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송용-‘수포자’가 많은 이유, 타인과의 경쟁은 포기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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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송용-‘수포자’가 많은 이유, 타인과의 경쟁은 포기를 낳는다
  • 이송용
  • 승인 2022.02.09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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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용(순리공동체·구림 금상)

자신의 유아기 자녀가 어린이집에 가길 싫어한다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문의해 온 부모가 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 보았더니, 점심시간에 밥을 빨리 먹는 것이 힘들어서 그렇단다. 더 자세한 사정을 들어 보니, 그 아이는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고 실천하고자 늘 애를 쓰는 아이였다.

그런 성향의 아이들이 있다. 기본적으로 부모에게 인정을 받는 일을 소중하게 여긴다. 학교에서도 선생님을 기쁘게 하고자 노력하는 편이다. 선생님의 지시를 잘 따르고, 누군가 선생님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을 때에 자기가 분노하기도 한다. 첫째로 태어난 아이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경향이기도 하다. 교사로서는 그런 학생들이 참 예쁘다. 말을 잘 듣고, 가능한 규칙을 따르고자 노력하는 학생이 싫은 교사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참한 아이에게 큰 고충이 하나 있었으니, 점심시간이 되면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였다.

, 누가 가장 빨리 먹나 보자!”

지켜야 했다. 선생님 말씀이었기에……. 해서 그 아이는 가장 빨리 먹기 위해 노력했다. 문제는 학급에서 늘 자기보다 먼저 식사를 마치는 한 명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걔보다 빨리 먹을 수는 없었다. 아이는 절망했다. 어린이집에 가는 일도 이내 싫어졌다.

물론 선생님의 사정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유아들에게 밥을 먹이는 게 보통 일은 아니니 말이다. 밥상에 앉은 아이 한 명의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가게 하는 것이 때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어린 자녀를 키워 본 사람이라면 이해하고도 남으리라.

그런데 어린이집 교사는 한꺼번에 십수 명의 유아를 먹여야 한다. 그것도 제한된 시간 안에. 교사로서는 방법을 찾아야 했을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의 사정을 들은 내 마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작다면 작은 사건이고, 한 아이의 일화로 치부할 수도 있는 일이겠지만, 그날 나는 그 아이에게 너무나 미안한 마음을 느꼈으며, 더 나아가 우리 교육이 처한 현실에 비참함을 느꼈던 것이다.

 

지나친 경쟁을 낳는 비교 평가에 노출된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 경쟁이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입시 경쟁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사실 우리 사회의 자녀들은 그보다 훨씬 일찍부터 경쟁을 요구받는다. 초등학교에서 시험을 폐지한다고 경쟁이 사라질까? 아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대회에서, 지자체에서 받는 대부분의 상은 그가 무언가를 누군가보다 잘했다는 전제로 주어진다. 어떤 면에서 그런 상은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전리품과도 같은 것이다. 안타까운 일은 그 비교 평가라는 것이 아이들의 일상에 만연해 있으며 상당히 사소한 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누가 더 날씬한지, 누가 신형 스마트폰을 가졌는지, 누가 더 많은 골을 넣었는지, 누가 먼저 문제를 풀었는지 등등, 아이들은 거의 매 시간 지나친 경쟁을 낳는 불필요한 비교 평가에 노출되어 있다.

나는 누군가와 한담을 나눌 때 자녀 이야기가 나오면, 우리 첫째 아이가 태어나서 두달 만에 체중이 10kg이 되었단 사실을 재미 삼아 언급하곤 했다. 첫째가 어찌나 우량아였던지 체중 백분위 그래프의 100%의 바깥쪽에 있었다는 말까지 하게 될 때노라면, 내 입가에는 슬쩍 미소가 번지곤 했다. 그건 내 아이가 다른 모든 아이를 이겼다는 만족감의 미소였다. 돌아보니, 은근히 유치한 일이다.

