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31) 팔덕 산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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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31) 팔덕 산동리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21.09.01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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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마을 풍수 전통이 있는 곳

산동리(山東里)는 팔덕면 중심부에 위치한 법정리다. 북쪽은 서흥리, 서쪽은 장안리, 남쪽은 덕천리, 동쪽은 용산리구룡리와 경계한다. 산이 적고 전답이 많은 곡창 지대이다. 2021827일 기준 인구는 80세대, 167(남자 81여자 86)명이다.

 

마을 유래

산동리는 고려자기 파편, 선사시대 토기 등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오래 전에 형성된 마을로 추정된다. 구전에 의하면 이 마을 주변에 안분토골분토골둔터통천이장자촌파랑터골밭오룡골이라는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팔덕면 산동리가 되었다. 2014년 현재 통천마을신흥마을팔왕마을장재마을 등 4개 행정리가 있다.

팔왕마을은 여근곡(바가지샘)과 남근석(연봉석), 마을숲이 풍수비보 기능을 하고 있고, 고려시대 옥천조씨 부인 설화도 전해 내려오는 등 민속학적학술적 가치가 높아 학술조사단이 자주 찾는 마을이다.

장재마을은 금은보화를 감춘 마을이라 해서 거부를 뜻하는 장재(長者장자) 마을이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국씨라는 부자가 도장 자리에 땅을 파고 금은보화를 몰래 묻어 놓았는데 집안사람이 역질에 걸려 모두 죽으면서 전설 속에 묻히게 되었다 한다. 1996년 경지 정리가 완성된 팔덕의 곡창지대이다.

분통마을은 마을 지형이 옥녀가 예쁘게 분단장을 하는 옥녀단장(玉女丹粧) 형상으로 마을이 분통에 해당되어 분통마을이 되었다 한다. 선녀가 내려와 목욕하고 분단장했다는 샘이 있었다는 전설도 있다. 지금의 신흥마을이다.

통천마을은 팔덕면사무소에서 남쪽으로 가장 가까운 마을이다. 서쪽 앞들이 1992년에 경지 정리가 완성되어 광활한 논이 펼쳐진 마을이다. 옛날에는 맑은 강천냇물이 둔터들 맨 끝에 있는 중바위 밑을 지났다고 한다. 이곳에 수요정이라는 정자가 있어 선비들의 시화가 열렸다고 한다.

팔왕마을 전경
팔왕마을 전경
장재마을 전경
장재마을 전경
신흥마을 전경
신흥마을 전경
통천마을 전경
통천마을 전경

 

여근곡(바가지샘인정샘)

팔왕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 파왕산동(婆旺産童) 형국이라고 한다. ‘할머니가 왕성하게 어린아이를 출산하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여덟 사내가 태어난 탯자리라는 뜻을 가진 팔왕(八旺)이라는 지명은 고려시대 이곳에서 옥천조씨(玉川趙氏)8명의 아들을 낳아 잘 키웠다는 전설에서 유래하고 있다.

순창설씨는 설거백(薛居伯)을 시조로 받들고 경주를 본관으로 세계를 이어오다가 36세손 설자승이 1124(고려 인종 2) 순화(순창의 옛 이름)백에 봉해지자 본관을 순창으로 고쳤다.

설자승의 2대손인 설선필(薛宣弼)은 옥천조씨(玉川趙氏)와의 사이에서 네쌍둥이로 여덟 아들을 낳았다. 여덟 명 가운데 세 명이 과거에 급제함으로써 옥천조씨는 국대부인(國大夫人)에 봉해졌다. 과거급제자 세 명 가운데 한 명이 설신(薛愼)이었고, 설신이 낳은 아들인 설공검(薛公儉)은 순창 성황대왕으로 추봉(죽은 뒤에 직위를 내림) 받았다.

