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산 지내마을 ‘두레질’과 ‘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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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 지내마을 ‘두레질’과 ‘울력’
  • 최육상 기자
  • 승인 2021.09.08 19: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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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시암 품고, 남자는 울력 맡고
겨울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우물?
앞쪽 줄무늬부터 왼쪽으로 임채순(63), 정계래(84), 김필분(70세), 최급분(87), 김양순(73)
앞쪽 줄무늬부터 왼쪽으로 임채순(63), 정계래(84), 김필분(70세), 최급분(87), 김양순(73)

 

우물 청소? 항상 우리 여자들이 하제. 남자들은 저~그 길 옆 풀 베고 마을 청소, 울력허제, 울력.”

지난 5일 오전 630분 무렵 찾아간 지내마을 우물에서는 두레질이 한창이었다. 두레에 길게 줄을 연결해 두 사람이 맞잡고 박자를 맞춰가며 우물을 품었다.

우물가에서 만난 주민 강곡례(85) 씨는 올해 팔십 일곱 살 먹었는데, (풍산) 상촌에서 스무 살 때 여기로 시집 온 지 65년 됐다고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요놈 물 먹고 살았제. 빨래 여그서 다 빨고, 막 시집왔을 땐 (우물가에) 늦게 나오면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처신도 못 혔어. 옛날에는 한 달에 한 번씩 (우물) 두레질을 했지. 그 때 두레는 나무였는데, 이제 양철로 된 걸 쓰제. 우물 품는 마을은 인자, 순창에서 우리 마을밖에 없을 걸.”

식수도, 빨래도 우물에서 해결

반시간이나 지났을까. 우물물이 얕아지자, 두레질 하는 주민들 사이에서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줄을 더 잡아 댕겨 봐봐.”

이 짝이 아니고 그 짝이 길어.”

아따, 그 짝을 댕겨야 한다고.”

수십 년간 호흡을 맞춘 일임에도 두레에 연결된 줄은 우물을 품는동안 물에 젖은 손아귀를 빠져나가 길어지기도 짧아지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소란은 잠시, 이내 능숙하게 줄을 정렬하고 두레질을 이었다.

지내마을 우물은 두 곳으로, 용도가 두 단계로 나눠져 있다. 우물물의 원천은 같지만 위쪽 하나는 식수용으로, 아래쪽 하나는 빨래와 청소용으로 사용한다. 위에 덮개가 덮여 있는 조금 규모가 작은 게 식수로 사용하는 우물이고, 위쪽 우물에서 물이 흘러나오도록 사각형 우물 윗부분에 뚫어놓은 구멍을 열었다가 막으며 사용하는 아래쪽이 쌀도 씻고 채소도 씻고 빨래도 하는 우물이다.

정계래(84) 씨는 위쪽 우물을 가리키며 우물에 얽힌 사연이 복잡한 듯 말했다.

예전에 우리들이 많이 들어갔어. 시암 안에. 다 함께 먹고 마시는 시암이라 깨끗하게 하려면 별 수 있남? 여자라도 들어가야지. 우물이 깊은데도, 젊었을 때라 사다리 놓고 들어가서 청소하고 그랬지.”

“1971. ◯. ◯. 착공. 3. 3. 준공.” 우물에 돌담을 쌓은 연도와 날짜가 희미하게 새겨져 있다.
“1971. ◯. ◯. 착공. 3. 3. 준공.” 우물에 돌담을 쌓은 연도와 날짜가 희미하게 새겨져 있다.

 

여자는 시암 품고, 남자는 울력 맡고

마을 주민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최급분(87) 씨는 시암 품는 게 날이 갈수록 힘이 든다면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여기서 나고 자랐지. 시집도 여그서 하고. (기자 : 남편 분이 동네 오빠였겠네요?) 그라제. 헤헤헤. (기자 : 남편 분은요?) 진즉 돌아가셨어. 시암 두레질은 평생 했어. 이 우물은 동네 생겼을 때부터 있었지. 동네에 물이라곤 이 우물 하나여. 지금도 먹고, 채소 같은 거 씻고. 64년도인가, 진짜 가물 때에도 이 우물은 멀쩡했어. 그 때 (옆 동네) 대가리에서 물 길으러 오고 그랬으니께.”

