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재호] 강인형 전 군수 송덕비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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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재호] 강인형 전 군수 송덕비 논란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21.10.27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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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비석 세우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전국 어디에서나, 주변 곳곳에서 비석을 볼 수 있다. 지금도 여러 가지 명분을 내세우며 기념비를 세운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지방 수령은 한 고을의 임금과 같은 존재였다. 백성들은 어떤 수령을 만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기도 했다. 수령으로서의 평가는 떠나간 후에 나타난다. 백성들이 그 은덕을 잊지 못해 타고 갈 말을 마련해 주거나, 비석을 세우고, 심지어 사당을 세워주기도 했다. 지금도 남아있는 송덕비(頌德碑)선정비(善政碑)거사비(去思碑)영사불망비(永思不忘碑)라는 비석들은 모두 수령의 선정(善政)과 관련된 흔적들이다.

그런데 우리 상식과 달리 그 비석 주인공들이 모두 선정을 베푼 것만은 아니었다. 많은 경우는 떠나가는 수령과 남아있는 토착세력 간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서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미리 송덕비를 세우는 경우도 있었다. 게다가 송덕비 건립을 위한 비용 갹출은 백성들에겐 또 다른 고통이었다.

 

과천현감 송덕비 이야기

조선 말기 전국 대부분 고을 수령 이야기라고 해도 무방할 과천현감 송덕비고사가 있다.

백성을 수탈하던 과천현감이 어느 날 영전해 떠나게 되었다. 현감을 보좌하던 아전들이 나서서 송덕비를 세우게 되었다. 그런데 간밤에 백성 중에 누군가가 비문 위에 금일송차도”(今日送此盜)라는 글을 적어 놓았다. “오늘 이 도둑을 보내노라라는 뜻이다. 그런데 현감은 탐욕스러운데다가 낯짝도 두꺼웠나 보다. 짐작했다는 듯 답문으로 비석 뒷면에 이렇게 적었다. “명일래타도”(明日來他盜), “차도래부진”(此盜來不盡), “거세개위도擧世皆爲盜). 내일이면 또 다른 도적이 올 것이다”, “도적은 끝도 없이 올 것이다”, “이 세상이 모두가 도적인 것을 어찌 하겠는가라는 뜻이다. 이처럼 탐관오리들이 발호하던 조선말 고을 수령 중에 도둑이 아닌 자는 드물었지만, 송덕비는 방방곡곡에 우후죽순처럼 세워졌다.

 

가문의 수치가 된 송덕비

송덕비는 자랑이 아니라 수치인 경우도 많다. 동학농민혁명에 불을 붙인 고부군수 조병갑이 대표적이다. 조병갑은 태인현감을 지낸 아버지 조규순의 공덕비를 세운다고 강제로 1000여 냥을 거뒀다. ‘영세불망이라고 새긴 비는 정읍시 태인 피향정에 남아 있어 그의 탐학을 영세불망증언하고 있다. 조병갑은 고부군수 이전에 함양 군수도 역임했다. 경남 함양에도 조병갑 송덕비가 있다. “조병갑 군수는 유민을 편하게 하고 봉급을 털어 관청을 고치고 세금을 감해주며 마음이 곧고 정사에 엄했기에 그 사심 없는 선정을 기리어 고종 24(1887) 비를 세웠다고 적혀 있다.

함양군수일 때는 사심 없는 선정을 폈던 인물이 표변한 것인가. 아니면 선정비가 거짓을 적고 있는 것일까. 조선 말 지방관리들의 송덕비나 선정비 등은 관리들이 이임할 무렵에 세워졌다. 그 내용을 그대로 믿기 어려운 이유다.

목불인견의 망발들이 이어지던 조선 말기, 이토 히로부미 송덕비 추진은 그중에서도 압권이다.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 의사에 의해 살해되자 이완용 등은 대련(大連)까지 가서 조문했고, 고종은 통감부에 나아가 조문한 뒤 이토 히로부미에게 문충공(文忠公)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이학재 등은 송덕비를 세우자고 나섰고, 어떤 이는 동상을 세우자며 설쳐댔다. 백성들에게 십 전 씩 거둬 사당을 세워 모시자는 인사들도 있었다.

 

비석치기 유래?

송덕비나 송덕 사당을 세우는 데 드는 경비는 고스란히 고을 백성들의 몫이었다. 하물며 자신들을 수탈하던 수령을 위해 주머니를 헐 때의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속이 문드러진 백성들은 송덕비가 세워져 있는 비석거리를 지날 때마다 발로 툭툭 차거나 멀리서 돌을 던져 비석을 맞히는 것으로 한풀이를 한 것이 바로 비석치기 놀이의 유래가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전 군수 송덕비 제막식 유감

최근 순창향교에 건립된 강인형 전 순창군수 송덕비를 바라보는 군민의 시선이 곱지 않다. 순창향교는 지난 22일 제23회 기로연(耆老宴매년 70세 이상 어르신을 위해 하는 경로잔치)을 거행하고, 이어 강인형 전 순창군수 송덕비 제막식을 진행했다. 강인형 전 순창군수 송덕비는 순창향교 명륜당 뒤 순창군수 전라관찰사 청백비군’ 12기와 함께 서있다.

순창향교 관계자에 따르면 강 전 군수가 순창군 발전을 위해 노력한 것은 물론, 순창향교에 대한 전폭적 지원으로 향교 정상화에 기여했고 군내 유림들의 활동에 도움을 줘 송덕비를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그 나름대로 기념할 만한 일이 있거나 기릴 만하다고 여겨서 송덕비를 세우는 것일 터이니 트집 잡을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반면에 공적 못지않게 순창 정치문화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 이를 위해 송덕비를 세운 것이 부당하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많다.

세월이 지나면 언젠가는 마모되고 결국 사라지는 것이 비석이다. 게다가 지금은 고을 수령이 백성을 통치하던 조선시대도 아니지 않은가. 정말 명예롭고 오래 남는 것은 대대로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구비’(口碑), 사람들의 평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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