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농부(16) 수레가 수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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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농부(16) 수레가 수레에게
  • 차은숙 글짓는농부
  • 승인 2021.10.19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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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숙(글짓는농부)

우리 농장에는 노란색 외발 수레 하나가 서 있다. 그 밖에도 수확용 작은 손수레가 다섯 대다, 자전거도 식구 수만큼 있고, 트럭과 승용차, 어머니의 성인용 보행기까지. 이렇게 수레가 많다보니 차를 수집하는 게, 내 취미인가 짐작할지도 모른다.

내가 차와는 인연이 좀 깊기는 하다. 내 성이 차씨인데 바로 수레 '()'. 마차, 기차, 자동차 바퀴 달린 탈것들을 부르는 명칭에는 모두 차가 들어간다. 차와 '수레'가 처음에는 같은 말이었으나 탈 것의 기술이 발전하면서 그 범위는 무척 넓게 쓰인다.

 

씨인 나의 숙명? 차와 친하지 못하다

그런데 날 때부터 숙명이던 와 나는 그리 친하지 못했었다. 자동차 운전도 순창에 이사 오면서 시작했으니 말이다. 몇 해 전 사고의 트라우마로 두 바퀴만 있는 자전거 타기도 그만두었고, 순창으로 이사 와 가까운 곳의 이동성을 위해 장만한 전기 자전거도 자전거가 너무 빠르다는 핑계를 대고 타지 않고 있다. 바퀴가 네 개나 되는 자동차 운전도 조금 괜찮아지기까지는 공업사의 우수고객이 되어야 했다.

그런 내가 한 바퀴만 달린 외발 수레의 주인이 되었으니, 운전이 수월할 리가 없다. 한두 번 도전해보고는 쉬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외발 수레 운전에는 그 어떤 운전보다 오랜 숙련이 필요한 모양이다. 다행스럽게도 조그만 바퀴 네 개가 달린 수확용 손수레의 운전에는 점점 달인이 되어가고 있다.

농장으로 출근하는 길, 앞산에는 구름도 걸리고 안개도 걸려있다. 우리 집 개 벼리도 함께 출근하는 것을 보고 짐칸 가득 받아낸 햇살로 눈부신 노랑색으로 반짝이며 우리를 맞는다.

농장과 그 앞을 지키는 노랑 손수레
벼리와 함께 하는 농장 출근길

 

짱가행님이 선물해 주신 외발 수레

이 외발 수레는 우리 농장의 명예 고문님이신 행님(남편의 선배이며 집안의 일가붙이시니 아주버님의 호칭이 맞춤하지만 나는 그분을 늘 행님으로 부른다. 형님보다 아주버니보다 더 높고 친한 호칭으로 삼았다)께서 선물해 주신 유서 깊은 물건이다.

행님댁 가문을 빛내던 이 외발 수레는 노란색 짐칸 여러 군데가 덧대어져 있다. 바퀴도 으깨져서 갈아 끼운 것이다. 백전노장이고 그에 걸맞은 훈장으로 덧대어진 외발 수레는 우리 농장에서 아주 가끔 운행을 한다. 남편도 나도 초보 운전이기에. 대신 입구에서 턱 하니 버티고 서서 농장을 지키는 게 주된 일이다.

행님댁에서 온 유서 깊은 물건은 또 있다. 1톤짜리 물탱크인데 이 녀석은 제 뚜껑을 오래전에 잃어버렸다. 그래서 맞는 뚜껑을 수소문했지만 떠나버린 연인처럼 찾을 길이 없었다. 억지로 겨우 맺어준 인연이 고무 다라이 뚜껑과 그 위에 커다란 돌이다. 그전에는 얼추 맞는 세숫대야를 올려두었더니 위로 두었을 때는 빗물이 차서 물통을 열 수가 없고, 거꾸로 두었을 때는 바람에 날아갔다. 지금은 좋은 인연 덕에 농장 입구에서 물을 가득 담고 고추밭, 배추밭의 방죽 역할을 하고 있다.

외발 수레와 물탱크가 농장 입구에서 보초를 서는 동안 고문이신 행님은 농장을 수시로 오가신다. 논에 가다가 읍에 가다가 잠깐 쉬다가 어떤 때는 일부러. 간식도 배달해 주고, 우리가 다른 일로 바쁜 동안 곁순도 따고, 아이고 잘 큰다, 실하다, 맛있다며 칭찬을 거름으로 토마토에 뿌려준다. 서툰 농부들에게도 마찬가지.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나는 짱가처럼, 고랑에 빠진 트럭도 꺼내주고, 수시로 고장 나는 예초기도 수리해 주고.

 

물탱크와 수확용 손수레와 물탱크

 

 

열매를 따는 일이 제일 재미지다

요즘은 가을 작기의 토마토 수확 철이다. 외발 수레는 더없이 한가롭지만, 수확용 작은 손수레가 바쁘다. 이 수레는 아주 단순하고, 무척이나 튼튼하다. 노란 바구니나 컨테이너 박스를 싣고 철판 위에 올리고 밀고 다니는 수레인데 정말 요긴하다.

수레의 운전대인 손잡이를 잡는 순간, 말아 쥔 손가락에 감기는 감촉이 꽤 찰지다. 운전도 손 쉬었다. 토마토를 따면서 앞에 두고 손으로 살짝 밀기만 해도 굴러가고, 앉아서 발로 툭 밀쳐도 불만 없이 굴러준다. 그리고 바구니 가득 따고 나면 허리를 꼿꼿이 펴고 몸을 의지해 직진이다.

물론 고비가 있다. 하우스 끝에 다다르면 유턴을 해야 하는데, 그 때는 힘 조절과 유연함이 필요하다. 전복 사고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렇다고 큰 사고는 아니다. 수레가 넘어지고 바구니가 엎어져도 후유~ 깊은 숨 한 번 쉬고 나서 쏟아진 토마토만 다시 담으면 되니까.

손수레를 이렇게 예뻐하는 것은 수레가 움직이면 수확을 하는 기쁨을 누리는 데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어머니가 일 중에는 이 열매를 따는 일이 제일 재미지다 하신다. 팔십이 넘도록 건강하게 일하신 분의 진솔한 말씀에도 기껍다.

수레들과 더 친해져야겠다. 수레가 수레에게 고맙다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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