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농부(19) 시금치와 쑥떡쑥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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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농부(19) 시금치와 쑥떡쑥떡
  • 차은숙 글짓는농부
  • 승인 2022.01.19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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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숙 글짓는농부

위풍당당 마늘밭

이 한겨울에도 푸르른 것들이 남아 있다. 잔뜩 옹송그리고 어휴 추워!’ 하는 텃밭을 보았다. 그 안간힘이 기특해서 자꾸 마늘밭에 눈길을 간다. 고추를 뽑아내고 10월에 심은 마늘이 그 무섭다는 된서리를 맞고도 빳빳하다. 마늘밭 위에 흰 눈이 덮여있어도 마찬가지다.

▲위풍당당 마늘밭

 

그렇게 위풍당당한 마늘밭의 푸른빛을 보고 나서 아직 남아 있는 푸르른 것들을 찾아보았다. 길가 한옆에 자갈 속에 어찌어찌 뿌리를 내린 풀 한 포기가 한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텃밭 입구에는 마른 풀 옆에서 작은 풀들 여럿이 살아있다. 새봄이 되면 뽑겠다고 윽박지르고 또 뽑아내려 용을 쓰겠지만 이 겨울에는 푸른빛이 잘 살아가길 응원하고 싶어진다.

푸르다고 다 같은 것이 아니기에 봄이나 초여름의 새로 나온 잎의 푸른빛을 두고 특별히 신록이라 하여 사랑한다. 4월 말 어느 날이거나, 5월 아무 때나 신록(新綠)은 넘실거린다. 그렇게 시작한 푸른 시간도 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노랫말처럼 지나가고 겨울이 오는 것이다.

▲아직도 살아 있는 작은 풀

아 참! 시금치

푸르른 시절이 지나고 겨울이 오면, 초록빛 때문에라도 아 참! 시금치한다. 겨울 시금치는 얼지 않으려고 잎의 당분을 올린단다. 추운 날씨에 얼었다 녹았다 하며 천천히 자란다. 텃밭에 겨울 시금치를 심어야 했는데 후회하고 있다.

 

▲ 시금치와 쑥떡 쑥떡

시골에서 농사를 지어보니, 뭐든 때가 있고 그때를 맞춰야 한다는 거다. 시금치도 그중 하나다. 파종 시기를 넘기고도 잊고 있다가 먹을 때가 돼서야 생각한다. 마트에서 사는 시금치도 몇 번은 성공해도 가끔은 어긋난다. 지난주 수요일인가 저녁 8시가 넘어 시금치를 사러 마트에 갔다. 당연히 있으려니 여겼던 시금치는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을 두리번거린 끝에 섬초라고 쓴 푯말만 보고 대신 옆자리에 있던 봉동 한 봉지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이틀 뒤에야 달큰한 시금치나물 한 접시를 식탁에 올렸다.

겨울 시금치를 무칠 때면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충분히 달다, 진짜 맛있다. 이런 말이 절로 나온다. 이 단맛은 물론 설탕의 단맛과는 다른 단맛이다. 주부 경력 20년차를 넘어서니 나물도 잘 무친다고 뿌듯해하는 것도 잠깐, 시금치의 원산지가 섬초라는 것에 더 큰 점수를 줘야 한다.

 

쑥떡쑥떡

쑥떡을 할까나?”

저녁 준비를 하는데 어머니가 불쑥 말씀하셨다. 어머니가 몇 번 물었지만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어머니는 우리 부부와 둘째 아이가 쑥떡을 좋아한다고 굳세게 믿고 계신다. 설 무렵이면 생각나는 쑥인절미가 반갑기야 하지만 그건 한두 접시일 때고, 냉동실에 쑥떡 덩어리가 열 개도 넘어 큰 상자에 가득 쟁여져 있으면 그건 처치 곤란으로 굴러다니다가 결국은 못 먹게 된다.

내가 고개를 하도 세차게 저어대는 바람에 어머니는 지난봄에 뜯고, 다듬고, 삶아 애써 저장고 냉동실에 갈무리해두었던 쑥을 이웃에 내주셨다. 그렇게 꽝꽝 얼었던 쑥이 이웃집에 갔다가 방앗간을 들려서는 달큰하고 보드라운 쑥떡이 되어 고소한 콩고물까지 범벅하고 돌아왔다. 먹어보니 향긋하고 맛나다. 역시 얻어먹는 떡이 제일인가 보다.

쑥떡을 할 걸 그랬나하고 잠시 고민해본다. 쑥인절미 두 개를 남겨서 사진을 찍었다. 쑥떡 쑥떡이다. 이 말을 하거나 들을 때면 어원이 궁금하다. 쑥떡과 발음이 같은 데다 맛있는 떡을 몰래 쪄먹는 것과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얼핏 연상되기도 한다. 국립국어원의 친절한 검색 온라인 가나다에 찾아보았다. 쑥으로 만든 떡인 쑥떡과 남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낮은 목소리로 은밀하게 자꾸 이야기하는 소리인 쑥떡쑥떡은 아무 연관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점은 쑥떡의 뒷맛은 향긋하고 쑥떡 쑥떡 뒷말의 맛은 쓴 게 아닐까 한다.

설이 멀지 않으니 가래떡도 뽑아야 하는데 20킬로 한가마니를 하신다고, 어머니가 의견을 구하신다. 쑥인절미는 반대했던 터라 그러셔요. 많이 해서 나눠먹으면 되죠한다. 애들이 떡볶이도 먹고, 떡국도 먹고, 가래떡도 구워먹자고.

설이 지나면 바로 입춘이다. 농장은 밭갈이 준비로 조금 바빠졌다. 심었던 수단 글라스는 짧게 잘라서 두둑에 듬뿍 뿌려 두었고, 그 위에 거름을 냈다. 그리고 밭에 이롭다는 미생물도 준다. 이제 밭을 갈아 흙과 고루고루 버무려지길 기다려야 한다.

기다려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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