함을 알게 되면 한없이 겸손해져 인()의 경지로 가는 것이다.

그대들은 무모하고도 무례한 작업을 결정하고 진행하면서 산신령께 백일 아니 단 5분이라도 기도를 드렸는가.

바위에 글 새기는 작업 당장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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