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연의 그림책(17) 나의 오렌지 나무
상태바
김영연의 그림책(17) 나의 오렌지 나무
  • 김영연 길거리책방 주인장
  • 승인 2022.02.16 09: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월입니다. 2월엔 제 친정아버지 기일이 들어있습니다. 벌써 십 수 년이 지났어도 그리움은 여전합니다. 좀 더 오래 사셨어도 좋았으련만. 지난 겨울부터 이곳저곳에서 부고가 정신없이 날아들더군요. 제 나이가 나이인지라 지인들의 구순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긴 하지만 마음의 빈자리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장례도 간소화 하고, 심지어 부고를 알리지도 않는 상황이 벌어지곤 합니다.

 

<여우나무>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하며 그린 책

어린이들이 주로 본다고 생각하는 그림책에서 죽음은 다루기 쉽지 않은 주제입니다. 한편으론 어린 아이들에게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터부시 되어오기도 하였습니다. 최근 <여우 나무>(브리타 테켄트럽 지음/김서정 옮김/2013)라는 작품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작가가 돌아가신 할머니(안나 헤르트리히)를 생각하며 그린 책이라고 합니다.

앞표지에 붉은 여우와 풍성한 오렌지 열매를 주렁주렁 맺고 있는 나무가 보입니다. 왜 여우나무일까요? 여우가 좋아하는 나무였을까요? 오렌지 나무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함께 생각해 보시죠.

옛날 옛날에 여우 한 마리가 다른 동물들과 함께 숲에서 살았어요. 여우는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지만 이제 많이 지쳤답니다. 그래서 아주 느릿느릿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숲속 공터로 갔어요. 그는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숲을 지그시 바라보고 땅에 누었어요. 여우는 눈을 감고 숨을 깊이 내쉰 뒤 영원한 잠에 빠져 들었어요.”

이렇게 이 이야기는 죽음의 상황에서 시작됩니다. 보통의 이야기는 옛날 옛날에 누구누구가 태어나서로 시작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을 맺곤 하는데 말이죠. 여러분은 이생의 마지막 순간을 어떤 장소에서 맞이하고 싶으신가요? 물론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병원이 마지막이 되겠지만, 어르신들은 집에서 잠자다가 가고 싶다는 말씀을 많이 하십니다. 그런데 요즘은 주위에 보니까 집에서 돌아가시면 오히려 절차가 복잡하더군요.

 

마지막 순간을 누구와 함께 하고 싶은가요?

눈을 감은 여우의 몸 위에 가만가만 눈이 내립니다. 오랜 친구 부엉이가 곁을 지키고 다람쥐와 족제비, 곰과 사슴숲속 동물들이 하나둘 찾아와서 오래오래 말없이 앉아 있습니다. 동물들이 여우 할아버지와 있었던 행복한 추억들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자 모두들 마음이 한결 따듯해집니다.

여러분은 마지막 순간을 누구와 함께 하고 싶은가요? 여우에게는 오랜 친구 부엉이가 있었습니다. 누가 내 곁을 지켜줄까요? 배우자? 가족? 친구? 의료진? 평소에 공덕을 잘 닦아두어야 하실 겁니다. 밤이 새도록 여우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동물들이 요즘 사람들보다 나아 보입니다. 행복한 여우입니다.

동물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여우가 누워 있던 자리에서 조그만 싹이 올라옵니다. 동물들의 이야기가 하나씩 끝날 때마다 새싹은 점점 커지고, 점점 아름다워집니다. 동물들은 밤을 새워 이야기를 하고 다음날 아침 훌쩍 자란 오렌지 나무를 보고 여우가 여전히 곁에 있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동물들이 여우에 대한 추억을 떠올릴수록 나무는 점점 더 높이 자라고, 동물들의 무거웠던 마음도 조금씩 가벼워집니다. 그렇게 추억과 사랑으로 나무는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나무 역시 다른 동물들에게 그늘을 만들어주고,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고, 여우를 사랑하는 동물들에게 든든한 힘이 되어 줍니다. 그렇게 여우는 모두의 마음속에 살아남았습니다.

여기서 오렌지 나무는 여우를 상징합니다. 여우를 상실한 슬픔을 오렌지 나무가 대신 치유해 줍니다. 오렌지색은 긍정적이고 희망을 주고 활력을 찾도록 도와주는 색입니다. 여우는 죽어서도 동물들의 든든한 힘이 되어 줍니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조상님의 은덕이라고 할까요?)

