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호규 이장(동계 귀주) “유실수는 개인재산, 함부로 손대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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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호규 이장(동계 귀주) “유실수는 개인재산, 함부로 손대지 마세요”
  • 최육상 기자
  • 승인 2022.03.16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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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만에 돌아온 고향, 10년 기다려 맡은 ‘이장’
용궐산·장군목 찾는 관광객들의 무분별한 행태 지적
양호규 이장 뒤로 섬진강과 파란색 농막이 보인다.

 

그 전에는 제가 이장을 맡기에는 좀 이르다고 생각했어요. 여기서 쭉 살았으면 모르는데 객지 생활하다가 25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마을 동향 같은 것도 파악해야 돼서 흔쾌히 수락을 못했어요. 솔직히 제가 농사일도 많아서 이장을 하기는 벅차요. 10년 쯤 지나니까 어르신들이 이제 젊은 사람이 (이장) 한번 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말씀들을 하셔서 맡게 됐어요.”

 

‘3개월 차 새내기이장

지난 3일 동계 귀주마을 부근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일터에서 만난 양호규(59) 이장은 ‘3개월 차 이장 새내기소감을 이처럼 담담하게 말했다.

오후 130분 무렵, 봄이 왔음을 알리듯 따사로운 햇살이 섬진강 물줄기를 내리치며 유난히 반짝거렸다. 햇살의 눈부심이나 물결의 반짝임보다 더 빛난 건 대화 내내 양호규 이장이 내어 보인 사람 좋은 미소와 투박한 웃음소리였다.

양 이장은 속된 말로 서울 물 좀 먹고고향으로 내려왔다.

군대 제대하고 스물네 살에 상경해서 마흔아홉에 돌아왔어요. 25년 동안 서울에서 일했죠. 이제 쉰아홉이니까 고향에 온 지 한 10년 됐어요.”

기자가 그럼, 아직 청년이네요?’라고 묻자 그는 청년 맞죠, 하하하쑥스러운 듯 웃었다.

 

남원양씨집성촌이 있는 귀미리

귀미 마을이 상당히 큰 마을이에요. 저희 클 때만 해도 가구 수가 300호 정도 됐어요. 초등학교를 그전에는 동계로 다녔었는데, 귀미마을만 별도로 초등학교 하나가 있을 정도로 컸어요. 지금은 이농이라고, 젊은 사람들은 다 떠나고 쭉 살아오시던 저희 어머니아버지 세대 그분들이 주로 계시죠. 젊은 사람들이 그래도, 몇 살 기준으로 해야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 20명 넘게 있어요.”

귀주마을은 현재 한 70세대 정도고 인구수는 거의 독거노인 분들이 많으셔서 80~90명가량이라고 한다. 여느 농촌 시골마을처럼 귀주마을 역시 인구소멸에 따른 생존을 고민하고 있다.

양 이장은 마을 이름과 관련해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지금 행정구역명칭(법정리)으로는 우리 마을이 구미리로 되어 있어요. 옛날 어르신들과 딴 동네 분들은 그냥 귀미리라고 불렀어요. ‘귀미리가 맞아요. 언제 정했는지 모르겠는데, 우리 귀주마을과 용동마을이 속해 있는 귀미리를 거북 구자 이것만 계산해서 언젠가부터 구미리로 부르고 있어요. 저희가 옛날 명칭을 찾자고 일단 마을 입구에 세운 표지석부터 귀미리라고 바꿨어요. 행정에도 귀미리로 바꿔달라고 얘기하고 있어요.”

시골 농촌에서 마을 이름은 무척이나 중요한 문제다. 마을의 역사와 정체성이 이름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양 이장은 이 대목에서 목소리를 다소 높였다.

지금 행정구역이 구미로 돼 있잖아요. 그런데 도로명주소로 바꾸면서 귀미로 귀미1, 지금은 또 귀미로 돼 있어요. 굳이 행정구역으로 하려면 구미로 구미1, 구미2길 그래야죠. 옛날 주소가 귀미리였는데, 지금 신주소도 귀미로 돼 있어요. 앞뒤가 안 맞아요. 그리고 저희 동네가 지금 한 650년 정도 됐다고 얘기를 하거든요. 원래 남원양씨집성촌이고 지금도 종손, 종가가 여기가 있거든요. 마을 이름이라도 통일시켜야죠.”

 

고향 순창의 삶에 정말 만족한다

그는 서울에서 정읍이 고향인 아내와 사내 커플로 만나 결혼했다. 자녀 셋은 모두 성인이 돼 객지에서 생활하고 있다. 아내와는 어떻게 순창으로 내려오게 된 걸까? 양 이장은 큰 소리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내를 채 가지고 순창으로 왔죠. 하하하. 저 같은 경우는 향수병 같은 거 있잖아요. 객지 생활이 체질에 안 맞더라고요. 답답하고 차 막히고. 그래서 서른 되기 전에 고향에 내려온다고 아내를 만났는데 먹고 살아야 되니까 결혼하고 애들이 어느 정도 컸을 때 내려온 거죠. 아이 엄마 고향도 이쪽이어서 흔쾌히 같이 왔어요.”

