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골미술관 김정훈 관장님께서 지난 4월 7일 갑자기 돌아가셨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기에 현실감이 잘 들지 않았다. 관장님이 안 계신 미술관에 가보니 왠지 모를 상실감이 들었다.
중학생 시절 친구들과 미술을 하겠다며 미술관에 찾아갔을 때 처음 관장님을 만나게 되었다. 첫인상은 너무 깐깐하고 잔소리가 많으셔서 불만이 생길 때도 있었지만 그만큼 우리를 생각하신다는 것이 느껴졌다. 관장님께서는 미술에 대하여 엄격하고 섬세하게 알려주셨지만 어린 마음에 그다지 성실하게는 다니지 못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미술계로 진로를 잡은 후 정안이, 고은이, 진희와 함께 미술관을 날마다 다니기 시작했다. 관장님께서는 학원에 다니지 않는 우리를 기초부터 가르쳐 주셨다. 처음에는 동그라미를 그려라, 선을 그려라 매일 똑같은 것만 반복하라고 말씀하셨다.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 투덜거리기도 했지만 “이 정도도 못하면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는 관장님의 말씀에 차근차근 그림을 그려나갔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까지 매주 월요일만 빼고 날마다 미술관에 갔다. 여름과 겨울 방학에도 점심을 미술관에 배달하거나 근처에서 해결하며 빠지지 않고 다녔다. 관장님의 보이지 않는 협박(?)과 지도 덕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고마운 미술선생님이셨다.
고등학교 시절 미술관에서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를 뽑자면 벽화 봉사가 떠오른다. 학교에서 봉사시간을 어떻게 채워야하나 고민할 때 관장님께서 벽화봉사를 해보자고 제안하셨다. 처음에는 쉬울 줄 알았지만 햇빛 아래에서 그리는 벽화는 생각보다 힘들고 고되었다. 하지만 그만큼 고생했다고 관장님께서 맛있는 음식을 사주시고 격려해주셔서 즐겁게 벽화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입시 기간이 점점 다가오자 관장님은 6시까지였던 미술관을 10시까지 열어주시며 우리가 그림을 늦게까지 그릴 수 있게 해주셨다. 그때는 별 생각 없이 10시까지 남아 그림을 그렸지만 관장님이 얼마나 우리를 위해 주셨는지 이제야 실감이 난다.
어느 날 관장님께서 “이제는 전문 입시학원을 다녀보라”고 권유하셨다. 조소가 전공이셨던 관장님께서는 애니메이션과 웹툰을 하고 싶은 우리에게 전문입시학원을 다니도록 추천하신 것이다. 그 이후 미술관에는 오랜 시간 방문하지 않게 되었다. 미술입시가 끝나고 미술대학에 들어간 이후 나는 관장님을 찾아뵐 수 있었다. 관장님은 고등학교 시절의 모습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관장님을 만났을 때 관장님께서는 “선거로 누구를 뽑았냐”며 장난도 치시고 “대학 열심히 다니라”며 늘 같은 잔소리를 하셨다. 그런 모습들을 보고 “다음에는 맛있는 음식 사오겠다”며 웃으면서 헤어졌다. 그렇게 헤어진 것이 관장님과의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미술관을 갈 때마다 나는 관장님과 함께 했던 그 시절 기억을 추억할 것이다. 지금은 만날 수 없지만 나의 추억 속에서 관장님은 항상 그때 모습 그대로 존재할 것이다.