강곡례 씨는 막 시집와서 새댁의 고단했던 첫 하루 일과를 우물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아침에 눈 뜨면 제일 먼저 여글 와야 해. 세수 먼저 하고, 저 동이로 물 하나 받아 놓고, 다음 마을 주민 오시면 양동이 바꿔서 또 받아 놓고. 주민 분들이 모이시면 시암에서 안부 인사 드렸어. 마을의 뭔 소식이라도 들으려면 시암에 와야 했지. 그 땐 그랬제.”

지내마을 우물은 돌담이 둘러싸고 있다. 돌담에는 “1971. . . 착공. 3. 3. 준공이라고 돌담을 쌓은 연도와 날짜가 희미하게 새겨져 있다. 강곡례 씨는 저 돌담은 동네 남자 분들이 산에서 지게에다가 돌덩이를 하나씩 옮겨서 쌓았다면서 말도 말아, 그 때 바깥양반이랑 남자 분들이 을매나 고생을 했는지 몰라라고 말했다.

우물 지붕은 언제 씌운 것일까. 최급분(87) 씨는 담담하게 과거를 회상했다.

30년 됐을라나? 비 오고 그럴 때 맞지 말라고 만들어줬지. 근데, 저 지붕을 만들어놓으니까 우물에 햇볕이 안 들어가. 그 전엔 그런 적이 없었는데, 어느 날부터 우물에 이끼가 끼더라고. 여기 지붕을 유리나 빛이 들어가는 걸로 고쳐주면 안 될까? 글고 여기 우물 아래쪽에 웅덩이 하나 작게 만들어주면 좋제. 나이들이 많다 본께 웅덩이에 발 담그고 쉬면 좋잖여.”

김양순(73) 씨는 인자는 두레로 우물 안 품고 기계로 품을 수 있게 도와줄 수 없는감?”이라고 기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한 남성 주민이 단호한 목소리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공짜 좋아하면 못 써. 힘들어도 일을 해서 우리가 마을 우물을 지켜야제. 공짜로 물을 마시면 쓰남? 함께 일을 해야지, 일을.”

 

겨울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우물?

우물에 지붕을 씌운 뒤 이끼가 끼기 시작했단다. 주민들은 “지붕을 유리나 빛이 들어가는 걸로 고쳐주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우물에 지붕을 씌운 뒤 이끼가 끼기 시작했단다. 주민들은 “지붕을 유리나 빛이 들어가는 걸로 고쳐주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지내마을을 찾아가는 길, 수 킬로미터가 이어지던 마을 진입로 양 옆에서 사람들이 잡초를 제거하고 있었다. 무심코 지나쳐 왔는데, 알고 보니 마을 남성들이 모두 나와서 마을 청소(울력)를 하는 중이었다. 미처 사진을 찍지 못했던 게 마음에 걸렸다.

박현모 이장은 남자들이 사진 찍자고 울력한 게 아니니까 아무래도 괜찮다면서 대신 우물 품느라 고생한 우리 마을 여성분들 신문에 잘 나오게 해 달라고 웃었다.

오전 8시경, 마을 주민들은 두레질과 울력을 마치고 마을회관으로 하나둘 모였다. 예방접종 2차까지 전원 마쳤다는 주민들은, 두레질에 참여하지 않은 여성들이 준비한 맛깔난 아침으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지내마을 주민은 현재 40명이 조금 안 된다. 강곡례 씨가 시집왔을 때인 65년 전에는 40가구 정도 되었다고 한다. 그 때는 한 가구에 부모님, 아내와 남편, 자식 다섯 정도가 평균이었단다. 지내마을의 우물은 그 당시 어림잡아 250여 명가량에게 생명수 역할을 했을 터였다.

소정희(72) 씨는 다시 보자는 다짐을 마치 핑계거리로 매달아 우물에 던져놓고 나중에 꺼내보려는 듯 기자에게 말했다.

우리 마을 우물이 신기한 게, 겨울에는 물이 따듯해서 언 빨래 갖고 와서 빨면 녹아요. 빨래도 잘 돼. 우물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니께. 우리 우물은 겨울에 다시 와서 봐야 혀.”

밥도 얻어먹었겠다, 별 도리 없이 마을 주민들에게 다시 찾아뵙겠습니다라고 인사를 드렸다. 꼼짝없이 겨울에 또 오게 생겼다.

지내마을 우물아, 겨울까지 잘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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