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님(9)양병원 이장(쌍치 보평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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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님(9)양병원 이장(쌍치 보평마을)
  • 장성일ㆍ최육상 기자
  • 승인 2021.10.12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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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별천지’, ‘아따, 너는 참 좋겠다’”
양병원ㆍ장순례 부부
양병원ㆍ장순례 부부

 

이정주 쌍치면장에게 면내 이장님 한 분을 추천해 달라고 전화를 했다. 읍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탓에 쌍치, 복흥에 사는 마을이장을 쉽게 만날 수 없는 이유도 있었지만, 이정주 면장이 예전에도 쌍치면에서 일을 했던 경험이 있기에 면민들을 잘 알 거라고 기대했다.

이 면장은 주저 없이 양병원(82) 보평마을 이장을 추천했다.

양병원 이장님께서는 나이도 많으신데 일도 열심히 하시고, 마을주민들을 위해서 항상 봉사하시면서 정말 열심히 살아가세요. 모범이 되시는 분이죠.”

곧바로 양병원 이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휴대전화 너머로 들여오는 양 이장의 목소리는 덤덤했지만, 투박한 말투에 정감이 어렸다.

면장님이 저를 추천했다고요? 허허허. . (기자 : 취재하러 찾아뵙겠습니다.) 취재를요? 내가 하는 일도 없는데. (기자 : 그래도 뵈러 가겠습니다.) 정 그러시면, 아무 때고 오세요.”

지난달 30일 오후 찾아간 양 이장 댁은 쌍치면을 가로지르는 도로변에 위치했다. 마당에 들어서니 사방이 확 트여 시원한 느낌이다. 한낮의 태양은 뜨거웠음에도 그늘진 평상에 양 이장과 마주 앉으니 시원한 바람이 계속해서 머리를 쓰다듬는다.

 

스물아홉 살에 늦장가 든 양병원 이장

양 이장은 1940년 쌍치 석현에서 나고 자랐다. 열아홉 살 때 옆 동네였던 보평마을로 이사를 온 건 먹고 사는 문제 때문이다.

옛날에는 농사짓기 힘들었어요. 집에서 논까지 왔다 갔다 하시기 힘드니까 아버지께서 아예 논이 있는 이곳을 사셨어요.”

 

마당 한 편 키 작은 사과나무에 사과가 주렁주렁 열렸다. 뒤로 보이는 논이 양 이장의 농토다.
마당 한 편 키 작은 사과나무에 사과가 주렁주렁 열렸다. 뒤로 보이는 논이 양 이장의 농토다.

 

도로변에 덩그러니 홀로 떨어져 있는 집 주변 논밭은 양 이장 소유다. 집에서 내다보면 논밭이 한 눈에 관리된다. 이장은 어떻게 맡게 된 걸까.

농사를 좀 짓고 산 게. 부락 일도 좀 보는데 부락에 일 볼 사람이 없어요. 제가 99년도 말에 퇴직해서 부락에서 사는데 이장을 좀 하라고 해서 안 하려고 버티다가 2년 봐 달라고 하기에 2005년에 할 수 없이 4년만 봐 주마고 이장이 돼서 지금까지 하고 있네요. 그 때는 25호가 살았는데 지금은 혼자 사시는 분도 많고 14호밖에 안 돼. 부락 명단에 22명이 있어요.”

 

부모님 고향인 쌍치 토박이

양 이장 부모님은 모두 쌍치가 고향이다. 그는 전남 순천이 고향인 아내를 만나 3남매를 뒀다. 자녀들은 쌍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시킨 뒤 쌍치에 고등학교가 없어 순창이나 정읍으로 가야 했는데, 어차피 유학 보내는 거라 전주로 보냈다. 현재 큰아들은 광주, 작은 아들은 군산, 딸은 전주에서 살고 있다.

아내 분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우리 큰 동서가 순천에서 태어나 임실에서 살았는데, 거기 영감이 나를 중신한다고 거기 큰 애기를 보러 갔어. 옛날에는 데릴사위 식으로 처갓집에 사람이 없으니까 아마 나도 그렇게 하려고 했나 본데, 내가 큰아들이니까 안 된다고 했제. 그 때 사돈네 집에서 (아내가) 자게 됐는데, 사돈 한 분이 좋은 사람 있으니까 한 번 소개할까나 그래서 연결이 되었제. 하하하. 그 때 내가 스물아홉 살이었으니까 늦장가를 갔제. 아내는 스물세 살이었고. 그 때는 서른 살이 넘으면 장가를 못 간다고 더 늦기 전에 가야 한다고 할 때에요. 하하하. 아이들이 아직 젊어요. 큰 아들이 쉰둘이니까. 내 친구들은 장가를 일찍 가서 큰 아이들이 육십 셋, 넷 그래. 하하하.”