우리 곁을 떠났을 때 더 존재감이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 우리가 존경했던 사람들, 우리가 지켜주지 못했던 사람들여러분에게 여우는 누구입니까? 나에게 언제나 든든한 힘이 되어주는 사람. 행복했던 추억을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 반대로 내가 떠났을 때 누가 나를 슬퍼하고 기억해 줄까요? 나는 어떤 이로 남겨진 사람들에게 기억될까요?

 

임종을 지킨다는 말의 의미

우리는 행복한 삶, 열심히 사는 삶에 대해서는 많이들 이야기하지만 죽음을 맞이하는 법에 대한 이야기는 미루거나 쉬쉬합니다. 이제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은퇴 후의 삶을 넘어 요양기의 삶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이제 친정어머니보다 시어머니랑 더 오랜 세월을 살았습니다. 올해 구순이신 시어머님을 곁에서 지켜보며 저의 노후를 상상해 보기도 합니다. 물론 제게는 노후를 맡길 아들도 없습니다. 있다 해도 그런 시대도 아니지요. 결국은 요양원에 가야겠지요.

어머님께 돌아가신 후 제사 안 지낼 테니 지금 맛있는 거 많이 드시라고 투정을 부려보지만, 위암수술을 받으신 어머님은 음식을 잡숫는 것이 마음 같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아침저녁으로 시집간 당신의 큰 딸을 기다립니다. 보고 싶다고 꺼이꺼이 거짓울음을 울기까지 하십니다.

아버님 돌아가신 후 오랫동안 홀로 계신 친정어머니도 요즘 들어 부쩍 생각이 납니다. 그동안 내 삶이 바쁘다고 너무나 무심한 딸이었습니다. 아들 없는 저에게도 곧 닥칠 일인 것을. 제 딸들도 그렇게 저한테 무심할 거란 것을, 이제야 정신이 버쩍 듭니다. 자업자득입니다. 새삼 임종을 지킨다는 말의 의미를 나이 예순이 넘어서야 이해가 갑니다. 이제야 저도 철이 드는 것일까요?

 

 

브리타 테켄트럽의 다른 책들

작은 틈 이야기(브리타 테켄트럽 지음/김하늬 옮김/2020) : 모든 것은 작은 틈에서부터 시작한다. 나쁜 말과 좋은 말이 어떤 상황을 만들어 내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허튼 생각 : 살아간다는 건 뭘까(브리타 테켄트럽 지음/김서정 옮김/2020) : “나는 커서 뭐가 될까?”, “겨울이 영원이 끝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와 같이 인간과 삶에 대한 다양한 질문과 생각이 담긴 책.

블루와 옐로(브리타 테켄트럽 지음/김서정 옮김/2020) : 혼자 있는 블루에게 옐로가 조금씩 다가가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려 주는 감동적인 이야기.

별을 사랑한 두더쥐(브리타 테켄트럽 지음/김서정 옮김/2018) : 별을 사랑한 두더지가 별을 모두 따서 집으로 가져오자 밤하늘은 까맣기만 하다. 슬퍼하는 동물들을 보고 두더지는 어떻게 할까?

빨간 벽(브리타 테켄트럽 지음/김서정 옮김/2018) : 빨간 벽은 언제나 거기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벽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어느 날 꼬마 생쥐는 파랑새에게 벽 너머로 데려다 달라고 말한다. 과연 무엇을 보았을까?

손에 손잡고(마크 스페링 글/브리타 테켄트럽 그림/김서정 옮김/2016) : 작은 쥐와 큰 쥐가 서로 손을 잡고 걸어간다. 보이는 것이 모두 아름답고 모든 일이 소중한 추억이 된다.

사계절(퍼트리샤 헤가티 글/브리타 테켄트럽 그림/서소영 옮김/2015) :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무수하게 변화하는 사계절 자연의 모습을 책의 구멍과 함께 잔잔한 글과 아름다운 색으로 나타낸 책.

 

김영연 길거리책방 주인장
김영연 길거리책방 주인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순창 농부]순창군창업유통연구회 변수기 회장, 임하수 총무
  • 고창인 조합장 징역 2년 구형
  • 최순삼 순창여중 교장 정년퇴임
  • 순창읍 관북2마을 주민들 티비엔 '웰컴투 불로촌' 촬영
  • 선거구 획정안 확정 남원·순창·임실·장수
  • 순창시니어클럽 이호 관장 “노인 일자리 발굴 적극 노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