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세 호랑이띠’ 박춘숙 어르신 “건강하게 살아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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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세 호랑이띠’ 박춘숙 어르신 “건강하게 살아야제”
  • 최육상 기자
  • 승인 2022.01.26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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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군 할머니경로당 최초 제안·추진, 게이트볼 1호 선수 활동 등 특이한 이력
사진을 찍으며 “하트, 하트”를 요청드리자, 박춘숙(97) 어르신은 손가락으로 하트를 그리면서 아들 선재식 씨와 함께 빙그레 웃으셨다.

 

임인년 호랑이 해를 맞아 지난 22일 오후 21926년생 호랑이띠 97세 박춘숙 어르신을 찾아뵀다.

어머님이 눈도 좋으시고 귀도 밝으시고 다 괜찮으세요.”

33녀 중 다섯째 선재식 씨가 반갑게 맞이하며 살짝 귀띔했다.

순창읍 복실리(막골길) 산 중턱에 위치한 자택은 우와~’하는 탄성이 자연스레 나오는 풍경을 지녔다. 읍내가 한 눈에 시원하게 들어왔다. 날씨 좋은 날엔 저 멀리 지리산 노고단까지 훤히 보인단다.

집안으로 들어가 인사를 드리니 어르신은 기자 양반이 뭐 하러 왔어?”라고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로 또렷하게 물었다. 나는 호랑이띠 해라서 새해 소망 들으러 왔어요라고 대답했다. “맞제. 내가 호랑이띠제. 하하하.” 유쾌한 웃음으로 시작된 어르신과 대화는 1시간가량 이어졌다.

 

순창군 할머니경로당 1만드신 여성 운동가

유등 창신마을이 고향인 어르신은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순창에서 나고 자라 결혼한 당신 또한 6남매를 순창에서 낳으셨다. 언니오빠들은 일찍이 모두 하늘나라로 떠나고 막둥이 97세 어르신만 남았다. 내가 남매들 몫까지 대신해서 오래 사시는 것 같다고 말씀드리자 어르신은 해맑게 미소 지었다.

어르신은 97년을 사시는 동안 가족을 돌보느라 한두 차례 잠시잠깐 순창을 떠났다 왔을 뿐 줄곧 순창을 지키고 계신다. 평소 일상을 여쭸다.

주말에는 집에 있고 평소엔 노인복지센터에 가제. 서예도 배우고. 옛날에 함께 할머니 경로당 만드셨던 분들은 거의 돌아가셨어. 인자 거그 가면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아.”

아들 선재식 씨는 할머니 경로당과 관련해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순창에 읍노인회가 처음 생겼는데 어머니가 순창군 할머니경로당 1호를 만드셨어. 순창군 최초의 여성 운동가이신 셈이지.”

단답형으로 주고받던 대화는 순창군에서 처음으로 할머니경로당을 만들던 이야기에서 실타래 풀리듯 술술 이어졌다. 어르신에게 처음에 할머니 경로당을 어떻게 만들게 됐느냐고 여쭸다.

읍사무소에 가서 말을 했제. 할아버지들이 가부장적이셨잖아. 할머니들이 계속 방청소하고 설거지하고 완전히 그래야 되는 걸로 으레 일을 시켰어. 할아버지들이랑 있으면 할머니들한테 맨 일만 시키니까 할머니노인당을 따로 해도라고(만들어달라) 했제. 근데 안 줄라고 혀. 그 때는 내가 젊었제. 쉰 일곱여덟 먹었을 땐게. 몇날 며칠이고 쫓아다니면서 내가 억지로 뺐었제(성사시켰지).”

어르신의 기억으로는 1982년 무렵의 일이고, 선재식 씨의 기억으로는 1987년 전후의 일이다. 5년 정도가 차이나지만, 어르신의 앨범에는 1992123대한노인회 순창부녀회관 개관사진에 그 할머니경로당이 이후에 확장된 기록이 남아 있다.