 

순창까지 40, 정읍은 15분 거리

6.25 때 기억하세요?

“6.2511, 석현에서 살았는데 상당히 생생하게 기억하죠. 소년단인가 뭔가 조직이 돼 가지고, 쬐깐한 아이들이 이 부락 저 부락 뛰어다니며 소식 전하고 그랬죠. 그 때 쌍치에서 6.25를 겪었던 사람들이 지금은 별로 없어요. 거의 다 돌아가셨죠.”

뭐 해서 먹고 사세요?

30마지기, 밭 조금해요. 농사짓고 먹고 사는데, 벼농사는 싹 다 맡겨요. 모내기부터 수확까지 농협에서 전부 다 해 줘요. 몇 일 날 공판한다고 하면 그 때도 전부 실어가고. 말하자면 돈으로 다 하는 거예요. 집 주변의 전답을 전부 샀어요. 멀리 있는 건 팔고. 전답은 집 주변에 있어야 내 마음대로 하죠. 내가 논두렁이라도 돌아다녀야 건강하제.”

코로나 때문에 안 힘드세요?

주민들이 모이지 못 하제. 모든 집에 스피커가 붙어 있는데, 말귀도 못 알아 듣고 그러니까 전화라도 해서 이야기 해 드리고, 안 되면 찾아가서 이야기하고 그러죠. 여자 분들은 밭이나 조금 하고, 남자가 없으면 농사도 못 짓잖아요. 마을에서 농사짓는 집은 우리하고 세 집 뿐이여.”

양 이장은 애정 담긴 마음으로 순창 이야기를 꺼냈다.

여기 있으면 순창()은 갈 일이 없어요. 볼 일 있으면 면사무소에 나갈까. 글 않으면 정읍으로 가 버리제. 순창까지 가려면 40분이 더 걸리제. 정읍도 순창하고 거리는 같은데 인자는 길이 뚫어져서 15분 거리뿐이 안 돼. 마을에 오가는 사람도 없어요. 그래서 친구들이 전화 하면 그래요. ‘여기는 별천지다. 마스크도 안 쓰고 산다’, 하하하. 밖에 나갈 일도 없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도 없고, 공기도 좋고 하니까. 친구들이 아따, 너는 참 좋겠다그래요. 하하하.

양병원ㆍ장순례 부부의 집은 도로변에 한적하니 자리했다.
양병원ㆍ장순례 부부의 집은 도로변에 한적하니 자리했다.

 

사진 찍으러 칠보까지 40리 길

기자 일행도 따지고 보면 외지 사람들이다. 마을에 외부 사람이 다녀가면 바로 안단다. 어린 시절이 궁금해 옛날 사진 있으면 보여 달라고 말씀드렸다.

사진? 없어. 참말이여. 아니, 지금인 게 길이 뚫려서 여기가 요지가 되어 버렸지만, 그 때 어디 사진관이 있었깐디. 또 그 때 사진이 뭔 필요 있어. 사진이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어. 사진 한 장 증명하려면 칠보로 가야 혀. 하루 내 걸어 갔다 사진 찍고 와야 해. 그 이튿날 또 찾으러 가고. 정읍가려면 하루 종일 걸리는데 칠보는 그래도 사십 리 길이니까 걸을 만 하제.”

아내 장순례(76) 씨는 소녀 같은 미소로 기자 일행을 반겼다. 양 이장과 함께 사진 촬영을 요청하자 아내 장 씨는 남편을 향해 미소 지으며 살짝 눈을 흘겼다.

함께 사진 찍자고? 그러면 진즉에 말을 해 줘야제. 예쁘게 화장이라도 할 것인디. 옷도 좀 갈아입고. 어쩐다냐.”

마을에는 95세 어르신 한 분이 계시고, 양 이장이 두 번째로 나이가 많다. 82세 이장은 대화 내내 청년처럼 웃었다.

마을에서 활동하는 걸로 보면 내가 청년이제, 청년. 하하하. 4년만 한다는 게 벌써 16년째 이장을 하고 있는데, 부락이 작고 그래서 힘든 건 없어. 까딱하면 또 해야 혀. 하하하. 누가 보면 늙은 사람이 이장 꽉 잡고 안 놓는다고 욕할까봐, 추접스러 그게 문제지.”

푸른 하늘과 누렇게 고개를 숙인 벼들이 고즈넉한 농촌 풍경을 펼쳐보였다. 태어난 쌍치를 떠나본 적이 없다는 양 이장은 농토도 있고 하니까 인자는 떠날 수도 없다고 담담하게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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