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39)적성 대산리, 청룡이 내려와 멈춘 곳에 자리한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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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39)적성 대산리, 청룡이 내려와 멈춘 곳에 자리한 고인돌
  • 정명조 객원기자
  • 승인 2022.03.30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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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리는 순창군 적성면에 속하는 법정리다. 원래 이름은 죽산이었다고 하며, 조선 후기 풍수객들이 대산이라 부르도록 하여 대산리(大山里)로 개칭하였다고 전한다.

대산리는 적성면 소재지에서 3.5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적성면 석산리 두류봉에서 내려오다 대산리에서 쉬는 산이라는 쉰산(365m)이 북쪽에서 인계면 세룡리와 갈라놓고, 동쪽은 꽃 고개로 적성면 내월리와 연결된다. 서쪽은 지북리와 경계하며 남쪽으로는 적성면 운림리와 접한다. 마을 앞으로 인계면 심초리에서 발원한 심초천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대산리에서 내월리로 넘나드는 꽃 고개, 묘동에서 인계면 세룡리로 넘나드는 묘굴재가 있다.

20211031일 기준 인구는 49가구(대산마을 26, 묘동마을 23), 83(대산마을 43, 묘동마을 40)이다.

 

마을 명칭 유래

대산마을은 죽산(竹山), 죽림(竹林)이라 부르다가 조선조 중엽에 어느 도인이 대산(大山)리로 부르게 하였다고 한다. 일설에는 쉰산이라고 부르는 마을 주산이 대호하산(大虎下山)이어서 대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묘동마을은 산수 경치가 좋고 인심이 좋아 선비들이 많이 나왔다고 전하고 있으며, 적성면에 속하면서도 인계면이 삼면을 포위하고 있는 묘하게 형성된 마을이다. 뫼골이라 불린 적도 있다. 마을 형상이 옥토망월(玉兎望月) 형상이기에 묘동(卯洞)이이라 했다가 묘할 ()’자로 표기된 것으로 보인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사동(현재의 묘동)과 지북리 일부, 인화면 일부를 병합해 대산리라 하였다.

대산마을 전경
대산마을 전경
묘동마을 전경
묘동마을 전경

 

대산마을 입석

대산마을 입구에 있는 입석
대산마을 입구에 있는 입석
대산마을 중간에 있는 입석
대산마을 중간에 있는 입석

 

대산리의 풍수 형국은 대호하산혈(大虎下山穴)이다. 이 때문에 쉰산을 호랑이가 내려오다가 쉬는 형국이라는 해석도 있다. 대산리는 쉰산의 주맥이 좌청룡 우백호로 내려오는데, 청룡날은 마을 앞 당산까지 내려오고, 백호날은 마을 옆 위 당산에 와 멈추었다. 아래 당산[청룡이 내려와 멈춘 곳]에는 넓적한 바위 5개가 놓여 있고, 당산나무가 조성되어 있다.

마을 주민들은 이 당산나무 아래 위치한 넓적한 돌을 고인돌이라고 불렀다. 마치 개석식 고인돌처럼 보이는 평평한 바위들은 당산제를 지낼 때 제물을 올려놓은 상돌[상석]으로 사용된 듯하다. 원래는 위 당산[백호가 내려와 멈춘 곳]에 당산나무와 함께 선돌 2기가 세워져 있었다. 무척 큰 선돌 1기가 넘어진 뒤에 마을 주민들이 그 선돌을 초석으로 모정을 세웠고, 현재 남아 있는 선돌이 대산리 대산 선돌이다.

마을 주민들은 수구막이 선돌이라고도 부른다. 백호날에는 선돌과 함께 비보(裨補) 숲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나이 든 마을 주민들은 어렸을 때 백호날의 나무를 꺾거나 베려고 하면 어른들한테 야단을 맞았을 정도로 신성시하였던 곳이다. 대산리 대산 선돌은 대산리 동쪽에서 올라오는 백호날 등에 세워져 있다가 현재는 밭 가운데에 있으며, 높이 176, 114, 두께 43의 자연석이다.

*비보(裨補)어떤 지형이나 산세가 부족하면 이를 보완하는 방법을 뜻하는 의미로 산줄기, 바람길, 물길, 형세 등 어느 한 부분이 부족할 경우 산을 만들거나 돌담, 석탑, 연못, 언덕, 숲의 조성 등으로 이를 충족시켜 주는 것을 말한다.

 

대산리 고인돌 떼

대산마을 고인돌 떼
대산마을 고인돌 떼

 

대산 마을 회관에서 남서쪽으로 100m가량 떨어져 있는 당산나무 부근에 대산리 고인돌 떼 4기가 무리 지어 있다.

심초천 부근에 있는 1호 고인돌은 동서로 장축 방향을 두었으며, 모두 3개의 굄돌이 확인된다. 덮개돌은 길이 280, 너비 230, 두께 36이다. 순창군 적성면 지북리 방면에 자리한 2호 고인돌은 동서로 장축 방향을 두었으며, 모두 4개의 굄돌이 확인된다. 덮개돌은 길이 368, 너비 330, 두께 50이다.

3호 고인돌은 순창군 적성면 대산리 대산 마을 회관 쪽에 있으며, 유구(遺構)의 동서로 장축 방향을 두었다. 덮개돌은 길이 250, 너비 200, 두께 30이며 덮개돌 북쪽에 1개의 굄돌이 있다. 4호 고인돌은 동서로 장축 방향을 두었으며 덮개돌은 길이 280, 너비 240, 두께 50이다. 유물은 수습되지 않았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10여 기의 고인돌이 분포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2013년 현재 4기만 보존되어 있다. 2호 고인돌은 당산나무 뿌리가 뻗어 덮개돌에 균열이 생겨 시멘트로 보강해 놓았다. 4호 고인돌은 2개로 파손된 덮개돌이 얼마간 이동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당산나무 부근에 고인돌이 있어 보존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묘동마을 고인돌 지석묘

적성면 묘동마을 지대에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인 지석묘가 산재한 곳이다. 남방식은 커다란 덮개석 밑에 몇 개의 돌을 고이고 그 아래 매장할 장소를 만드는 식으로 구분하여 만든다. 묘동마을 정자나무 밑에 있는 지석묘는 바둑판식이며 남방식이다. 덮개돌은 길이 230cm, 너비 190cm, 두께 50cm이다.

묘동마을 고인돌 추정
묘동마을 고인돌(추정)

 

대산리의 고인돌은 청룡이 내려와 멈춘 곳에 조성되었고, 당산나무와 함께 매우 보기 좋은 숲 거리를 조성하며 여름철 쉼터로도 좋은 곳이다. 선돌은 마을로 들어오는 길목에 자리해 비보(裨補) 숲의 숲거리가 조성되어 있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풍수지리적으로 마을이 처음 터를 잡을 때 어떠한 비보 장치를 했는지를 보여 주는 전형적인 마을 풍수의 표본이 되는 곳이다.

대산리의 주산인 쉰산의 한자 표기 무량산(無量山)은 불교식 지명인데, 산이 걸어간다고 하는 표현도 산이동설(山移動說)의 표현이 대산 마을에 차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선돌과 넓적 돌이 당산 돌로 한 세트를 이루는 곳도 매우 드물다. 주산과 당산, 당산돌과 당산 숲을 꿰어 보면 마을 신화의 아름다운 구도를 그려볼 수 있는 전통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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