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농부(21) 소리쟁이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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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농부(21) 소리쟁이의 봄
  • 차은숙 글짓는농부
  • 승인 2022.03.2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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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숙 글짓는농부
소리쟁이 여기저기~

 

한가롭게 꽃을 세던 2월을 보내고 나니, 진짜 봄이다. 피고 지는 꽃도 바쁘고, 그 꽃 따라 이리저리 나는 벌도 바쁘다. 하루하루 열매 맺고 가꾸는 손길은 더 분주해지는 중이다. 보일 듯 말 듯 하던 열매가 콩알만 하게, 점점 자라 엄지손가락 한 마디만큼 커졌다. 아침 해도 한껏 부지런히 움직인다.

농장 밖에는 생명의 꿈틀거림으로 소란하다. 이 봄, 움트는 것들이 한둘이 아니고. 마냥 신기해서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던 때도 지났다. 땅속의 소란이 궁금하던 것도 벌써 여러 해째다. 걸음마 단계의 농부를 벗어났지만, 말문을 더 트고 이것저것 더 배워야 하는 시간이다.

우리 마을에는 지은 지 얼마 되지 않는 새집이 여러 채다. 그중 한 집 화단에 있는 산수유는 아슴아슴 노란 불빛을 밝혔고, 봄까치꽃은 어디서나 생명의 절정이다. 코로나로 대통령 선거로 마음이 소금밭인데 자연에서 겨우 위안을 받는다.

 

소리쟁이, 움움!

 

소리쟁이들의 봄은 참으로 씩씩하다. 얼마 전 움트는가 싶더니 벌써 청년처럼 푸르다. 소리쟁이는 식물계의 가수라서 이런 이름을 얻었다는데 그 노래를 제대로 들어본 적은 없다. 소리쟁이는 사그락사그락, 하는 소리를 낸단다. 바람이 불 때 흔들리면서 씨앗 대가 서로 부딪쳐 나는 소리를 옛적 어느 귀 밝은 농부가 들었던 모양이다.

소리쟁이는 어찌나 생명력이 강한지 종자가 땅에 떨어지자마자 뿌리를 내린다고 할 정도다. 뿌리도 깊고, 뿌리줄기가 잘려나가도 10cm만 있으면 새로 나온다. 어쩌다 소나 새가 먹어도 종자는 살아남는다. 식용이나 사료로 쓸 수 없는데 수산이 많아서라고 한다. 그런데 요즘 같은 이른 봄에는 어린 소리쟁이 잎을 시금치처럼 나물이나 된장국을 끓여 먹기도 한단다.

소리쟁이 씨앗은 땅속에서 20~25, 조건이 괜찮으면 80년 가까이 살아 있을 수 있다고. 물속에서도 3년 정도 거뜬하게 버틴다. 자라는데도 선수라서 움트는가 싶으면 벌써 땅 위로 수북하게 돋아나고 어른 손바닥만큼 커진다.

요 며칠 농장을 오가며 논둑이며 길가에 다보록한 소리쟁이를 보며, 움움, 움움! 하며 자라는 소리를 들었다면 나도 귀 밝은 농부가 되고픈 바람이다.

목초지나, 밭농사를 하는 농부들에게는 골칫거리가 분명할 소리쟁이지만 그래도 생명은 사람들의 잣대와 상관없이 경이롭다. 움움 움트는 생명과 또 그것을 경작하며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쟁투도 경이롭다.

 

목련이 필락 말락

군립도서관 앞 화단의 주인공은 철쭉이지만 5월이나 되어야 활짝 피어 주인 노릇을 할 테고 지금은 키 작은 철쭉나무 아래 있는 들풀, 들꽃들이 주인이다. 들풀에도 어엿한 이름이 있다. 밭뚝외풀, 선개불알풀 땅에 밀착해 겨우 몸을 일으켰다 싶은데, 거기서 글쎄 꽃을 피웠다. 무너진 담벼락 아래, 초라한 돌담 밑에서 작은 꽃들은 화사해지리라고 다짐하는 모양이다. 묵은 고춧대 사이에서는 더 활짝 웃고, 길가에서 발에 밟혀도 피어난다.

고춧대, 담벼락 아래, 길가에 들꽃
고춧대, 담벼락 아래, 길가에 들꽃

 

작고 꽃을 보다가, 이맘때가 그맘때지 하며 금산여관과 이웃한 도서관 뒷마당으로 가보았다. 늘씬하게 큰 키의 백목련 다섯 그루가 나란하다.

목련이 피었나?”

아직이다!”

커다란 겨울눈에 털이 숭숭한 채다. 가까이 가서 고개를 뒤로 젖히고 보니, 거무죽죽한 겨울눈 사이가 조금 벌어져 있다. ‘하얀 목련이 필 때면 생각나는 사람은 없지만, 목련이 필락 말락 할 때가 되면 맘 속 깊은 곳까지 봄빛이 비춘다.

이틀이나 사흘, 봄볕이 지분거리면 잿빛 외투를 벗고 목련이 피겠지. 그 광경을 어떤 시인은 목련의 해산이라고 했다.

도서관 뒷마당, 목련이 필랑말랑

 

농장의 4월은 더 많은 손길이 뻗어야 하고, 분주한 발길로 오갈 것이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적(?)들이 출몰할 것이다. 비가 잦아지면 잎곰팡이도 걱정이고, 천하무적인 녹응애의 창궐은 더 무섭다. 친환경 농사는 방제가 가장 큰일이다. 늦지 않게, 지치지 않고 작물을 지키는 일.

곁순을 따고, 또 알맞게 적과를 해나가고 방제를 해야 한다. 그래야 수확이다.

환한 햇살 속에서 푸르른 것들을 바라보면, 마음의 쓰고 짠 맛도 가시고 젖은 마음도 보송보송 마르겠지 싶다. 우리 모두 봄에 움튼 소리쟁이처럼 강건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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