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남산대마을 ‘故신긍식’ 형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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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남산대마을 ‘故신긍식’ 형을 추모하며’
  • 이선형 독자
  • 승인 2021.09.08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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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형(유등 금판마을)

양봉농가이며 전기, 전자 기술자였던 신긍식 형이 2021831일 새벽 65세의 나이로 운명하셨습니다. 작년부터 치료해오던 간암과 두 달 전 사고로 인한 고관절 골절 등이 겹쳐 조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치열했던 삶을 마치셨습니다. 슬하엔 사랑하는 부인과 군 대체복무 중인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순창읍 남산대마을 토박이로서 전자학원 수강과 짧은 서울의 직장생활 외엔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는 형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 어릴 적 사고로 왼쪽 다리를 정상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장애인이었지만, 항상 오토바이를 타고 순창 곳곳을 부지런히 다니시며 많은 분들과 교류하셨습니다.

형은 자신이 고령 신씨 신말주 선생의 후손이란 사실에 큰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있었고, 정조 시대의 대 실학자 신경준 선생과 구한말 대쪽 같은 독립투사 신채호 선생이 문중의 어른이라는 것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일부 문중 사람들의 재산분쟁과 이권 다툼에 진저리를 쳤으며, 고압적 권위로 주위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못된 구습에 대해서도 비판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책임과 희생 그리고 인격을 갖추지 못한 이른바 양반행세라는 것이 오리혀 조롱의 대상이란 사실을 잘 이해하고 계셨지요.

특히 형이 스스로를 대견해 하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전파사 가게를 접고 논농사와 개, 염소 등을 키울 때인데 동네 앞의 요양병원에서 나오는 음식물 찌꺼기를 20년 넘게 눈이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오토바이로 날랐습니다. 요양병원 주방 아주머니들이 형의 근면성실함에 탄복하여 건네 준 몇 마디 칭찬을 형은 소중한 훈장처럼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내가 형을 신뢰하고 친형제처럼 가까워지게 된 동기도 바로 그런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1990년대 초반 어느 때인가, 나름 기술력도 인정받고 그런대로 잘 운영되던 전파사를 접고 농사를 짓겠다고 형이 말했을 때 나를 포함하여 형과 가까이 지내던 농민회원 모두가 강력히 반대했었습니다. 성치 않은 다리로 농사짓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었고, 소 파동이니 고추 파동이니 하는 농산물 가격 폭락이 농가의 목줄을 조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죠.

그러나 형은 고집을 꺾지 않고, “죄짓지 않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냉장고나 티브이(TV) 등 무게 있는 가전제품의 고장 수리를 위해 마을 출장이 흔한데 애잔한 노인들한테 출장비니 수리비니 하면서 돈 받기가 죄스럽다고요. 가게운영을 위해서는 노인들에게 계속 죄를 지을 수밖에 없겠기에 차라리 가게를 포기해야 겠다고요.

형은 전파사를 접고 농사짓고 개를 키우면서 한 번도 장애에 굴복하거나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어떠한 동정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눈, 비 오는 도로에서 짬밥 실은 오토바이가 수없이 넘어졌을 때 바로 포기하셨겠죠.

또한 형은 빚보증 때문에 물려받은 몇 마지기 논마저도 몽땅 팔아서 남의 빚을 청산하면서도, 어려운 처지의 사람이나 단체에 기부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자존심 강하고 인정 많은 아버지를 보며 자란 아들도 일찍부터 철이 들었고, 치열한 공무원 선발시험을 단번에 합격하여 아빠의 어깨를 가볍게 함은 물론 무한한 행복감을 선사했죠. 형은 비록 가셨지만 아들이 곧 병역의무를 마치고 공직에 복귀하여 장애가 있는 어머니를 잘 봉양하리라 생각됩니다.

긍식 형, 형은 내가 치기어린 대학 시절에 책에서 읽었던 바로 그 민중이었습니다. 살아있는 민중의 전형이었고, 내 삶의 지속적인 자극제였고 기준점과도 같은 존재셨습니다. 비록 몸은 가셨지만 형의 정신과 상징은 순창군농민회와 순창지역 주민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되고 이어질 것이라 확신합니다.

부디 평안히 영면하시길.

아우 이선형 배상

 

 

 

이선형(유등 금판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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