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임, 78세 늦깎이 고교 졸업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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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임, 78세 늦깎이 고교 졸업생
  • 최육상 기자
  • 승인 2022.03.02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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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금 받고 전남과학대학교 화훼원예과 진학
지난달 25일 김순임씨 고교 졸업을 축하하는 둘째 아들 내외와 손자 손녀들
지난달 25일 김순임씨 고교 졸업을 축하하는 둘째 아들 내외와 손자 손녀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가야하는데, 작은 아버지가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했어. 왜 그러셨는지 몰라도 그게 평생 한이 됐지. 지금 생각해보니까 아마 일제 때 어린 여학생들이 정신대에 끌려가는 걸 보시고, 6.25전쟁을 겪으시면서 우리 형제들은 그냥 평범하게 오래 살라고 학교에 안 보낸 것 같아.”

지난달 17일 순창읍내에서 마주한 김순임(78) 씨는 담담한 목소리로 지난 세월을 돌아봤다. 7남매 중에서 오빠 밑의 맏딸로 1945(호적은 1947)에 태어난 김순임 씨는 부모님께서 남동생과 막내여동생은 고등학교까지 보냈는데, 나머지 형제자매는 공부를 시키지 않으셨다“4년 전에 중학교 과정 2, 고등학교 과정 2년 해서 이번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진학하게 돼 평생의 한을 풀었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2018년 시작한 중·고교 과정 4년 만에 마쳐

김 씨는 임실군 오수면에 위치한 인화 초··고등학교에서 4년 동안 공부하며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을 무사히 마쳤다. 인화 초··고등학교를 다니게 된 건 우연한 기회였다. 어느 날, 단골 미용실 원장이 공부에 한이 남았다는 김 씨의 이야기를 지인에게 전해 듣고 추천해줬다. 그 때까지만 해도 고향이자 살고 있는 동계에서 가까운 곳에 그런 학교가 있는 줄 몰랐던 김 씨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 같았다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찾아가서 입학했다고 말했다.

늦깎이 학생에게 중학교 과정도 어려웠지만, 고등학교 과정은 정말 힘들었다고 한다.

수학, 영어, 법률, 문학, 독서, 기술가정, 과학, 한문, 중국어 등 한 가지도 쉬운 게 없었어. 별 수 있나, 시간 날 때마다 책 펴놓고 공부를 했어. 공부를 지도하는 선생님들이 모두 교장을 퇴직한 분들이라서 그나마 늦게 공부하는 내 마음을 잘 이해해 주셨어. 선생님들도 정년 퇴직하고 봉사하시는 분들이라서 마음이 잘 맞았어.”

고교 졸업식 날 함께 한 소병철 교장과 고교 졸업 동기들
고교 졸업식 날 함께 한 소병철 교장과 고교 졸업 동기들

 

못 배운 게 한이 된 부잣집 막내며느리

지난 2018년 시작한 공부는 4년 만에 중·고교를 졸업하며 결실을 맺었다.

매일 아침 730분에 학교 버스가 집으로 왔어. 수업은 830분에 시작하는데, 월요일에만 1시에 끝나고, 나머지 요일에는 12시에 끝나서 내가 할 일도 하면서 공부를 할 수 있었어.”

김 씨는 어렸을 때 시와 음악, 운동을 잘 했다면서 특히 내가 다른 여학생들보다 머리통 하나가 컸다고 회상했다. 김 씨는 그 중에서도 음악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적성 부잣집 막내며느리로 시집을 갔는데, 그 때도 동심초, 옛 동산에 올라 같은 노래를 하면서 울었어. 못 배운 게 한이 박혀서. 친구들 중·고등학교 다닐 때 나는 양재학원, 미용학원 다니면서 일을 배웠거든.”

김 씨는 이후 양품점을 30년 넘도록 운영했다. 주변 선생님들이 단골로 드나드셨고, 선생님들을 보면서도 공부 생각이 계속 났다고 한다. 김 씨는 순창에 뼈를 묻으며 언제부터인가 시를 쓰고 읽는 모임도 하고 있다. 실제 김 씨는 자목련 김순임이라는 이름으로 <열린순창>에도 종종 시를 기고하고 있다.

김순임 여사는 “어린 시절 학교를 다니지 못한 게 한이 되었다”며 친구 중학교 교복을 빌려 입고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김순임 여사는 “어린 시절 학교를 다니지 못한 게 한이 되었다”며 친구 중학교 교복을 빌려 입고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대학교 졸업하고 대학원까지 다닐 계획

지난달 25일 인화 초··고등학교에서 졸업식이 열렸다. 비 대면으로 교실에서 진행된 졸업식에서 김 씨는 인기 만점 졸업생이었다. 소병철 교장을 포함해 각 과목 교사들에게 진심 어린 축하를 받았다.

동계국민학교 37회 졸업생 동창 윤영춘 씨는 특별히 졸업식장을 찾아 늦깎이 친구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하기도 했다. 김 씨는 황숙주 군수와 초등학교 동기라며 그때 황숙주 군수가 공부를 참 잘 했다고 어릴 적 함께 찍은 사진을 보이며 웃었다.

둘째 아들 내외와 손자 손녀들도 졸업식장을 찾아 김 씨를 축하하며 함께 즐거워했다.

김 씨는 “3월부터는 대학생이 된다며 전남과학대학교 화훼원예과 합격증과 장학금 영수증을 내보이고 자랑했다.

학교(인화 초··고등학교)에서 공부하는 4년 동안 내가 학교 화분 관리를 정말 잘 했어. 졸업식 때 공로상도 별도로 받았고. 대학교에 가서 화훼원예를 잘 배워서 이제는 주변에 봉사하면서 살고 싶어.”

김 씨는 그 전에도 순창군 노인대학에서 시낭송반, 컴퓨터, 한문, 글쓰기 등을 계속 배워왔다면서 공부하는 것이 좋아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까지 다닐 계획이라는 당찬 포부를 전했다.

대학교 졸업식 때 학사모를 쓴 김순임 씨 모습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동계국민학교 37회 동창 윤영춘 씨가 졸업을 축하해 줬다.
동계국민학교 37회 동창 윤영춘 씨가 졸업을 축하해 줬다.
김순임씨의 전남과학대학교 화훼원예과 합격통지서
김순임씨의 전남과학대학교 화훼원예과 합격통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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