어르신은 그 때 할머니경로당 만든다고 돈 만들려고 이렇게 추운 날 풍물 치고 가게마다 돌아다니면 할머니들이 기부를 많이 해 줬다고 웃었다.

1992년 12월 3일 ‘대한노인회 순창부녀회관 개관’식 때 분홍색 한복을 입고 계신 박춘숙 어르신 모습

 

 

순창군 게이트볼 1호 선수

어르신이 꺼내든 앨범을 보면서 자연스레 화제를 돌렸다.

내가 몸은 쬐깐해도 운동을 잘했어. 학급 릴레이 선수도 했제. 글고 내가 우리군 게이트볼 1호 선수야. 게이트볼은 한팀이 다섯인데 내가 항상 1번을 쳤어, 지면 2번을 쳤고. 이긴 팀이 1, 진 팀이 2번이야. 내가 신식 심판 자격증도 땄응게.”

어르신 앨범에는 1993414일 게이트볼 치는 사진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어깨띠 메고 거리에서 무언가 홍보하는 사진도 보였고, 어느 관광지인지는 모르지만 말을 타는 사진도 여러 장 있었다. 빛바랜 사진들은 어르신이 오랜 세월을 항상 진취적이고 적극적으로 행동했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어르신은 1977년 남편을 하늘나라로 먼저 보내고 홀로 육남매를 키웠다. 45년간을 홀로 사시면서 이제는 아들막둥이인 다섯째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선재식 씨는 내가 고3 18살 때 아버지가 작고하셔서, 내가 고교 졸업하면서부터 어머니 모시고 막내 동생 고등학교도 보냈다면서 그 때부터 지금까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고 말했다.

 

건강 장수 비결, 항상 웃으시며 생활

어르신 방의 조그만 탁자 위에는 작은 사진 액자가 옹기종이 놓여 있었다. 거실에 놓인 선재식 씨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에는 2012, 10년 전 어르신의 모습도 보였다. 어르신이 살아온 세월의 흔적은 곳곳에 사진으로 남아 있다.

호랑이띠 새해 소망을 여쭸다.

새해 소망? 별 거 있깐? 건강하게 살아야제.

어르신은 하루 세끼를 소식한단다. 자그마한 왼손바닥을 보여주면서 오른손으로 네 손가락의 네 마디 정도를 움켜쥐며 내가 식사를 요만큼밖에 안 한다면서 옆에 있는 할머니가 어떻게 그걸 먹고 살 수 있느냐고 한다며 웃었다.

어르신 방을 나오는 길, 티브이와 벽 사이에 순창빵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빵을 좋아하시냐고 여쭈니, 선재식 씨가 어머니가 빵 같은 단 것을 좋아하신다고 말했다.

다음에 맛있는 순창 빵 사가지고 올게요.”

어르신에게 약속을 드리고 인사를 올리자, “그랴, 그냥 와도 되니께 또 와라고 답을 하며 해맑은 미소를 내보이셨다. 풍광 좋은 순창읍을 배경으로 어르신에게 아들과 사진촬영을 요청 드렸다. “하트, 하트를 외치자 어르신은 손가락으로 하트를 내보이며 빙그레 웃으셨다.

건강하게 장수하시는 비결은 항상 웃는 모습에 있지 않을까. 순창군민들에게 호랑이띠 어르신의 웃음기를 듬뿍 전해 드린다.

새해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사진첩을 보면서 추억에 빠지신 박춘숙 어르신
사진첩을 보면서 추억에 빠지신 박춘숙 어르신
1994년 4월 14일 게이크볼을 치는 모습을 찍은 사진. 69세 때다.
1993년 4월 14일 게이크볼을 치는 모습을 찍은 사진. 68세 때다.
어르신의 방 안 자그만 탁자 위에는 옹기종기 액자가 놓여 있다.
어르신의 방 안 자그만 탁자 위에는 옹기종기 액자가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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