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설 유래와 설날 수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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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설 유래와 설날 수난사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22.01.26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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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유래

설날이 언제부터 우리 민족 최대 명절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수서(隨書) 등 중국 사서와 삼국사기기록을 통해 설날의 유래를 추측해 볼 수 있다.

수서에 따르면 부여에서는 새해 첫날 문안 인사를 드리고 왕이 잔치하면서 제사를 지낸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제사편에는 백제 고이왕 5(238) 정월에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냈으며, 책계왕 2(287) 정월에는 시조 동명왕 사당에 배알했다고 한다. 이미 이때부터 정월에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것으로 보아 오늘날의 설날과의 유사성을 짐작할 수 있다.

수서구당서신라 관련 기록에는 왕권 국가로서의 설날의 면모가 잘 나타난다. “매년 정월 원단에 서로 경하하며, 왕이 연희를 베풀고 여러 손님과 관원들이 모인다. 이날 일월신을 배례한다고 기록돼 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에서는 651년 정월 초하룻날에 왕이 조원전에 나와 백관들의 새해 축하를 받았는데 이때부터 왕에게 새해를 축하하는 의례가 시작되었다고 쓰여 있다.

오늘날 논의되는 설을 비롯한 각 달의 의 세시풍속은 고려 때 정착되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설을 9대 명절로 삼았으며, 왕은 정월에 국가 세시의례인 천지신과 조상신 제사를 지냈다. 정월 초하루 원정을 전후하여 관리들에게 7일간의 휴가를 주었고 신하들은 왕에게 신년을 축하하는 예를 올렸으며 왕은 신하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다.

조선시대에는 설날과 한식·단오·추석을 4대 명절이라 하였으니, 이미 이 시대에는 설이 오늘날과 같이 우리 민족의 중요한 명절로 확고히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

 

설날 수난사

설날이 오늘날과 같이 본명을 찾기까지는 우리 역사만큼이나 수난을 겪었다. 189611(음력으로는 18951117)에 태양력이 수용되고도 전통 명절인 설날은 이어졌지만 일제강점기가 되면서부터 수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일본은 전통문화 말살정책 일환으로 설날과 같은 세시명절도 억압했다. 우선 태양력에 맞게 양력설을 지내도록 했는데, 양력설은 새롭고 진취적이라며 신정(新正)으로 부르고, 원래 지내던 음력설은 오래되어 폐지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구정(舊正)으로 불렀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일제의 정책에도 불구하고 음력설만 되면 상점은 2~3일씩 문을 닫았고 관공서 직원들도 출근을 하지 않자 떡방앗간 조업까지 강제로 금지시켰다는 기록도 있다.

광복 후에도 설날에 대한 천대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승만 정권은 음력설에 대해 이중과세라는 낭비성만을 강조하며 신정을 유일한 설이자 휴무일로 지정했다.

박정희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고향방문과 차례·세배·떡국 먹기부터 윷놀이에서 널뛰기까지 설날에 하는 모든 행사를 양력설에 맞춰 하도록 유도했다. ‘허례허식, 이중과세를 하지말자며 음력설 추방 캠페인까지 벌였고, 공무원은 물론 민간기업도 그 지침을 따라야 했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음력설 임시열차 증편 운행을 중지해 도시 노동자들의 귀성이 더 어려워지기도 했고 구정프로등 음력설을 강조하는 극장 홍보물 제작도 금지됐다.

음력설을 지내는 흐름이 계속 이어지자 결국 전두환 정권은 민속의 날이라는 궁여지책으로 하루짜리 공휴일을 지정한다. 그리고 19876월 항쟁을 거친 1989, 음력설은 105년 만에 공식적인 명절의 지위를 되찾게 된다. 앞서 1988년 국민 84%가 음력설을, 11%가 양력설을 지낸다는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는 한 세기가 넘게 이어진 설날 분쟁의 승자가 누구인지를 확연히 보여준다. 1999년부터 양력설 휴일은 하루로 줄였다.

하지만 이렇게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했던 설 풍속이 고도 산업화시대에 접어들면서 바뀌어 가고 있다. 설날은 이제 고향을 찾는 명절이기보다는 가족 단위로 여행하고 즐기는 황금연휴가 되고 있다. 권력이 강제해도 바뀌지 않던 설 풍속이 급속히 변모해 가고 있는 것이다.

 

흰 가래떡과 떡국의 의미

흰떡의 의미는? 아무 것도 없는 우주 최초의 모습을 상징하기도 하며 시작을 뜻한다. 천지만물이 새롭게 탄생하는 새해의 첫날에 흰떡을 먹었던 것이다. 또한 묵은 때를 씻고 흰색처럼 깨끗해지자는 뜻도 있다.

가래떡을 왜 길게 뽑았나? 가래떡을 뽑을 때 길게 뽑았는데 떡을 쭉쭉 길게 뽑듯이 재산도 그만큼 많이 늘어나고 무병장수하라는 의미가 있다.

떡국을 썰 때 동그랗게 써는 까닭은? 가래떡을 썰 때 타원이 아닌 동그란 모양으로 썰었는데, 그 모양이 마치 옛날 화폐인 엽전과도 같았다. 엽전처럼 생긴 떡국을 먹으면서 맞이하는 새해에도 돈이 잘 들어와 풍족해지기를 바라는 조상들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개성에서 유래한 조랭이 떡국 역시 누에고치 모양의 조랭이가 재물과 풍년을 가져온다고 하여, 새해에도 집안에 재물이 넘쳐나길 기원하는 마음에서 먹었다.

 

설날 놀이

설 놀이는 이미 섣달그믐 무렵부터 시작된다. 설날 무렵 놀이는 연날리기·윷놀이·널뛰기·제기차기·돈치기 등을 한다.

설날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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