여근곡은 산세가 마치 여근 지형을 닮아서 생겨난 명칭이다. 여근곡 명칭은 삼국유사선덕여왕 조에 처음 등장한다. 팔왕마을 여근곡은 마을 중심부에 위치한 바가지샘의 지형지세이다. 여자 하복부(사타구니)를 닮은 지형 중심에 샘물이 분출하는 곳이 여자 생식기와 흡사해 여근곡이라고 불렀다. 바가지샘, 인정샘이라고도 한다. 바가지 형태의 암반 바닥에서 지속적으로 샘물이 분출해 마을 주민들이 공동 식수로 사용했다.

팔왕마을에서는 1970년대 새마을운동 당시 상수도 시설을 하면서 바가지샘이 훼손되었다. 현재도 바가지샘 물줄기는 살아 있어서 지속적으로 분출하고 있으나 사타구니형의 바가지샘이 가진 여근곡의 옛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여근곡(바가지샘)
여근곡(바가지샘)

 

산동리 남근석(연봉석)

산동리 남근석은 팔왕마을 앞 제방에 조성된 마을 숲 가운데에 있다. 산동리 팔왕마을 연봉석(蓮峰石)연봉 선돌연화석 등으로도 불린다. 전라북도민속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되었다.

전통적으로 자연 마을은 취락을 조성할 때 풍수지리를 살폈다. 취락 조건은 좋으나 풍수지리에 결함이 있으면 풍수비보 장치를 한다. 그러한 비보책 가운데 하나가 남근석을 세우는 일이다. 남근석은 대체로 여근곡과 대치되는 곳에 음기를 누를 풍수 비보 목적에서 세워지는 게 일반적이다.

남근석은 두 유형이 있다. 자연적으로 남자 생식기를 닮은 남근석이 있고, 인공적으로 남자 생식기를 조형한 남근석이 있다. 순창군에서 그 예를 든다면 전자는 풍산 상촌리 남근석을 꼽을 수 있고, 후자는 산동리 남근석을 들 수 있다.

산동리 남근석은 여근곡 지형의 마을 앞 입구 쪽에 위치해 있어 여근곡의 기운을 눌러 줄 목적에서 세운 선돌이라 할 수 있다. 높이 165, 둘레 145의 매우 희귀한 석각 연화도 도상을 한 조형 선돌이다. 연봉석 제일 위 상단에는 연꽃잎 1장이 조각되어 있고, 연봉석 표면에는 연잎과 연꽃, 연 봉오리를 조각해 놓아 매우 정교하고 조형미가 뛰어나다.

팔왕마을은 고려 말에 옥천 조씨 부인이 살았던 마을로 알려졌다. 따라서 연봉석도 고려 말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불교문화가 융성하던 시기에 비보 풍수의 영향을 받아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전주대 송화섭 교수는 팔왕마을 연봉석은 마을 음기를 누를 목적에서 세운 진압형 풍수비보 선돌이다. 팔왕마을 연봉석은 남근석이 아니라 조각된 풍수 비보 선돌이다. 석각 연화도가 조각된 연봉석은 국내에서는 순창 지역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조형 선돌이다. 따라서 남근석보다는 '연봉석' 또는 '연화봉입석'으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남근석(연봉석)
남근석(연봉석)

 

마을숲

팔왕마을은 마을 가운데에 여근곡이 있는 곳으로, 마을 앞은 경사가 심하고 탁 트인 들판이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지형은 풍수지리적 관점에서 마을 지기(地氣)가 유실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마을 앞에 비보 둑을 쌓고 그 위에 비보 숲을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팔왕마을 숲은 마을 앞 전면 가로 형태로 제방을 쌓고 그 위에 길게 숲을 조성한 것으로, 숲을 조성하는 전통적인 수()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이곳을 숲 또는 숲거리라고 부른다. 마을에 있는 둑은 처음 축조할 당시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숲의 나무는 많이 유실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팽나무귀목나무소나무는 팔왕마을의 역사를 말해 주고 있다. 마을숲과 둑, 연봉석은 고려 후기 설씨 가문이 이곳에 처음 터를 잡을 때의 마을 풍수 전통을 잘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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