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순창, 전봉준 장군이 붙잡힌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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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순창, 전봉준 장군이 붙잡힌 곳
  • 안욱환 원장
  • 승인 2021.12.15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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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욱환(누가한의원 원장)

 

127년 전인 1894122일 동학농민혁명군의 장군 전봉준이 순창군 쌍치면 피노리에서 체포되었습니다.

우리 고장에서 전봉준 장군이 붙잡혔다는 이 사실은 순창군민에게는 창피한 역사이며 지워버리고 싶은 불명예입니다. 그래서 16년 전에 순창군이 전봉준 장군이 붙잡힌 곳인 피노리에 전시관을 만들면서 이곳은 정읍출신 김경천의 밀고로 동학혁명가 전봉준 장군이 체포된 곳입니다라는 내용을 비석에 새겨서 인근 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샀던 일도 있었습니다.

19세기 말에 전봉준 장군과 함께 동학농민혁명을 지휘하였던 손화중 장군이 붙잡힌 고창이나 김개남 장군이 붙잡힌 정읍에서 자기 지역에서 지역민의 밀고로 동학혁명의 지도자가 붙잡힌 사실에 대해 그 지역 주민들이 부끄럽게 생각했다거나 감추고 싶어 한 흔적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우리 지역 순창에서 전봉준 장군이 붙잡힌 역사는 순창군민들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봉준 장군이 순창에서 체포되어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혁명이 실패했기 때문에 그 파장이 매우 큰 것 같습니다. 녹두 장군이 붙잡혔다는 사실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이었으며 그래서 사람들은 일제 강점기 때와 그 뒤로도 계속해서 슬픈 곡조의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는 노래를 부르며 녹두 장군과 농민군들의 좌절된 꿈을 기억하고자 했습니다.

동학농민혁명군이 일본군과 관군에 패하여 수많은 농민군들이 죽게 되고 특히 혁명에 앞장섰던 장군들은 그들의 가족까지 처벌을 당했기 때문에 이 위대한 혁명에 관한 역사적인 자료가 별로 없는 편입니다. 그런 상황인데도 전봉준 장군이 순창군의 쌍치면 피노리에서 붙잡혔다는 사실만은 분명하게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현상금 1000냥과 군수직 임명에 눈이 멀어 동학농민혁명 지도자를 관에 밀고하고 체포하였던 김경천과 몇 명의 청년들이 관청에서 약속한 돈과 관직을 차지했는지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설령 김경천이 군수 직에 임명이 되었다 해도 자신의 과거 행적을 아는 사람들로부터 피해 다니느라 관직에 오래 머물지는 못했을 가능성이 크고, 또 그런 기회주의자가 군정을 제대로 처리했을 리 만무하므로 고부군수 조병갑 못지않게 그 지역민의 원성이 자자했을 것은 분명합니다.

한편 실제로 쌍치 피노리는 금성리로 개명하여 피노리라는 마을 이름은 행정 지명에서 사라지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우리 순창군민들이 이런 위대한 인물이 우리 고장에서 붙잡혔다는 사실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전봉준 장군이 동학농민혁명을 통해서 이루려고 했던 꿈은 당시의 강대국인 청국, 일본, 미국 그리고 러시아 등 외세에 굴복하지 않으며 탐관오리의 폭정이 없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녹두 장군과 그의 뜻에 동조한 농민군들은 외부 권력의 간섭 없이 모든 사람이 평등한 사회를 뛰어 넘어 사람이 곧 하늘인 세상을 만들고 자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수많은 힘없는 사람들이 인간답게 사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고 제 한 목숨 아끼지 않고 싸우다가 죽어갔는데, 우리 지역의 몇 사람이 개인적인 이기심 때문에 녹두 장군을 팔아넘기는 그런 파렴치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 너무 창피한 것입니다.

지금 순창에 사는 우리가 과거의 선배들이 저지른 그런 짓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는 우리 마음에 양심이 있고 공공선을 추구하는 심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지역 근대사의 한 순간에 그 당시에 살던 사람들이 저질렀던 잘못인데, 현재를 살고 있는 순창군민에게 더 이상 심리적 부담이 되지 않고 감추고 싶은 역사가 되기 않기 위해서 우리는 과감하게 생각의 전환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록 과거 일이기는 하지만 공공의 이익보다 사사로운 개인의 이익을 앞세운 것이 정의롭지 못한 일이라고 인정하는 지역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사익보다 공익을 먼저 추구하는 풍토가 조성되는 순창이 되도록 노력하고 동시에 과거에 얽매여서 살기 보다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개인의 사적 이익보다 대다수의 공적 이익을 우선할 수 있을까요? 먼저 지금은 많이 약해진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고 시민정신을 가지고 우리 지역의 발전에 적극 참여하고 더 나아가서 민족의 큰 숙제인 통일에 앞장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경험 상 뛰어난 소수의 인물이 한 지역을 좌지우지하는 것보다 평범한 다수가 지역의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혼자서는 살아 갈수 없고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는 공동체 의식이 있는 지역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반드시 살아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이어가고자 하는 민주 시민들이 가져야 할 기본자세인 것 같습니다.

동학농민혁명군들이 여러 지역에 집강소를 설치하여 주민들이 직접적으로 주요한 결정을 하였던 것처럼 우리 지역에서도 풀뿌리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면 좋겠습니다. 순창의 현안은 포화 상태가 된 쓰레기 매립장을 포함해 악취 문제로 인한 환경문제, 노령화로 인한 주민 수 감소 문제와 그에 따른 농민과 자영업자들의 민생 문제 그리고 선거의 후유증으로 지역이 화합하지 못하고 분열되는 문제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는 기회를 활발하게 갖고 그렇게 모아진 주민들의 의견을 군정에 반영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지역의 민주화와 더불어 나라의 전체적인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상황은 주변 강대국에 의해 남북이 분단된 채로 70년 이상을 지내오고 있으며,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종전 선언을 하고 평화 협정을 맺는 단계까지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순창에서도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는데 조그마한 힘이라도 보태는 운동이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동학농민혁명 유적지와 기념 시설 현황조사에 의하면 전봉준 장군이 붙잡힌 곳과 피체지 전시관의 위치가 서로 다른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합니다.(사진 참조) 녹두 장군이 체포된 집의 위치는 마을 주민들 사이에 구전되어 오고 있다고 하는데, 정작 그 장소에는 어떤 안내판이나 안내문도 없는 실정입니다. 실제로 체포된 곳에 안내판을 설치하는 것이 시급하며, 피노리 전시관을 방문하는 관광객이 그 곳까지 걸어가는 것을 필수 코스로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른 시일 안에 행정과 의회 그리고 순창 지역의 동학농민혁명을 기념하는 일에 관심 있는 군민들이 함께 현장을 방문하여 적절한 조처를 취하기를 기대합니다.

한 가지 바라는 것은 순창과 관련한 동학농민혁명의 사료나 동학혁명 농민군들을 발굴하여 지역 주민들에게 알리고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계승하도록 돕는 (가칭)순창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를 발족하는 것입니다.

순창이 전봉준 장군이 붙잡힌 곳에 머물지 않고, 동학농민혁명의 한 복판에서 적극적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자랑스러운 곳으로 자리매김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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