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패가 없는 축구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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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패가 없는 축구 경기
  • 이송용
  • 승인 2022.03.08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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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용(순리공동체·구림 금상)

날이 좋은 토요일 오후에 구림초중고등학교에 가노라면, 보슬보슬 잔디가 덮인 드넓은 운동장은 오롯이 우리 가족 차지다. 거기서 온 가족 여덟 명이 축구를 한다. 언제부터인가 막내(여섯째)는 아장아장 깍두기니 제외하고, 일곱 명이 여자 팀(엄마+첫째+둘째+셋째) 대 남자 팀(아빠+넷째+다섯째) 사 대 삼으로 나누어 축구 경기를 한다. ·후반 각 15분씩.

 

6남매 자녀와 함께 하는 축구

어른부터 유아까지 섞인 팀에다가 한 팀당 고작 서너 명이 전부니, 제대로 된 축구가 될 리 없다. 그런데도 이쪽 골대에서 저쪽 골대까지 운동장 전체를 경기장으로 쓰니, 공격하다가 상대방에게 공이라도 한 번 뺏기면 큰일이다. 수비를 위해 자기 골대까지 기를 쓰고 달려가야 한다. 이건 축구를 하는 건지 뜀박질을 하는 건지 당최 구분이 안 된다.

그렇다고 설렁설렁하는 법은 없다. 경기 전에 충분히 몸을 푼다. 팀별로 작전 회의도 있다. 누가 골키퍼를 봐야 한다는 둥, 21 패스를 어떻게 하자는 둥, 크로스를 올려 보자는 둥, 자못 진지하다. 물론 대개 작전대로 되지는 않는다. 뻥 차고 달려가 빈 골대에 골을 넣게 되는 일이 다반사다. 그러나 골을 넣었을 때의 기쁨만은 진심이니, 양팔을 번쩍 들고 팔짝팔짝 뛰곤 한다. 그때만큼은 어른도 아이 얼굴이다.

최근에 우리 가족이 그렇게 학교 운동장에서 열심히 축구를 하고 있는 것을 본 누군가가 말했다.

이렇게 가족 모두가 진지하게 축구하는 것은 처음 봐요.”

 

가족 모두가’ ‘진지하게

그분은 지나가는 말로 하신 것이었지만 나는 그분의 말에서 두 가지의 핵심어를 발견했다.

첫째로, ‘가족 모두가.’

가족 모두가라는 표현은 남녀나 연령대의 구분 없이 팀이 짜여 있어 생소하다는 의미였다. 보통 축구를 할 때는 수준이 맞는 사람들끼리 팀을 짜서 하게 된다. 그렇다 보니 한 팀 안에 다양한 연령대와 성별이 섞이기 어렵다.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축구를 하고, 또 청소년은 청소년끼리 유소년은 유소년끼리,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그렇게 팀을 구성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기를 뛰는 사람들끼리 체격이나 힘, 기술에서 차이가 생기기 때문에 경기를 운영하는 데에 어려움이 생긴다. 또한 부상의 우려도 커진다. 그렇기에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다. 하지만 우리가 딱 한 가지만 내려놓는다면, 그 한 가지만 포기하고 경기를 치른다면, 꼭 그렇지만은 않을 텐데……. 그 한 가지는 무엇일까?

 

아이들과 함께 노는 일도 가능

둘째 핵심어는 진지하게.

어른이 아이들과 함께 스포츠를 하게 되면, 어른들은 대개 재미없어한다. 수준이 안 맞기 때문이다. 그도 물론 맞는 말이다. 아이들 수준에 맞추려니 치열하게 대결할 수가 없다. 최고 수준의 기술을 구사할 수도 없다. 짜릿한 승리의 호르몬을 경험할 수 없으니 재미가 없다. 그래서 아빠들은 아이들을 떼어 놓고 아내들의 눈치를 보며 조기축구회에 나간다.

보통의 어른에게 아이들과 함께 공놀이를 하는 일은 진짜 축구가 아니다. 그건 아이들과 놀아 주는일일 뿐이지 진정으로 나 자신을 위한 놀이는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들과 진짜 공놀이를 할 순 없을 것만 같다. 어른이 진지하면 아이가 다칠까 무섭다. 아이들과 진지하게 공놀이를 하며 진심으로 즐거울 길은 없는 것일까? 가능하다. , 여기서도 그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 그 한 가지만 버린다면, 아이들과 놀아주는 일이 아닌 아이들과 함께 노는 일도 가능하다. 그 한 가지는 과연 무엇일까?

 

사람들은 왜 축구만 하면 싸울까?’

어느 재미 교포가 있었다. 주로 한국 사람들과 축구를 하다가 어느 날 미국 사람들이 하는 축구 모임에 초대를 받았다. 볼 차는 것을 좋아했기에 흔쾌히 승낙했다. 미국인들 사이에서 유일한 한국인이 되어 축구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한참 경기를 뛰다 문득 다른 선수에게 물었다.

지금 점수가 몇 대 몇이죠?”

신기한 일은 함께 경기하던 사람들 중에 누구도 점수가 몇 대 몇인지를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니, 그들은 점수를 알려고 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 무슨 대회에 나온 것도 아니고, 그냥 즐기기 위해 볼을 차는데 무엇 하러 점수를 세냐는 것이 그들의 대답이었다. 충격이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경험한 모든 축구는 이기기 위한 축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마음속에 늘 이런 의문이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왜 축구만 하면 싸울까?’

학교에서 축구를 하다 다투는가 하면, 조기축구 경기 중에 분위기가 험악해지기 일쑤다. 그러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모인 종교 모임에서 축구를 했건만 거기서 또 싸운다. 그에게는 그게 늘 마음의 짐이었다. 근데 미국 사람들은 싸우지 않고 축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점수를 세지 않고, 충분히 즐기면서 말이다! 그에게는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부터 그는 싸우고 이기기 위한 축구가 아닌, 즐기며 평화를 추구하는 축구를 알리기 시작했다. ‘축구 인문학 스케치'의 저자 우도환 목사의 일화다.

 

축구할 때 점수를 세지 않는다

우리 가족도 축구를 할 때 점수를 세지 않는다. 물론 여전히 아이들은 속으로 점수를 세고 있다. 하지만 상대방이 골을 넣으면 함께 손뼉을 치고 상대편이 수비를 잘하면 같이 칭찬하도록 지속해서 자녀들을 독려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과도한 투쟁심은 우리의 축구 안에 싹트기 어렵다. 경기로 인해 싸우고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도 발붙일 자리가 없다.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보니,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된 팀 구성이 가능하다. 어른이든 아이든 열심히 진지하게 게임에 임한다. 경쟁이나 승리는 게임의 목적이 아니며, 축구를 즐기는 것 자체가 목적이다. 운동하며 얻게 되는 건강은 보너스다. 그러면 함께 몸을 움직이며 즐거워하면서도 우리 안에 있는 평안을 깨지 않을 수 있다. 아니, 더 돈독한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우도환 목사의 제안대로 우리 가족은 축구할 때 화이팅을 외치지 않는다. 화이팅은 싸우자는 말이기 때문이다. 대신 모두의 손을 겹겹이 쌓아 하나, , 하고는 평화를 외친다. 이렇게 말이다.

샬롬!”*

*샬롬은 히브리어로 평안, 평강을 뜻한다. 아랍어로는 살람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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