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장종일-민주의 길! 배은심 어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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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장종일-민주의 길! 배은심 어머님
  • 장종일
  • 승인 2022.01.19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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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일 부의장(더불어민주당 중앙당 정책위원회)

지난 11일 배은심 어머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하고 왔습니다.

발인 날 아침 순창에서부터 날리기 시작한 눈발은 노제가 있었던 광주 5.18 민주광장에 이를 때까지 제법 많이 흩날렸습니다. 노제에는 눈바람 매서운 날씨임에도 광주시민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많은 분들이 함께 애도하며 배웅의 길에 나서주셨습니다. 추도사와 유가족 인사말이 이어지는 동안 북받쳐 오르는 감정에 참석자들 모두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배은심 어머님은 876월 항쟁의 한복판에 있었던 우리 모두의 어머니셨습니다.

1987년은 4.19혁명 이후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 독재의 사슬을 끊어내기 위한 국민들의 열망이 끓어오르다 폭발한 대항쟁의 시기였습니다. 12.12 군사반란과 80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유혈진압을 통해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 정권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국민을 힘으로 제압하려 했지만 분출하기 시작한 국민들의 열망을 끝내 막지 못했습니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끓어올랐던 전 국민적 대항쟁은 마침내 87629일 국민들이 요구했던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골자로 한 6.29선언을 이끌어 냈습니다. 그 과정에 수많은 민주화 운동가들이 공권력에 희생되고 고통받아왔으며 그런 희생이 쌓이고 쌓여 이뤄낸 성과물이 876월 민주항쟁이었습니다.

어느덧 3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해마다 6월이 되면 가장 먼저 떠올려지는 얼굴은 언제나 이한열입니다. 8769일 연세대학교 2학년 스물두 살의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이한열은 박종철열사 고문살인 은폐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610)’ 참가를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에 참여 중 경찰이 쏜 직격최루탄에 맞아 쓰러졌습니다. 피를 흘리며 동료의 부축을 받는 장면이 언론에 보도되며 전 국민은 분노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앞선 871월 서울대생 박종철의 고문치사와 은폐조작으로 전두환 정권에 대한 분노가 커진 상황에서 이한열의 최루탄 피격은 전두환 정권의 폭력성을 또다시 보여주는 만행이었기에 6월 항쟁의 불길은 더욱 뜨겁게 타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민들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 직선제로의 헌법 개정을 요구하는 국민의 요구를 무시하고 4.13호헌 발표로 국민의 분노를 자극하고 민주화 운동 세력을 좌경, 용공 세력이라 매도하며 힘으로 제압하려던 정권에 맞선 국민적 항쟁의 열기는 더 뜨거워져 갔습니다.

학생 중심이던 시위대는 넥타이 부대로 불리던 도시의 직장인들이 가세하며 전 국민적 항쟁으로 이어졌고 시위 열기가 절정에 이를 무렵 전두환은 88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대내외적인 정치적 부담 등으로 더는 힘으로 민주화 요구를 누를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전두환 정권은 629일 노태우를 앞세워 발표한 6.29 항복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포함한 민주화 요구를 대폭적으로 수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876월 항쟁은 독재 권력에 맞선 민중들의 승리이며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안착할 수 있는 길이 되어주었습니다.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게 되었고 박정희에 의해 중단되었던 지방자치제가 30여년 만에 전면 부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근래에는 촛불혁명으로 되살아나 한층 성숙된 국민의식과 민주주의의 가치 수호에 대한 결연함을 전 세계에 보여주었습니다.

오는 39일과 61일 치러지는 대통령 및 지방선거도 결국 876월 항쟁의 산물입니다. 독재에의 회귀를 꿈꾸는 후보가 아닌 민주주의의 가치를 고귀하게 지키며 더욱 발전시켜 나갈 후보를 뽑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6.29 항복선언에도 이한열은 끝내 국민들의 승리 함성을 뒤로 한 채 75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한열은 저와 나이도 학번도 같습니다. 이한열이 연세대 교문에서 최루탄에 맞아 쓰러졌던 그 날! 저 역시 제가 다니던 지방대학의 교문에서 경찰의 최루탄에 맞서 돌과 화염병을 들고 맞서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 시대의 우리들은 누구라도 이한열이 될 수도, 박종철이 될 수도 있었던 그런 시대를 함께 지내왔습니다.

배은심 어머니!

어머니께서는 이한열의 죽음 이후 민주화와 인권운동에 헌신해 오시면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등을 지내셨습니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에게 우리 모두는 불효자이면서 뵐 때마다 죄책감이 앞섰지만, 어머니께서는 우리들보다 더 열심히 민주화 운동 현장의 맨 앞에서 싸워주셨고 또 다른 한열이를 대하듯 우리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셨습니다.

고통과 희생 속에 35년여의 세월을 버텨오다 가신 어머니 영정사진 옆에 나란히 놓인 국민훈장 모란장 훈장증(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20206민주항쟁 33주년 기념식에서 받으심)이 눈시울을 뜨겁게 했습니다.

장례기간 내내 호상을 맡아 어머니 가시는 길을 지켜주신 우상호 의원과 나란히 서 있는 상주 훈열이(한열 동생)의 모습에서 87년 우상호와 이한열의 모습이 겹쳐졌습니다.

배은심 어머니께서는 광주 망월동 8묘역 이한열 열사가 저만치 마주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누우셨습니다. 35년 세월동안 그리움으로 묻어두었던 아드님 곁에서 마음껏 해후하며 이제 편히 쉬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국화꽃 한 송이 놓아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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