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농부(17)​​​​​​​자두 맛 사탕-차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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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농부(17)​​​​​​​자두 맛 사탕-차은숙
  • 차은숙
  • 승인 2021.11.16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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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숙(글 짓는 농부)

모든 것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인디언 달력의 11월 이름이다. 인디언들은 일 년 열두 달을 자연의 변화에 따라 독특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1월은 얼음이 얼어 반짝이는 달, 4월은 머리맡에 씨앗을 두고 자는 달, 5월은 오래전에 죽은 자를 생각하는 달, 10월은 잎이 떨어지는 달 이런 식이다.

인디언식 11월 이름은 가을을 가득 채웠던 풍성함이 다 사라져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같고, 혹독한 겨울이 시작되어 몸도 마음도 추울 때 그래도 아직 뭔가 남아 있어 하고 위로하며 속삭여 주는 것이리라.

 

모든 것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달콤하게

가을과 겨울 사이, 경천 변 벚나무는 진작 마지막 잎을 떨구었고, 느티나무 잎은 시시때때로 낙하하며 사라진다. 떨어지다 벤치에 앉아 있기도 하다. 남계로 파출소 앞길 바닥에 그림을 그린 은행잎이며, 아직 꿋꿋이 버티며 마지막 꽃을 피우려는 분꽃도 있다.

사뭇 스산할 때 인디언 달력이 주는 작은 위로와 함께 달달함을 찾는다. 유자차의 단맛과 모과차의 단맛이 다르다. 코코아와 생강차도. 그리고 자두 맛 사탕과 티라미수도. 모두 내가 좋아하는 각종 달달한 것들이다.

티라미수, 보기만 해도 입안에 고이는 그 부드러운 단맛은 치즈, 달걀, 커피, 카카오가 내는 맛이다. 너무 단 걸 먹었다고 걱정을 하니 끝 맛은 쌉싸래하다. 원래 발음은 띠라미쑤란다. 입안의 단맛에 취하면 그 발음이 저절로 나올 것 같다.

티라미수(tiramisu)는 이탈리아어로 밀다, 잡아당기다를 뜻하는 티라레(tirare)’, “(me)”를 뜻하는 (mi)’, “를 나타내는 (su)‘가 합쳐진 말이라고 한다. 나를 끌어 올린다는 뜻이니 기운도 나고 기분 좋게 한다는 것이다. 별걸 다 파는 편의점에서 기분 좋은 단맛 하나를 사야겠다. 그리고 하나 더, 자두 맛 사탕도.

자두 맛 사탕, 그 옛날의 자두 맛 사탕은 아주 컸다. 연분홍빛이 살짝 도는 투명한 사탕은 하얀 얼굴에 바른 립스틱 같은 빨간 줄이 예뻤다. 그게 있어야 진짜 자두 맛 사탕이었다. 입안에서 사탕이 천천히 녹는 동안 달달한 시간이 흘러갔다. 알사탕 한 알은 티라미수처럼 화사하지 않아도 충분히 달콤했다. 밤늦은 지하철에서 서서 가는 피로를 약속에 늦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따분함도 달래주었다. 그리고 가끔은 하루가 시들시들해지는 오후에도 단맛이 필요했다.

한동안 그 사탕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 시절은 사탕보다 단 것들이 더 많았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차 속에서 군것질거리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달라졌다. 아주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던 그 사탕 알 보다 훨씬 작았다. 눈으로는 실망했지만 맛은 비슷했다.

기억속의 그 맛은 그렇게 달고 새콤했지만 다시 만난 자두 캔디는 조금 덜 달고 덜 새콤했다. 그러다가 다 먹고 나서 알았다. 자두 맛 사탕을 먹고 나면 항상 입천장을 베었다는 것을. 사탕 맛 속에 가끔 피 맛도 났다는 것을 말이다. 혀끝에 입천장 앞부분이 닿으면 쓰리고 아파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도 사탕을 살 때면 으레 자두 캔디다. 십일월에는 더.

농부의 시간

내가 인디언 달력처럼 이름 짓기를 한다면 십일월은 불쑥 어두워지는 달이다. 너무 우울한 이름인가 싶어 또 하나를 지으면 달달한 걸 먹고 싶은 달이다.

농부의 달력은 사계절의 날씨를 따라야 하고 시계는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맞춰야 한다. 우리 동네 용내에서 삼백 년이 넘게 뿌리내리고 사시는 당산나무님도 그리 사셨다.

이곳의 농부 생활보다 몇 곱절의 도시 생활 이력 때문인지 요즘 저녁 여섯 시 무렵이 참 신기할 때가 있다. 갑자기 깜깜한 밤이 되기 때문이다. 일 년 내내 9시에서 6시 사이의 똑같은 시간대를 살아가는 직장생활은 여름 아침이 얼마나 일찍 시작되는지 겨울밤은 어떻게 오는지 모른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은 자신의 일상에 별 상관이 없기도 하다.

그래도 농부 경력이 회사로 따지면 신입사원 꼬리표는 뗄 수 있는 삼 년이 지났는데도 여름 아침 여섯 시가 새벽 같다. 그 시간에 해는 이미 떴고 그것도 한참 전에 떠서 뒷산 높이 창창하게 빛나고, 동네의 부지런한 할아버지는 아침 드시고 경운기를 몰고 들로 가시는 중이고, 어머니는 벌써 일어나셔서 마당을 깨끗이 쓸어 놓는 시간이다. 아버님은 아침 담배 두 대는 피우셨을 테고.

서둘러 아침을 먹고 농장으로 나가면 해가 번쩍번쩍해서 아이쿠, 늦었구나게으른 농부 같아 마음이 켕긴다. 해도 얼마나 늦게 지는지 서산에 걸렸는데도 꼴딱 넘어가려면 한참 걸렸다. 입동이 지난 십일월의 풍경은 모든 게 반대다.

11월 말 가을 농사를 마무리하고 김장을 하면 농한기다. 짧은 낮과 긴긴밤 땅도 쉬고 사람도 쉬어야 한다. 달달한 것들을 입에 넣고, 길고 어려운 책을 보거나 하면서 말이다. 글도 써야지! 그러다 쓴맛이 올라오기도 하겠지.

한 달 남짓해 12월 동지다. 팥죽도 그야말로 달달하다! 설탕만 잔뜩 들어가는 줄 알았던 팥죽에는 제 맛이 나려면 소금이 들어가야 한단다.

낮의 길이가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동지가 지나면 그 다음날부터 바로 낮이 길이가 점점 길어진다. 그러다가 봄, 농부의 달력과 시계에 맞춰 잘 쉬고, 때 맞춰 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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