우린 흔히 사회에서의 경쟁은 불필요한 것이며, 누군가와의 경쟁은 각 개인에게 좋은 자극이 될 수 있고, 공정한 경쟁은 사회 전반적인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곤 한다. 그러나 이것은 대체로 틀린 말이다. 자기 자신과의 경쟁은 비교적 건강한 자극이 될 수 있으나, 타인과의 경쟁은 각 개인의 발전에 있어 득보다 실이 많다.

 

자기와의 싸움만 남은 뒤 수학 만점

전에 우리 부부가 한동안 어떤 고1 학생의 수학 공부를 대가 없이 도와 준 적이 있다. 스스로 수학에 자신감이 없는 학생이었고 성적도 좋은 편이 아니었다. 가르쳐 보니 수학 실력이 심각하게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나 학생 스스로는 수포자(수학 포기 자)’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의외였다. 당시 그 학생의 가장 큰 문제는 중학 수학 과정에서 몇몇 놓친 부분들이 있다는 점이었다. 그 부분을 메우지 못한 상황에서 고등학교 수학을 접하니 수학이 너무나 어렵게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학생에게 같이 중학 과정으로 돌아가 한 번 훑어보면서 구멍 난 부분들을 메우고 다시 고등학교 수학으로 돌아오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그 학생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선생님, 그렇게는 안 될 것 같아요. 저 내일까지 수행평가로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수학 문제 풀어 가야 되요. 이것만 다 하려 해도 밤 12시까지 못 자요.”

알고 보니 수행평가 점수를 받기 위해 밤늦게까지 수학 문제를 잡고 끙끙대다가, 결국에는 다 풀지 못 하고 답지를 베껴서 숙제를 제출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스스로 비도덕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자책감과 알아듣지 못하는 수학 교과서의 책장을 계속 넘겨야 하는 현실에 대한 자괴감에 학생의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난 극약 처방을 꺼냈다. 당분간 수행평가 점수를 포기하더라도 최대한 빨리 중학 수학을 복습하자고 제안했다. 그래야 수학 실력도 살리고, 자존감도 회복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그는 다시금 고개를 저었다.

근데, 학교 선생님이 수행평가 안 해 온 애들은 일으켜 세워요. 그래서 베껴서라도 해 가야 돼요.”

친구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할 자신이 없다는 말이었다. 난 더 할 말을 잃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그가 수행평가 문제 한두 개를 더 풀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도였다.

그 학생은 뜻한 바가 있어 부모님과 함께 한참을 고민하다가 고1 과정을 마치고 자퇴를 결정했다. 매일같은 비교 평가의 굴레에서 한 발 벗어나 자기의 실력에 맞게 수학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다른 사람과 경쟁할 일은 사라지고 자기와의 싸움만 남은 것이다. 나의 아내는 일주일에 두어 번씩 다시금 그를 도와주었다. 그리고 그는 1년 후 검정고시 수학 과목에서 만점을 받았다. 자신의 이전 학급 친구들이 이제 막 고3이 된 시점이었다.

 

실력대로 학습 진도 조절교육 제도 시급

여담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검정고시를 좋아한다. 절대평가로 누구나 60점 이상을 맞으면 과정 이수의 자격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몇 점을 맞든 그건 전혀 관계가 없다. 시험에 응시하는 자는 다른 누군가와 경쟁할 필요가 없다. 또한 누군가의 진도에 나를 맞추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기에 쉽게 포기할 일도 없다. 그저 자기 속도에 맞춰 자기만의 경주에 성실하기만 하면 된다.

타인과 경쟁하는 교육 체계는 소수의 승자들에게 만족감을 주겠지만 그렇지 못한 다수에게는 좌절감을 준다. 그 다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도중에 경주를 포기한다. 우리 교육에서 수포자가 쏟아지는 상황은 경쟁으로 사람을 솎아내는 제도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현재의 제도는 다수 중에 누가 더 나은 사람인지 손쉽게 구분할 수 있기에 가장 우수한 사람만 선별해서 사용하면 되는 위정자들에게는 편한 일이겠으나 사회 전체적으로 보아서는 손실이 막대하다.

우리 사회를 위해, 아이들이 서로 경쟁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실력대로 학습의 진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운영되는 교육 제도가 시급하다.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송용(순리공동체·구림 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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