양 이장은 마을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다. 도시에서의 삶과 시골 농촌에서의 삶은 어떻게 다를까. 양 이장 부부와 자녀 셋, 5인 가족을 기준으로 도시와 시골의 살림살이를 물었다. 양 이장은 한 치의 머뭇거림 없이 순창의 삶에 정말 만족한다는 답을 내놓았다.

저는 순창이 낫다고 봐요. ‘절대 수입금액으로도 안 떨어져요. 저는 농사짓는 양이 많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생활하는 건 도시보다 나아요. 도시에서 지금까지 있었으면 연봉 1억이나 채웠을 란가. 여기서는 돈을 떠나서 훨씬 마음이 편해요.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쉬고, 하하하. 도시 생활은 딱 짜여 있잖아요. 아침 되면 맞춰진 시간에 출근해서 정해진 시간에 퇴근하고 사계절이 1365일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처럼 똑같잖아요. 여기서는 마음이 편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고 아내도 만족하고요.”

 

공주밤? ‘순창 동계밤이 최고!”

어떻게 먹고 사는지 물었다. 양 이장은 농부답게 귀주마을 사방으로 펼쳐진 산과 밭과 논을 가리켰다.

논이 한 2만 평, 백마지 정도 되고, 순창 동계밤 농장이 18000, 그 다음에 매실과 두릅밭이 한 2500, 나머지 콩, 고추 같은 우리 먹을 거 하고 일부는 또 팔기도 하죠. 동네 논일은 거의 다 기계로 애기 엄마하고 제가 해요. 밭일이나 밤 수확할 때는 동네 인근 아주머니들 아니면 젊은 사람들이 품앗이도 해요. 밤 수확은 전부 수작업이니까 정말 바쁠 땐 정신없어요. 늦게 수확하면은 다 떨어진 걸 줍잖아요. 알밤으로. 그날 떨어진 알밤 못 주우면 말라버려서 상품 가치가 없어지니까요.일당 드리고 좀 도와주십시오 하는 경우도 있어요.”

순창 동계밤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양 이장은 동계밤에 대한 자부심을 한껏 드러냈다.

순창은 옛날부터 (주변을 가리키며) 보시다시피 나무들도 솔직히 관리 안 하고 그냥 키워서 수확하기 바빴잖아요. 객관적으로 공주는 수도권도 가깝고. 밤 재배를 늦게 시작해서 접목 같은 것도 체계적으로 하고 수확하기 쉽게 키우고 해서 인지도가 객관적으로 보면 공주 밤이 낫다고 하는데, 저희 입장에서는 우리 순창 동계밤이 최고죠. 하하하.”

 

3개월 차 새내기 이장은 대화 내내 유쾌했다. 이장 임기는 올해부터 2년에서 3년으로 늘었다. 이장으로서 포부를 물었다.

“1월부터 시작해 아직 배워가는 단계니까 특별히 어려운 건 없어요. 일단 지금 시작했으니까 마을 주민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마을에 연세 드신 분들이 많이 계세요. 그래서 행정에 필요한 서류를 챙기거나 오가시는 게 면에서 가깝지만 불편한 게 많으세요. 70, 80, 90대 어르신이 좀 편하게 지내실 수 있게 하고, 또 좀 더 서로 화목하게 해 드리고 싶어요. 봉사하고 주민들한테 도움을 줄 수 있는 이장이 되고 싶어요. 내 뜻처럼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요.”

 

사유재산 유실수, 손대지 마세요

귀주마을은 용동마을과 함께 밀려드는 관광객들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장군목길은 대형관광버스가 진입할 수 없다. 주변 도로는 대형관광버스 행렬로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양 이장은 이 대목에서 목소리를 가장 높였다.

마을 인근에 관광지가 개발되는 건 좋은 면도 있지만, 마을 분들한테는 불편한 점도 많아요. 장군목 가는 길을 보셨겠지만 대형버스가 진입을 못 해요.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아무 곳에나 주차하고 음주가무 하는 모습은 꼴 보기 싫을 때도 있죠. 또 길가에 밤, 두릅, 매실 같은 유실수들은 사유재산인데 관광객들이 그냥 막 가져가 버리세요. 농사짓는 사람들 생각해서 내 것처럼 아끼고, 기왕이면 사서 잡수시면 좋잖아요. 군청에 철조망을 쳐주든가 뭔가 대책을 세워달라고 얘기했는데, 예산 문제도 있고 좀 어렵다는 식으로 회신이 왔어요.”

농막을 지키는 시베리안 허스키와 사모예드

 

양 이장은 섬진강 변에 매실 밭 등을 지킬 목적으로 농막을 지었다. 농막에서는 시베리안 허스키와 사모예드 수컷 두 마리가 꼬리를 흔들면서 일행을 반겼다. 대화를 지켜보던 한 주민은 양 이장을 이렇게 소개했다.

이장님이 나이는 좀 어리지만 성실하고 어른들 공경 잘 하고 경우가 밝아요. 마을 길목에 농막이 있잖아요. 지금은 동계에 귀농귀촌하신 분이 많아요. 농막에서 사람들이 쉬고 커피 대접도 받고 마실 것도 마시고 그러죠.”

양 이장은 시골 순창의 삶이 정말 행복하다며 진심으로 웃음 지었다. 그의 웃음에 따스한 햇볕이 스며들었다.

농막에서 내려다본 섬진강 물줄기는 양호규 이장의 웃음소리를 싣고서 드넓은 바다를 향해 쉼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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