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여전히 농민은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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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여전히 농민은 위기다
  • 김효진 이장
  • 승인 2022.03.2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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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이장(풍산 두지)

오래전 학교 다닐 적이다. 학생회를 같이 하던 후배 녀석의 느닷없는 입영 통보에 나름 심각한 표정으로 한마디 했다. “조국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놓여 있거늘 군입대가 무슨 말이더냐.” 툭하면 관용어구처럼 되놰서일까. 내 말엔 어떤 권위나 감동은 이미 상당히 퇴색되었던지라 후배 놈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그놈의 조국은 허구한 날 백척간둡니까?”

그리곤 며칠을 같이 술을 마셔댔고 후배는 결국 군입대를 1년 미뤘다. 항상 위기였고 항상 고비였지만, 매 순간 결정적 시기이자 기념비적 원년을 앞두고 있었던 나날이었다. 일상과 삶에 천착하지 못한 탓도 있거니와 그만큼 엄혹하게 정세를 받아 들일만큼 순수한 시절이기도 했다.

작년 말 요소수 대란은 올해 농사를 대비하는 농민에게는 비료 값 상승 부담을 안겨주었다. 지속적인 기름 값 상승 역시 면세유 혜택이 있다 해도 농가에겐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국제 곡물가의 불안정 속에서 작년부터 사료 값은 연달아 상승하였고, 동시에 송아지 값은 떨어지면서 축산농가 역시 시련은 매한가지다. 농자재 값의 상승에 따른 농업생산의 총체적 위기다.

지금보다 더한 위기가 있었다. 2005년 쌀 관세화 유예 조건으로 국내 농업보조를 손대는 바람에 비료 값이 폭등했다. 면세유도 사라질 판이었다. 결국 2008, 국제 원자재 값마저 상승하자 농민들의 원성은 하늘을 찔렀다. 다시 비료에 대한 보조지원이 재개되었고 면세유 폐지 주장도 사그라들었다.

현 정부 첫 해, 선제적인 쌀 시장격리 조치로 쌀값은 겨우 반등세를 회복했다. 농민들 성에는 차지 않지만 겨우 심리적 안정선에서 유지되어오던 쌀값은 작년 가을 다시 주저앉았고, 정부는 뒤늦게 궁여지책으로 20만 톤 초과 물량을 매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듣도 보도 못한 최저가 경쟁입찰 역경매(역공매) 방식이다. 기준가격도 공지하지 않은 채 농민들 제 살 깎아 먹는 최저가 낙찰 방식이라니,

전두환 같은 악마도 하지 못할 짓을 현 정부 당국에서 벌인다는 사실은 실로 충격적이다. 쌀값 하락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시장격리 매입을 한다면서 벌인 짓이 되레 현장의 쌀값을 떨어뜨려 쌀 가공유통 업자들만 좋은 일 시켰다.

땜질 방식으론 안 된다. 근본적으로 농정의 틀을 혁명적 수준으로 바꾸지 않는 한 머슴 노릇을 벗어날 수 없다. 농업 관료는 여전히 간 쓸개도 없이 기재부가 주판알 튕기는 대로 철학도 없는 허접한 책상머리 지침을 현장에 강요한다.

농민들은 한 치도 어김없이 반복되는 생산비 폭등과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허덕이며, 백화점식 개별사업에 지원되는 각종 보조금에 안주하며 한정된 밥그릇 싸움을 농민들끼리 하고 있다. 지금으로선 농정의 근거인 농업농촌기본법부터 현장에서 구현되는 자그마한 정책 제도까지 모든 걸 부정하지 않고선 답이 없어 보인다.

곧 대한민국의 새로운 대통령을 만나게 될 시간이다. 나랏일을 생각하면 참으로 걱정이 앞서 선거 결과에 목을 매면서도, 어째 농사꾼인 나의 일상과 내 주변의 풍경은 달라질 바 없다는 회의가 밀려드는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선거라는 열린 공간에서라도 한국 농정의 개보수가 아닌, 변혁적 제안과 능동적 제언이 쏟아져 나오길 바란다.

오랜만에 마을 어르신 두 분과 점심식사를 했다. 작년 수매 품종이 아닌 나락을 심어 공판에도 못 내고 있다가, 최근 정부의 최저가 입찰에 탈락한 한 어르신의 푸념과 분노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 농민들도 단체로 파업 한 번 해봤으믄 좋겄어. 거그다가 몇 해 숭년이 들어갖고 난리가 나야혀. 그때 가서 수입을 헐지언정, 세상네들 먹는 것 소중헌 지 한 번 제대로 느껴봐야 정신차리제 안댜. 한 번 그래봤으면 좋겄어. 그래야 세상이 개벽되제, 이대로는 도저히 안댜.”

학생 때 양치기 소년처럼 뇌까리던, 조국의 운명은 여전히 백척간두에 놓여 있는가, 다시 반문한다. 적어도 농촌현장은 그렇다. 생명 가진 존재와 교감하는데 늘 쉬운 마음으로 대면해야 하거늘, 농심이 어디 이렇게 헛헛하고 강퍅해서야 논과 밭을 오갈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농민은 여전히 위기다.

이 글은 <한국농정신문> 314일자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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